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반도체 굴기가 선명해지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강력한 정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수단이 더욱 거칠고 파격적인 흐름을 보여 눈길을 끈다.

중국 반도체의 목표 '자력갱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중앙정치국(中央政治局) 회의에서 "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 걸었다. 코로나19로 초유의 고립경제 가능성이 타진되는 가운데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를 기점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에도 시선을 돌린 셈이다. 

중국 국무원이 서부대개발을 발표하며 미국의 제재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서부 공업지대의 타격을 동부 해안 지방의 산업개발로 상쇄하는 로드맵을 짠 것도 비슷한 연장선이다.

결국 중국은 '외부의 타격에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을 원하는 셈이다. 이는 코로나19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되자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기조를 강화하며 대만의 TSMC를 끌어들인 미국 정부의 전략과도 비슷하다.

중국 반도체 전략도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 자력갱생, 즉 반도체 자립을 위해 더욱 노골적인 전략을 택하고 있다.

사실 중국이 산업의 쌀인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오래되었으나, 지금까지는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글로벌 공급망 내부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로 반도체 사업에 임했다. 단숨에 힘의 역전을 끌어낼 수 없다면 시장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 서서히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유력한 수단으로는 인수합병이 고려됐다. 그러나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인수에 실패하며 중국은 반도체 굴기의 밑그림 자체를 바꿨다. 외부의 기술력을 이입시켜 반도체 강국을 이루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어렵다는 판단이 섰고, 이내 자국 반도체 생태계의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칭화유니가 움직였다. 칭화유니그룹은 2017년 7월 XMC를 인수합병하며 세운 창장메모리를 통해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 후베이성 지방펀드, 후베이성 과학투자 공동투자건설 등과 공조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 전반에 대한 야망도 넘실거린다. 당장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따라 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후 중국 반도체 굴기는 비록 미국의 제재에 푸젠진화가 D램 생산을 포기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지금도 공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WSJ는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군자금”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2014년 1차 펀드를 조성했을 당시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크게 올린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4% 내외에서 움직이는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올리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표현하며 자급률 상승에 사활을 걸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5% 내외다.

그러나 이번 반도체 군자금을 통해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에서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창신메모리는 D램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고 지난 4월 양쯔메모리(YMTC)는 128단 QCL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성공한 데 이어, 샘플 테스트까지 통과했다. 이러한 행보는 당연히 중국 반도체 자급률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MIC는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와 공동으로 6조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워 반도체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TSMC와 거래가 끊긴 화웨이가 최근 SMIC와 많은 물량을 주고받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출처=갈무리

파격적 전략의 연속
중국의 반도체, 특히 시스템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전반의 자력갱생은 정부의 지원과 인재 빼가기를 비롯해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속도전에 가깝다.

최근에는 그 속도의 '격렬함'이 예상범위를 뛰어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최근 소프트뱅크의 암 중국 지사인 암 차이나에서 열린 '반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출처=갈무리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영국의 암 본사는 중국법인의 CEO인 앨런 우를 해고하려고 했으나, 앨런 우는 이에 불복해 현재 독자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중국인이 대부분인 현지법인 직원들도 앨런 우를 ‘옹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51%의 지분을 가진 중국 정부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정부가 필요하다면 현지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부를 잠식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특히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다행히 중국 지분 최소화로 적절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만 '상대는 중국 정부'라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법인세 면세 정책도 추진된다. 홍콩 SCMP에 따르면 15년 이상 사업을 해온 중국 반도체 제조기업이 28나노 이상의 미세공정을 가질 경우 10년간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그 외 공정에는 5년간 면제, 이후 5년간 세율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국가와 기업, 반도체 원팀...우리는?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국가와 기업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도 반도체 자급을 위해 자국 내 생산기지 이전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파격적인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기점으로 글로벌 ICT 전자업계가 폭풍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각 국가와 기업은 원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전전긍긍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달려야 하는 수출역군들이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갖은 견제와 정치적 논란에 허덕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심각한 후폭풍도 예고되는 가운데, K-반도체 기업의 앞 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길한 시나리오도 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