▲ 사진 왼쪽부터 허인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권광석 우리은행장.

[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국내 주요 은행들이 동남아 시장 공략에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이 같은 은행들의 동남아 시장 진출은 국내시장 포화, 초저금리시대, 코로나19 사태 등 '삼중고'가 주된 이유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은행들이 동남아 진출 가속화를 출구전략의 한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영업환경 악화될수록 '기회의 땅' 동남아 부각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 건전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은행의 1분기 순이자마진은 1.46%로 전년 동기(1.62%)보다 0.16%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을 보면 국민은행은 1.56%으로 전년 동기(1.71)보다 0.15%포인트 감소했다. 신한은행도 0.2%포인트 하락한 1.41%를 기록했으며,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전년보다 각각 0.16%포인트, 0.13%포인트 떨어진 1.39%, 1.38%를 나타냈다.

가뜩이나 시장이 과다경쟁 상태인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빅컷과 안심전환대출 등이 순이자마진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본격화 된 2분기는 물론 3분기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020년 은행산업의 경영환경과 주요 과제' 보고서에서 "글로벌 무역분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글로벌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경제의 저성장·저금리 기조 지속으로 취약기업의 부실리스크가 증가하고 은행의 NIM도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영업환경 악화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던 차에 코로나19 사태 등 대형 악재들이 터지자 은행들은 동남아 공략 가속화를 위기 타개책으로 삼았다. 수익파이프 다양화를 통한 위험분산과 미래 성장동력 선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동남아 국가들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고금리 체계로 이뤄진 금융환경, 그리고 성인인구의 50%이상이 금융 접근성이 낮은 편에 속하는 현지 상황은 국내 은행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할 만한 요소다. 

국내은행들이 기존에 진출했거나 새롭게 진출을 시도하려는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이 코로나19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였다는 점도 동남아 공략에 무게추를 옮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이날 국내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와 현지 보건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전 9시 기준 코로나19 누적확진자 수는 캄보디아 171명, 미얀마 341명, 베트남 383명 등이다.

▲ 신한베트남은행 호찌민 본점 전경. 사진=구글지도 캡처

4대 시중은행 '광폭행보'…"선점해야 동남아 저성장 시대와도 버틴다"

국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동남아 국가 가운데서도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다음달 인도네시아에서 50년 업력을 지닌 중형은행인 '부코핀 은행'을 인수한다. 지난 2018년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확보해 그동안 2대 주주에 있었으나, 지난 16일 이사회를 열고 지분을 기존 22%에서 67.6%까지 늘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코핀 지분을 3분의 2 이상까지 확보키로 하면서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엔 미얀마 중앙은행으로부터 법인설립 예비인가를 받으며 미얀마 진출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 국민은행은 내년 1월 본인가를 목표로 본사 설립, 인력 채용 등 영업개시를 준비 중이다. 캄보디아에선 현지 소액대출금융기관(MDI) 시장 점유율 1위(41.4%)인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향후 국민은행은 프라삭을 상업은행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을 주요 거점으로 주변국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현지 외국계 은행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은행업 신규 법인이나 지점 설립허가에 상당히 소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미 시장 입지를 확고히 다져놓은 신한은행에 호재라는 평가다. 실제로 2017년 이후 베트남에 외자 100% 은행 신규 설립허가는 나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선 신한은행의 현지 법인전환 작업이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2차 은행업 개방 떄 지점면허를 받았던 신한은행은 이달 법인전환 요건을 충족했다. 법인면허를 받게되면 10개까지 지점을 확대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해 9월 디지털뱅킹 플랫폼 '신한 쏠(SOL)'의 인도네시아 버전인 '신한 쏠 인도네시아'를 출시하며 디지털 금융 강화에 힘을 줬다.

하나은행은 현지은행에 전략적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베트남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자산규모 1위 은행이자 4대 국영상업은행 중 하나인 '베트남 투자개발은행'(BIDV) 지분 총 15%를 1조원에 취득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올해 4월 BIDV와 제휴해 하나은행 하노이·호치민 지점에서 법인카드 발급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협업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도 하나은행의 주요 공략처다. 인도네시아 법인(PT Bank KEB Hana)의 자산 규모는 3조원이 넘는다. 해외법인 가운데 8조원 규모의 중국법인 다음으로 덩치가 크다. 인도네시아 공략에 대한 하나은행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얀마에서는 서민금융지원을 위한 현지 법인인 '하나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시장 확대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하나 마이크로파이낸스 지점 수를 작년(56개)보다 16개 추가 개점해 72개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동남아 공략 방점을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두고 있다. 지난 2월 우리은행은 캄보디아 자회사인 WB파이낸스와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를 'WB파이낸스'로 합병했다. 합병법인은 캄보디아 저축은행 가운데 다섯번째로 자산 규모가 크다. 우리은행은 중장기적으로 합병법인을 상업은행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베트남에서는 지점 확대와 디지털 금융 강화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작년 10월 베트남 다낭에 베트남우리은행 다낭지점을 개점했다. 작년 베트남 외국계 은행 가운데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점 추가인가를 받은 사례는 베트남우리은행 다낭지점이 유일하다. 우리은행은 매년 5개 지점을 확대해 2021년까지 20개 이상의 지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에는 현지 모바일뱅킹인 '우리원(WON)뱅킹 베트남' 앱을 출시했다. 이 앱에는 오토바이 이용이 많은 현지 고객들을 고려해 휴대폰을 흔들어 거래할 수 있는 모션뱅킹 기능을 탑재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동남아 시장이 6~8%대의 고금리 체계를 가진 만큼 수익성 증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라면서 "과감한 투자가 동남아 시장에 이뤄지는 것도 성장 잠재력을 가진 시장을 선점해야 나중에 동남아가 경제성장이 이뤄져 금리가 떨어졌을 때도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