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주식이 조금 오르면 밥 사고 술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조금만 내리면 밤길 조심하라는 사람들 등쌀에 하루하루가 버겁다. 주식이 올라서 돈을 번 것은 내가 벌게 해준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을 잘 맞춰 거래를 한 ‘당신의 복’일 뿐이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다. 반면에 며칠 연속으로 주가가 흘러내리기라도 하면 밥 사겠다는 사람들의 태도가 ‘칼이라도 들고 찾아 올 듯이’ 확 뒤바뀌어 버린다. ‘왜 미리 얘기를 해주지 않았냐?’는 것인데, 장이 변하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대외 커뮤니케이션 담당들은 쓸데 없이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투자기관이나 애널리스트 그리고 언론 기자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하다며 회사로 전화를 해대는 개인투자자들도 부지기수다. 살면서 웬만한 건 PC나 스마트폰으로 다 찾아 보면서, 유독 회사와 관련된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임에도 찾기보다는 직접 물어보고 싶어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커뮤니케이션 담당이 아닌 일반 다른 직원들은 질의 응답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를 못한다. 아무리 영업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재무 숫자에 밝은 직원이라 해도 아니면 아무리 내부에서 돌아가는 회사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기획 담당이라도 외부인과의 얘기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말 그대로 아는 것과 외부 문의에 대응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우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은 되는 일은 없도록’

“저녁에 시간 좀 내 주세요.”

“다음 번에 회사에 오실 일 있으시면, 제가 식사 대접을 하죠.”

“그게 아니라 덕분에 주식으로 제가 좀 벌었습니다.”

“………… 무슨? 제가 말씀 드린 게 없는데요.”

“아무튼 꼭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주식으로 버셨다면, 사장님이 복이 있으신 거고, 저랑은 관계없습니다.”

어느 날 새로이 거래처가 된 사장이 무슨 이유에선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다. 이유인즉슨 거래 관련 일로 회사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나를 만났고, 그때 내게서 들었던 내용 “회사가 열심히 잘 하려고 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부지런히 일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왠지 믿음이 가서 그날로 주식을 사서 차익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감사의 뜻으로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버셨다니 다행인데, 가족들 위해 쓰시고, 그 돈과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딱 잘라서 얘기하고 끝내버렸다. 그걸 기회로 앞으로도 종종 회사 관련 얘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참외 밭에서는 신발끈도 매지 말고, 배 밭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말만 생각날 뿐이다.

증권사, 금융사, 언론사 연락은 물론이고 소위 개미라고 일컬어지는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사소한 질문에도 늘 최선을 다해 대응을 한다. 내용은 실망스럽더라도 정성을 기울이면 최소한 적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의 발로였다. 후배들은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들이 많았지만, 최소한 우군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으로 돌아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식수와 관계없이 주주라고 한다면 궁금증도 해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개인들과 관계가 계속 좋게 유지되어 온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기관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도 하고, 애널리스트나 금융관련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 탐방도 오는데, 지분 규모가 작은 개인이라고 해서 못 만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득 보다는 실이 많았다. 거기다 소모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개중엔 회사의 사소한 공시 사항이나 관련 기사들을 모조리 섭렵해서 나도 흘려버렸던 내용들을 상기시켜가며 적극적인 관심을 표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반면에, 회사가 하고 있는 업이 무엇인지, 정기적인 실적 발표는 언제쯤 나오는 지조차도 몰라서 마치 벽을 대하고 있는 느낌일 때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회사 주가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나머지 무조건 주가를 올려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이유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사느냐 파느냐에 달려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이 주식을 산 이상 ‘주주로서 명하노니 주가를 반드시 올려라’고 주문하곤 했는데, 상황을 이해시키기에 너무나 막막했다. 심지어 주식을 매수한 이래 계속 주가가 떨어지기만 했으니, 자신의 손실분을 책임지라고 막무가내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주가를 올릴 때 자기에게만 미리 얘기를 해주라는 주문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 내 대답은 뻔했다.

“주가가 올라갈 지 내려갈 지는 하느님도 모른다.”

“혹시 하느님 주소 아시면 알려달라, 내가 찾아가서 물어보고 와서 알려주겠다.”

이미 공시가 된 내용이나, 공개 IR 등을 통해 알려졌던 이야기들도 개인에게는 새로운 내용이었다. 신문지상을 통해서 알려졌던 내용들도 그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개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뭔가를 얘기를 하면 할수록 기대하는 바는 더 커졌고, 늘 애먼 소리만 되돌아왔다.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이미 기사로 소개되었고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얘기를 하고 나면 불과 며칠도 못 참고, ‘그 프로젝트가 잘 끝났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한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성격상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어야 함을 아무리 이해를 시켜도, 돌아서면 또 물어보곤 했다.

“어제 같은 오늘이고 오늘 같은 내일이니, 조바심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개인 투자자들은 제 풀에 지쳐서 대부분은 나가떨어졌다. 그럴 땐 그냥 떨어지지 않았다. 악담을 퍼부은 후에야 떨어져 나갔다. 끝이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커뮤니케이터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잘 못 가르친 것이 너무 많다. 주인공의 말 한마디가 대서특필되고 죽어가던 회사가 신기하게 급등을 하는 것은 극적 드라마 전개를 위한 장치일 뿐이건만, 아직도 상장사의 아무 커뮤니케이터라도 영화의 그 사람 같이 세상을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개인들이 너무 많다.

 

세상 일은 주물러도, 개인 사는 신경 쓰지 못해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국내 대형 건설사를 인수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가 당시 주가 관련으로 엄청난 태풍 속으로 휘말렸던 적이 있었다. 2008년 중반 무렵 그 회사 주가는 불과 6개월 사이에 883.87%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 당시 코스피와 코스닥을 통틀어 상반기 주가상승률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그 해 6월 초에는 14만원대까지 치솟았는데, 그 전년도 연말에만 하더라도 겨우 1만원 대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4배 가까이 수직상승을 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라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건설사 부도가 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초초초대박’을 터트린 그 업체는, 국내 도급 순위로는 겨우 40위권이었다. 주가 폭등의 비밀은 다름아닌 최대 주주와 2대 주주간의 경영권분쟁으로 인한 지분매입 경쟁 탓이었다. 그 해 봄에 지분 22.8%를 인수하면서 기존의 경영진과 상호협력하며 공동경영하자고 합의를 하며 끝난 듯 보였는데, 그 직후 대표이사 선임 건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나오면서 물밑에서 서로 지분매입 경쟁에 나선 것이었다.

주가 상승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 직전연도인 2007년 12월에 유상증자를 하면서 배정된 직원들의 우리사주였다. 직원들이 우리사주에 참여한 발행가는 9,800원이었다. 그런데 주가는 폭등했지만, 우리사주 물량은 1년간 사고 팔 수 없는 보호예수에 걸려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상황을 보도하면서 ‘주식 로또’를 손에 들고 있는 직원들의 행동에 집중했다. 혹시나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은 우리사주 때문인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난무했었고, 우리사주가 양대 주주 중 어느 쪽 편을 드는 지에도 관심이 쏠렸다.

거기에 하나 더 당시 나보다 두어 살 위였던 그 회사 홍보팀장도 우리사주에 참여했는데, 그로부터 한참 뒤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눈 대화에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 한 채는 너끈하게 마련하셨겠어요?”

“다들 그렇게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저는 아직 우리사주 보유 중입니다.”

그때가 아마 2009년 하반기 정도였나 싶은데, 모기업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 이행 중이었고, 그 회사는 워크아웃 가냐 마냐 기로에 놓여있었다. 주식의 흥행 이슈는 이미 꺼질 대로 꺼져있었고, 주가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불과 2~3천원대를 헤매고 있었을 때였다.  14만원대는커녕 원금인 9,800원에서도 4분의 1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그런 얘기 하도 많이 들어서요. 하하” 당연히 주변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해 했을 것이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홍보팀장이기 때문에 회사가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상황에서는 회사 내부에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 개인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처분하는 일에는 신경 쓰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당연히 회사 내부의 다른 모든 임직원들은 홍보팀장인 만큼 회사 내부 돌아가는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가장 손실을 적게 본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실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던 기업들에서는 늘 기업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과 함께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유상증자 때마다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참여하고 나면 어김없이 주가 하락의 연속이었다. 그 자금이 대부분 회사에서 알선해준 대출로 참여한 것인데, 가만히 있기만 해도 대출이자는 꼬박꼬박 나갔기 때문에 주가가 웬만큼 오르지 않으면 손실은 이중삼중이었다.

회사의 정보통이었던 나였기에, 모든 팀장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누구나 손실 폭을 최소로 해서 이미 탈출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 담당들은 자기 개인의 실리를 차리는 데에는 누구보다 우둔하다. 실토하자면 난 내 개인 돈으로 빚잔치 다 하고 아직도 내 증권계좌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그 회사 주식이 조용히 잠자고 있다. 팔아봐야 몇 푼 되지도 않기에 그냥 형체 없는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산다. 그렇게 커뮤니케이터들은 오해를 받으며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