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 모델3(왼쪽)와 한국지엠 쉐보레 콜로라도. 테슬라와 한국지엠은 최근 미국차의 국내 수입차 시장 입지를 끌어올린 주역으로 꼽힌다. 출처= 각 사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본사 본거지를 미국에 둔 수입차 업체들이 최근 국내 동종 시장에서 세력을 공격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상품성 등을 앞세운 주요 미국 브랜드의 실적 강세가 두드러지는 동시에, 그간 수입차 2위를 고수해온 일본차 업체들이 불매운동으로 쇠퇴함에 따라 반사효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일부 인기 브랜드들이 미국차의 한국 입지를 강화하는데 ‘하드캐리’ 해나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차의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 상반기 기준 일본을 제치고 2위 수준을 나타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미국차의 수입차 점유율은 13.4%(1만7203대)로 전년동기(9.5%·1만348대) 대비 3.9%P 증가했다. 영국 6.6%, 스웨덴 5.1%, 프랑스 1.4%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해당 기간 국적별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 변동 추이를 살펴볼 때, 일본차가 상실한 시장 점유율이 미국차를 비롯한 일부 국적 차에 분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은 21.5%에서 13.7%P 감소한 7.8%로 집계됐다. 동시에 미국차를 비롯해 독일(12.2%P), 스웨덴(0.3%P) 등 3개 국적별 완성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상승했다.

미국차의 시장 점유율은 KAIDA 회원사 아닌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실적을 보탤 경우 더욱 상승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국내 월별 자동차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1~6월 국내에서 완성차 7079대를 판매했다. 테슬라 실적을 미국차 판매대수에 보탤 경우 지난 상반기 미국차 점유율은 17.9%로 늘어난다. 미국차가 독일차(61.8%)에 이어 2위 위상을 확고히 한 셈이다.

미국차는 그간 한국 시장에서 3~4위 수준의 점유율을 줄곧 유지해왔다. 한국이 지난 1987년 수입차를 대상으로 시장을 개방한 뒤 독일, 스웨덴, 프랑스, 미국 등 국적별 업체의 완성차 제품이 순차적으로 유통돼왔다. 이 가운데 국내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독일차가 상품성, 브랜드 인지도 등 역량을 바탕으로 선두 위상을 유지해왔다. 이어 품질과 가성비를 갖춘 일본차가 2위를 줄곧 고수했다. 미국차는 영국차에 밀려 4위에 머물렀던 2015~2018년 기간을 제외하곤 줄곧 3위 자리를 지켜왔다.

테슬라 ‘전기차’ 쉐보레 ‘SUV·픽업트럭’으로 호응 얻어

미국차가 최근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로 한국·일본 양국이 역사 문제로 갈등을 일으킴에 따라 일본차에 대한 국내 수요가 급감한 점이 꼽힌다. 일본차 업체 가운데 한 곳인 닛산이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지 못하고 지난 5월 한국에서 철수할 정도로 일본 브랜드의 입지는 위축됐다.

또 고급 전기차 라인업으로 올해 들어 국내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테슬라를 비롯해 작년 8월 KAIDA에 회원사로 가입한 한국지엠(쉐보레) 등 두 업체가 미국차 상승세를 견인했다.

이 가운데 한국지엠은 인천에서 완성차 생산 공장을 운영함에 따라 국산차 업체로 일컬어진다. 한국지엠은 다만 지엠 본사를 통해 전량 수입하는 차량을 더 많이 출시한 뒤, 해당 차량들의 수입 감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KAIDA에 가입했다. 그간 수입차 업체만 회원사로 존재했던 KAIDA의 조직적 특성을 활용했다. 한국지엠이 이후 국내에서 판매한 이쿼녹스, 트래버스, 콜로라도 등 수입 모델의 실적은 KAIDA 통계표에 반영됐다. 이에 따라 KAIDA 통계 상 미국차의 판매량도 함께 증가했다.

미국차가 국내 시장 입지를 넓힐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 각 업체별 상품 전략이 판매 성과로 이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테슬라는 타사 동종 모델에 비해 크게 제작되고 높은 상품성을 갖춘 프리미엄 전기차들로 제품군을 구성함으로써 수요를 이끌어냈다. 한국지엠도 한국 시장의 대세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비롯해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픽업트럭 시장에 신차를 내놓음으로써 판매실적을 향상시켰다. 정통 SUV 브랜드를 표방하는 지프(FCA코리아)도 고유 브랜드 정체성을 어필해 작년 연 1만대 기록을 처음 달성하는 등 성과를 냈다.

다만 캐딜락, 포드 등 중·소규모의 입지를 갖춘 미국차 업체들은 저조한 수준의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캐딜락은 지엠 본사의 프리미엄 브랜드고, 포드는 현지에선 오랜 역사를 갖춘 국민 브랜드로 꼽힌다. 다만 두 브랜드 모두 한국에 진출한 후 입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기를 못 펴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업계에선 이에 따라 앞으로도 테슬라, 쉐보레 등 일부 브랜드가 미국차의 한국 입지를 주도적으로 높여나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 분야를 연구해온 박재용 메타리버 테크놀러지㈜ 이사(전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차 업체들은 그간 한국 소비자 니즈에 맞춰 차량 상품성을 진화시킴으로써 시장 입지를 다져올 수 있었다”며 “다만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부 브랜드가 미국차의 한국 시장 파이를 유지·확대하는 기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