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영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암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가 유력한 인수자로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며 엔비디아가 암 인수협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 출처=갈무리

매각전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암을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암은 반도체 칩 설계회사로 활동하면서 사물인터넷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실제로 암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셋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혁명을 발판으로 삼아 크게 몸집을 불린 상태에서, 사물인터넷 시대의 초연결 생태계 인프라 구축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평가됐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4년 전 암을 약 243억 파운드에 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만 사물인터넷 시장이 생각보다 만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프트뱅크가 각 파트너사에 설계도면과 명령어셋을 제공하는 평탄한 비즈니스 구조를 가진 암을 대상으로 매출 압박을 강하게 지속하자 암의 경쟁력도 크게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암의 중국 지사 지분율이 현지 정부에 절반 이상 넘어가며 매출 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그 연장선에서 소프트뱅크도 암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소프트뱅크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암의 사물인터넷 사업 부분을 분리시켜 흡수하는 등 초강경 카드를 빼들었으나, 그 이상의 액션플랜은 보이지 않는다.

소프트뱅크의 사정도 나쁘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조엔(16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위기속에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서며 암을 매각하는 쪽에 무게를 실어가고 있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엔비디아

엔비디아 등판?
최초 업계에서는 애플이 암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애플은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된 WWDC 2020에서 새로운 iOS 버전을 공개하는 한편 인텔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퀄컴과의 특허분쟁 당시까지 인텔과 5G 동맹을 맺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이후 완전한 인텔과의 독립을 선언한 셈이다.

실제로 애플은 지난 2006년부터 맥 컴퓨터에 인텔의 칩을 탑재했으며 2007년부터는 모든 물량에 인텔칩을 넣었다. 다만 애플은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맥 컴퓨터 존재감을 키웠으나, 2012년부터는 모든 맥에 자체 생산된 칩을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라마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한 바 있다.

인텔과 결별한 애플은 최근 자사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자사의 입맛에 맞게 제작한다는 수직계열화 로드맵을 강하게 추진하는 분위기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은 암의 IP를 활용해 애플실리콘을 제작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 애플이 암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다만 블룸버그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암 인수에 가장 근접한 곳은 엔비디아다.

1993년 설립된 엔비디아는 최초 CPU 생산을 기획했으나 그래픽 칩셋으로 방향을 바꿨고, 1997년에 출시된 RIVA 128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알린 기업이다. 2003년 무선 멀티미디어 기업 미디어큐를 인수하고 지포스FX를 전격 출시했으며 2006년 3월 글로벌 GPU 판매량 5억개를 돌파하는 금자탑을 세운다. 2008년에는 테그라 모바일 프로세서를 출시하고 2011년 글로벌 프로세서 출하량 10억개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한다.

2016년 인공지능에 특화된 라인업을 출시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가운데 최근 데이터센터 사업 강화를 위해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멜라녹스를 69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후 암을 품을 경우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재편은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크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엔비디아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두뇌를 가져갈 경우 그에 준하는 규칙의 변화가 대대적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가 원하는 액수를 맞출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소프트뱅크와의 협상이 결렬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각 국가의 반독점 승인도 장담할 수 없다.

일각에서 삼성전자 등 일부 반도체 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암 인수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되고는 했으나, 당시 걸림돌로 부상한 것이 바로 반독점 승인 여부였다. 그런 이유로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와 협상을 이어가도 언제든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반독점 심사에 걸리지 않을 애플이 암을 품을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