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최근 우리나라의 첫 수출 원자력 발전소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가 수주 10여년 만에 가동을 시작하면서, 추가적인 해외 수출 낭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UAE 원전의 주 계약자인 한국전력은 바라카 원전 1호기가 시범 운전에 들어갔다고 지난 1일 밝혔다. 현재 바라카 원전 1호기는 원자로 출력을 높이고 있으며, 출력 상승 및 성능 보증 시험이 끝나면 내년 중에 아랍권의 첫 상용 원전으로서 본격적인 상업 운전을 시작하게 된다.

한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을 186억달러(약 22조원)에 수주, 아부다비 인근 바라카 지역에 총 5060메가와트(MW) 규모의 원전 4기를 건설하고 있다. 현재 2호기까지 완공된 상태다. 2호기는 2018년 3월 1호기 완공 이후 약 1년 반 만인 지난해 7월 공사가 끝났다.

3·4호기 건설 또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3호기와 4호기의 공정률은 올해 5월 기준 각각 92%와 84% 이상으로 추정되며, 4기 모두 가동 시 UAE 전체 전력의 25%를 공급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형 신원전 'APR 1400' 노형 4기를 최초로 수출했으며, ▲건설 부문 186억달러(약 22조원) ▲운영·관리 부문 494억달러(약 59조원) 등을 포함해 총 100조원에 가까운 외화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됐다.

첫 해외 진출이 긴 시간을 거쳐 결실을 맺고 있는 가운데, 한전은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로 원전을 수출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암초가 많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도 있어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다는 설명이다.

먼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은 약 21조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3기가와트(GW) 규모의 원자로 3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전은 2017년 12월 무어사이드 원전의 사업자인 영국 뉴젠의 지분 100% 인수를 위한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해당 사업 수주가 거의 확실시 된 듯 보였다. 그러나 우선 협상 기간 동안 뉴젠의 모회사인 일본 도시바와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6개월 만에 우선 협상자 지위를 상실, 이후 현재까지 일본 도시바와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젝트의 수익성 및 리스크도 부각된 바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UAE 원전처럼 건설 후 바로 정산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수주사가 우선 자체 자금 조달로 건설한 뒤 직접 운영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에 우리 정부와 한전은 리스크 경감 방안을 영국 정부 및 도시바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우디의 원전 건설 사업 역시 게걸음 치고 있다.

사우디는 탈석유 기조 아래 2030년까지 약 200억~300억달러(약 22조~34조원)를 투입, 1.4GW 규모 원전 2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당초 지난해 말 최종 낙찰 업체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아직까지 무소식이다. 한편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중국·프랑스·러시아 등도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 체코 두코바니 원전. 출처=한국수력원자력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특히 체코 원전 사업에 대해 수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이를 위한 입찰 전담 태스크 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지역에 1000~1200MW급 원전 1기를 건설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업 모델·재원 조달 방안·일정 등을 차질 없이 발표하는 등 열의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는 지난달 초 원전 사업 모델을 EPC(설계·조달·시공)로 확정했으며, 올해 말 입찰 안내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투입 비용은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한수원은 한전기술·한전연료·두산중공업·대우건설 등과 함께 '팀코리아'를 구성해 향후 입찰서 작성 및 질의 대응 업무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현지 아이스하키팀 후원과 신규 원전 지역 대상 봉사 활동 등 체코의 마음을 사기 위한 물심양면의 지원 전략을 펼치는 모습이다.

▲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출처=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은 루마니아와 이집트에도 문을 두드리는 등, 주력인 상업 원전 건설 뿐 아니라 운영·정비·해체 등에 이르는 원전 전주기 산업으로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체르나보다 원전 1·2호기를 상업 운전 중인데, 이 가운데 1호기 계속 운전을 위한 대형 설비 개선 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전 운영 정비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면서, 2019년에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직접 루마니아를 방문해 정부 고위급 인사와 원자력 공사 사장 등에게 원전 사업 참여 의지를 적극 표현하기도 했다.

올 하반기에 진행될 루마니아의 원전 삼중수소 제거 설비(TRF) 입찰 역시 중요한 기회다. TRF 사업은 내년 3월 계약 체결과 오는 2025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또한 한수원은 이미 러시아가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에서도 틈새를 노리고 있다. 해당 사업은 2028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내년부터 착공된다. 원전 4기가 건설될 예정인 가운데, 한수원은 터빈이 있는 건물이나 옥외 시설물 등 2차측 건물의 EPC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수원은 올해 4월 캐나다의 원전 해체 현장에 국내 전문 인력을 파견하는 계약을 현지 원자력 엔지니어링 업체 키넥트릭스와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 원전 해체 인력의 해외 파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내에서는 원전을 안전히 운영하는 데 힘쓰고, 해외에서는 전략적인 원전 수주 활동을 통해 우호적인 수주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한수원은 지난해 폴란드·불가리아·카자흐스탄·필리핀 등의 원전 EPC 수주를 위해 사업 제안서를 내는 등 공격적으로 수출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다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몇몇 국가들은 원전 사업 발주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냥 원전 수출의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이유는 코로나19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공을 들이고 있는 체코 외 곳곳의 수주전에서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업체들이 쟁쟁한 경쟁자로 도사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강적으로 꼽힌다. 글로벌 원전 시장은 현재 러시아가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개발 도상 국가들에서 '원전 붐'이 일어난 상황에서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 로사톰은 중국·인도·방글라데시·터키 등 12개국의 원전 36기를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3일 세계 원자력 발전 사업자 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약 160기의 원전 건설이 계획된 가운데, 우리나라는 건설 역량·원자로 기술·가격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약 70기를 수주할 수 있는 실력으로 평가됐다. 

러시아·미국·프랑스·중국·일본 등이 강력한 맞수들이긴 하나, 사실상 원전 수출 여력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수출 잠재력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탈(脫) 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가로막히고 기존 원전까지 조기 폐쇄하기로 하면서 국내 원전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 불안감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해외 수출까지 물거품이 되면 관련 생태계는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붕괴되리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향후 수출 실패에 대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두산중공업이 현 정부의 탈 원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바 있다.

탈원전은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의 핵심으로, 노후화 된 원전의 안전성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청정 에너지 육성 등의 취지에서 추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부터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중단, 월성 1호기 폐쇄 및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원전 발전 비중을 낮추는 대신,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 에너지의 비율을 높이자는 것이 골자다.

국내 최대 민간 발전 기업인 두산중공업의 주력 사업은 화력·원자력 발전 분야로, 전체 매출의 15% 가량을 원전 설비 관련 영역에서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발표한 2017년부터 수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두산중공업은 올해 일부 휴업과 구조 조정을 거칠 정도로 극심한 경영 위기를 겪었다. 지난 5월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3조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 받기도 했다.

현재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그린 뉴딜 전환에 맞춰 해상 풍력 사업을 새로운 주력 사업으로 삼고 활로를 꾀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