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전기자동차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테슬라·BMW·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자체 개발에 나섰다. 배터리를 납품 받거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각 사의 전기차에 최적화 된 배터리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수직계열화 전략이다.

한국·중국·일본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다가올 '배터리 대란'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유럽의 친환경 규제가 강해지면서 전기차 수요는 지속적으로 팽창할 것이기 에상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기차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인 배터리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테슬라, 미주와 유럽을 아우르는 자체 생산 전략

미국 테슬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독자적인 배터리 개발에 들어갔다.

테슬라는 한국 LG화학과 중국 CATL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 받고, 일본 파나소닉과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생산 기지인 기가팩토리1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다.

하지만 최근 원가 절감을 꾀하기 위해 CATL과 함께 리튬 인산철 배터리(LFP)를 개발하는 등 여러 전략을 펼치고 있는 모습인데, 자체 배터리 생산 또한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소재 공장에서 1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자체적인 배터리 생산라인을 시범 운영하는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 중이며,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음 달 개최하는 '배터리 데이'에서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캐나다 배터리 생산 설비 업체 하이바시스템스와 미국 배터리 업체 맥스웰을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한창 조성되고 있는 기가팩토리4에서 내년부터 양산될 전기차에 자체 개발 배터리를 탑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외르크 슈타인버그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테슬라는 베를린 기가팩토리에 완전히 새로운 배터리를 적용할 계획"이라며 "고용량화를 통해 배터리 크기는 더 작아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배터리 독립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주민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7월 29일 "'완전히 새로운 배터리'란 테슬라가 현재 준비 중인 내재화 배터리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기차 주행 거리가 늘어날 뿐 아니라, 외장재 감소로 원가도 절감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연구원에 따르면 테슬라는 오는 2021년 7월부터 기가팩토리4에서 모델Y를 연간 25만대 규모로 생산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약 20GWh 용량의 원통형 배터리가 필요하다.

그는 "테슬라는 모델Y 생산 개시와 동시에 2차 공장 착공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빠르면 2차 공장부터 배터리 셀을 자체 생산하는 설비를 도입해 배터리 내재화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내년 7월 생산되는 모델에 바로 내재화 배터리가 탑재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2분기 경영 실적을 발표하면서, 기가팩토리4향 배터리는 로컬(유럽)에서 조달 받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BMW·폭스바겐, 연구소 및 합작사 설립…'독자' 배터리 셀 향한 야심
▲ 독일 뮌헨에 있는 BMW 배터리 셀 역량 센터. 출처=BMW

삼성SDI와 CATL의 배터리를 쓰는 독일 BMW는 '2019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배터리 개발 기술을 내재화 해 우리 전기차에 최적화 된 배터리를 직접 개발할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BMW는 지난해 11월 자체 배터리 연구소인 '배터리 셀 역량 센터'를 개소해 연구 개발(R&D) 역량을 강화했고, 최근에는 독일 연방 및 주 정부로부터 6000만유로를 지원 받아 뮌헨 인근에 1만4000㎡ 면적의 배터리 셀 공장을 짓고 있다. 2022년 시범 가동을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다.

BMW의 경우, 배터리 셀 역량 센터에서 개발한 배터리 셀 생산 공정을 뮌헨 파일럿 공장에 바로 적용해 배터리 내재화를 가속화 한다는 전략이다. BMW 관계자는 "품질·성능·비용 모든 면에서 최적화 한 배터리 셀의 생산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독일 폭스바겐도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주력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올해 2월 중국 3위 배터리 제조 업체 궈쉬안의 지분 26.5%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앞서 폭스바겐은 2019년 9월 스웨덴 배터리 팩 제조 업체 노스볼트와 리튬 이온 배터리의 대량 생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독일 잘츠기터에 16GWh 규모로 구축된 합작 공장은 이르면 2023년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여기에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했으며, 향후 배터리 셀까지 생산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인력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은 당장 배터리업계에 큰 변동을 일으키지는 않겠으나, 5년에서 10년 후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앞으로 고객사와도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배터리 제조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결국 차세대 배터리의 개발 및 상용화가 주도권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