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 인텔이 흔들리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은 나쁘지 않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심각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인텔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무어의 법칙 고향이자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확보한 막대한 유무형의 자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 제국의 존재감이 예전만하지 않다는 우려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 출처=갈무리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 인텔
인텔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이자 역사 그 자체다. 1968년 산타클라라에서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로 창립된 후 사명을 인텔로 변경,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이자 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바 있다. 

특히 사업 초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정리한 후 앤디 그로브 시대를 관통하며 1990년대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풍미한 바 있다.

위기는 1990년대 앤디 그로브의 시대가 끝나고 크레이그 배럿이 네 번째 CEO에 오르며 시작됐다. 

당장 2000년대 들어 PC 대신 모바일 시대가 활짝 열리자 PC 기반의 인텔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CEO인 폴 오텔리니는 인텔의 체질을 모바일로 바꾸려 노력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장했으며 2013년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가 CEO에 올랐으나 그 역시 인텔의 영광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시대 인텔은 반도체 결함 문제와 더불어, CEO 개인의 비위 사실까지 터진다. 특히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가 부하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폭로까지 나오며 그는 2018년 6월 불명예 퇴임하게 된다. 현재 인텔은 로버트 스완 시대를 맞아 명가재건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버트 스완 인텔 CEO는 취임 일성으로 "인텔은 굉장한 레거시"라면서 "지금 우리 내부에는 영감이 남아있지 않다"고 개탄한 바 있다.

▲ 로버트 스완 CEO. 출처=인텔

더욱 커지는 경고등
로버트 스완 CEO 시대를 맞은 인텔에도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후발주자의 매서운 추격이 눈길을 끈다. 대표선수는 AMD다.

사실 AMD의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14년 AMD의 영업손실은 무려 15억5000만달러에 이르렀고, 업계에서는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이라는 비야냥까지 나왔다. 그러나 리사 수 CEO가 2014년 AMD의 CEO로 등극하며 상황이 변했다. 2017년 AMD는 라이젠 시리즈를 출시하며 인텔이 활동하는 CPU 시장을 정조준했고, 최근에는 최대 64개의 코어와 최대 대역폭을 갖춘 기업용 ‘라이젠 스레드리퍼 PRO(Ryzen Threadripper PRO)’ 프로세서 라인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인텔의 내부도 흔들리고 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가 퇴임한 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조직은 최근 인텔 CPU 설계의 핵심 리더인 짐 켈러의 퇴사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마주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 시절 CPU 결함으로 홍역을 치른 인텔이 간신히 정상화 궤도에 올라설 무렵 터진 핵심인력 유출이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 것도 인텔의 악재다. 인텔의 매출 중 약 30%는 중국에서 나오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계기로 충돌하자 말 그대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와의 거래를 단절시키며 인텔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애플과의 동맹이 파기된 점도 부담이다. 5G 아이폰 정국에서 애플과 인텔의 밀월이 깨지는 한편, 애플이 아예 자체 칩을 맥에 탑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인텔은 애플이 퀄컴과 특허분쟁을 벌일 당시 5G 동맹을 결성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애플이 퀄컴과의 분쟁을 마무리하고 다시 손을 잡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이 자체 칩 로드맵에 속도를 내며 인텔의 위기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다행히 인텔의 2분기 실적은 고무적이다. 23일(현지시간) 인텔 주당 순익은 1.23달러로 시장 예상치 1.11달러를 상회했으며 매출도 197억3000만달러로 예상치 185억5000만달러를 웃돌았다.

문제는 '다음'이다. AMD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하려던 7나노 차세대 반도체 생산이 6개월 연기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인텔의 시간 외 주가는 폭락했다. 당초 2021년 차세대 반도체를 출시하려던 계획이 2023년 초로 연기된 셈이다.

▲ 리사 수 AMD CEO. 출처=갈무리

마지막 승부 걸까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GPU를 간판에 건 엔비디아가 한 때 인텔의 시가총액을 추월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기에 인텔은 AMD와의 7나노 공정을 둘러싼 직접적인 경쟁에서도 밀리는 분위기다. 애플과의 거래 중단은 B2B 포트폴리오를 가진 인텔에게 생각보다 약한 충격을 안겨줄 전망이지만, 미중 무역분쟁 등에서 오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피할 길이 없다.

최근 엔비디아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소프트뱅크의 암을 인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룡 인텔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인텔은 재차 신발끈을 조여매는 분위기다. 

로버트 스완 CEO는 Intel One(하나의 인텔) 전략을 바탕으로 B2B에 집중하며 조직 내부 다지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구축한 인텔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과거의 유산을 적절히 활용하며 황혼기에 빠진 제국을 되살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전망이다.

한편 인텔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인텔이 수율 문제로 7나노 반도체 생산 일정을 늦춘 상태에서, 당분간 인텔은 CPU의 경우 내부 양산에 집중하는 한편 GPU의 외부 비중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인텔 물량 수주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AP 로드맵도 인텔의 부침과 관련이 있다.

현재 AMD는 삼성전자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조만간 양사가 신형 모바일 AP를 출시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모바일 AP는 CPU, GPU 코어가 핵심이며 삼성전자는 GPU 코어 구조를 구축하며 AMD의 기술력을 참고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AP 로드맵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가운데 인텔을 추격하는 AMD의 상황에 따라 삼성전자와 AMD 연합군의 보폭도 크게 넓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