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개의 사과, 120×60㎝ oil on canvas, 2014

박영근 작가는 문자를 그림 아래 배치하는데, 글은 이미지와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텍스트는 그림처럼 강력한 기호로 작용하지만, 오히려 ‘그려진’ 글자들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림 안에 통합된다.

기호의 집합체로서 그의 작품 속 사과와 인물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이미지의 연속으로 풀어지면서 해석되어진다. 이런 이미지 연관성의 시각적 함축을 내포한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마치 자신만의 사과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깨닫기를 촉구하는 듯하다.

기호 속 이미지들의 연속성, 회화의 리듬으로 재현되다 파편처럼 보였던 그림의 일부는 작가의 일상과 사고 과정의 증거로, 시간적 흔적들의 층위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기록적이지만, 작품은 완전히 물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사과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사과는 가장 보편적인 식재료로서 특정한 계층이나 취향과 크게 상관 없는 과일이다. 동시에 역사, 종교, 철학, 문화 속에서의 주요 키워드의 탄생과도 관련 있다. 심오한 철학이자 가장 가벼운 일상의 양면을 보여주는 복합적 의미체로서, 미술과 문화 안에서도 같은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하겠다.

작가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그의 종교, 예술적 감성이나 믿음, 기억 등을 사과라는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인 서사는 곧 작가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의 화면 안 형상의 윤곽선은 그런 작가의 심리적 파장처럼 지극히 율동적이다.

▲ 9개의 사과, 116.8×91㎝ oil on canvas, 2014

작가의 사적 영역 안에서 생명력을 얻은, 그만의 계보학을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의 관찰과 표현의 은유적인 결과인 것이다. 층위를 벗겨내던 것에서 입히고 더하는 것으로 과거에 그의 작품이 물리적 층위의 이탈–dislocation-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내용과 이질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적 문구의 결합으로 층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옮겨왔다.

그의 이야기는 마그리트의 언어작품들처럼, 언어기호와 시각기호 간의 충돌과 합의, 분절과 보완의 긴장을 제공하면서 기호로서의 이미지의 실체를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주제가 갖는 무게도 덜어내지 않는다.

박영근(PARK YOUNG GEUN,화가 박영근)작가는 발견의 순간, 영감의 획득을 얻게 되는 매개체로서 사과에 접근한다. 그의 시도는 캔버스 위의 ‘부재를 통한 표현’과 문학적 이야기의 결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온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내면과 주변의 이미지들이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은 그 기호적 특성의 분명함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의 서사(敍事)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시대의 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그들과 섞임으로써 의미를 생산하는 동시에 그것을 잃을 수 있는 지점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중적 단면의 교차점에서, 작가의 선택은 이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기술과 그의 신념으로 확대 또는 변형 될 것으로 보인다.

△글=진휘연 성신여자대학교

△전시=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Seoul), 4월2~4월27일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