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해 이베이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품목은 무엇일까? 슈퍼카? 보석? 아니다. 미 폭스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이베이에서 가장 비싸고 흥미로운 품목은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의 점심식사 참여권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버핏과의 점심식사 참여권은 역대 최고가인 456만7888달러(약 52억9000만원)에 이르렀다.

물론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정량적으로 '456만7888달러의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마케팅적 측면의 요소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핏이 따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순간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업인에게 시간은 절대적인 가치며 원동력이자 사실상 '모든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기 때문이다.

▲ 삼성전기 MLCC 현장을 둘러보는 이재용 부회장. 출처=삼성전자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고 말들이 많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린 후 한 달이 지나가고 있으나 검찰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방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정농단과 관련된 파기 환송심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 '아무것도 정해지지 못한 불확실성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단 현장행보에 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반도체부터 가전, 삼성전기 MLCC 현장 등을 누비면서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나서는 중이다. 

사태가 심상치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에서 한판 붙으며 끊임없이 한국과 삼성전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고,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4일부터는 한일 경제전쟁 2라운드까지 펼쳐질 판국이다. 소프트뱅크가 암을 매각하려 준비하고 엔비디아가 나서는 한편, 파운드리의 TSMC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잘근잘근 씹어먹으려 이빨을 곤두세우는 이 날카로운 시대속에서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정해지지 못한 불확실성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부회장의 고군분투도 '헛된 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1년 8개월간 진행했으며 무려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 회 소환 조사 등을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단언할 수 없지만, 현재 개점휴업인 법적 리스크가 다시 살아날 경우 언제든 소모적인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도 유령처럼 살아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든 수사대상이 되어 '시간'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은 이 부회장이, 온전하고 정상적으로 경영에 집중할 것이라 믿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로는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빅딜이 전무한 상황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평등하며 중요하듯이, 이재용 부회장과 버핏의 시간도 평등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1등 기업을 지휘하는 총수의 시간이 오히려 너무나 쉽고 '아무렇지도 않게' 낭비되고 폄하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제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못한 불확실성의 시간을 방치할 것인가. 죄를 지었으면 명확하게 판단하면 그만인 것을, 별다른 단서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1등 기업 총수의 시간을 볼모로 잡아두는 장면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될 수 없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특수한 시대를 사는 남다른 비애로 치부하기에는 우리가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삼성전자가 달리고 한국경제가 달리도록 하려면 최소한 기회는 줘야하는 것 아닌가.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라야한다.

법치의 근간을 바로세우는 일에는 엄정하게 대처하면서도, 이제는 이재용 부회장의 시간을 온전히 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