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정유 4사 로고. 출처=각 사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정유업계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유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 1분기는 정유 업체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가혹한 계절이었다. 당시 국내 정유 4사로 꼽히는 GS칼텍스·SK이노베이션·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은 '역대급' 영업손실을 내면서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이들이 1분기에 기록한 적자는 도합 4조원이 넘는다.

2분기에도 대체로 적자 국면이 이어졌으나,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손실은 7000억원대로 대폭 줄어들었다. 코로나19발 수요 충격이 이전보다 완화됐고, 기록적인 급락세를 보였던 국제 유가도 비교적 안정화 됐기 때문이다. 적자 폭이 크게 개선되면서, 업황은 바닥을 찍고 반등세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유사가 기름 안 팔 수도 없고…상반기 내내 '밑지는 장사'
▲ 국내 정유 4사 2020년 2분기 경영 실적. 자료=각 사

4사의 실적 규모 및 증감율은 크고 작은 차이를 보였지만, 영업익이 전분기 대비 큰 폭 확대된 모습은 공통적이다. 다만 매출액의 역성장세도 일관된 흐름으로 나타나, 코로나19 여파로 외형이 축소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석유 사업의 규모와 비중이 클수록 전년비 매출 타격도 큰 양상이다. 국내 업계 1·2위를 다투던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의 경우, 2분기 영업손실이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영업이익의 2배에 달한다.

주력인 정유 사업 부문의 실적만 따지면 ▲SK이노베이션 매출액 4조5177억원·영업이익 -4329억원 ▲GS칼텍스 매출액 3조4756억원·영업이익 -2152억원 ▲에쓰오일 매출액 2조5915억원·영업이익 -3587억원 ▲현대오일뱅크 영업이익 -186억원 등으로,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정유 업체들의 실적을 끌어내리는 '직접적인' 요인은 정제 마진의 약세다.

정제 마진은 석유 제품의 가격에서 원료 가격과 수용·운용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뺀 값으로, 흔히 정유사의 수익 지표로 여겨진다. 통상적으로 정제 마진의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잡으며, 정제 마진이 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가 형성된다.

우리나라가 기준으로 삼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코로나19의 본격적인 확산세가 시작된 지난 3월 셋째 주를 기점으로 15주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6월 셋째 주 들어서야 가까스로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결국 정유 4사는 2분기 내내 밑지는 장사를 했던 셈이다. 이후 정제 마진은 0달러대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와 -를 오락가락하며 답보하는 모양새다.

정유 빼고 다 흑자 났는데…

정유 사업 의존도가 높으니, 업황 부진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에쓰오일의 경우 정유 부문을 제외한 석유화학·윤활기유 등 모든 부문에서 흑자를 냈지만, 적자 국면을 피할 수 없었다. 정유 사업이 총 매출에서 75.1%의 비중을 차지한 만큼, 다른 사업부의 이익으로는 정유 부문의 압도적인 손실 폭을 미처 만회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나머지 3사에도 통용된다. GS칼텍스 또한 정유 사업에서 2152억원의 적자를 본 것 외에는 석유화학·윤활유 등 전 사업부에서 플러스(+)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유 부문 적자가 타 부문 영업익 합계의 약 2.6배에 달하는 상황이다.

2분기 가장 큰 영업손실을 기록한 SK이노베이션도 석유 부문과 배터리 사업을 뺀 나머지 사업 부문들에서는 영업익을 남겼다. 하지만 석유 사업의 적자가 무려 4329억원으로 총 영업손실 4397억원의 98.5%에 해당하는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미약한 성과에 불과해진다.

4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 전환한 현대오일뱅크 역시 정유 부문의 적자는 면치 못했다. 다만, 혼합 자일렌·카본 블랙·상업용 유류 터미널 등 다른 사업부에서 창출한 영업익 431억원이 정유 사업에서 기록한 186억원의 영업손실을 상쇄하면서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정유 부문에서 입은 타격이 치명적이긴 하나, 미약하게나마 실적을 뒷받침한 공신들도 눈여겨 볼 필요 있다. 대개 유가 하락에 따른 원가 절감 및 재고 관련 손실 감소의 효과를 본 사례들이다.

석유화학 사업은 연료 가격 하락으로 변동비와 재고 관련 손실이 축소되면서 호조를 나타냈다. SK이노베이션의 해당 부문 영업익은 1분기보다 1580억원 늘어나 682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이는 전 사업부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이익이기도 하다. 

에쓰오일의 경우, 올레핀 계열 다운스트림 제품들의 견조한 수요가 눈길을 끈다. 특히 폴리프로필렌(PP)에 관한 한, 코로나19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작용했다. 개인용 방호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떨어진 가운데, 관련 제품 소비 증가세가 중국 PP 시장의 안정화를 견인하면서 수익이 확대됐다. 프로필렌옥사이드(PO) 스프레드 또한 역내 설비 정기 보수가 집중되면서 소폭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윤활기유·윤활유 사업은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관련 봉쇄 조치가 이어지면서 특히 미국·유럽 시장 내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원가 하락으로 인한 마진 개선 효과에 힘입어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했다. 다만 GS칼텍스는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 등과 달리, 해당 부문의 매출과 영업익 모두 전분기 대비 16% 이상씩 감소하는 예외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현대오일뱅크, 수요 한파 딛고 '나 홀로' 흑자…비결은?

2분기에도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면서 정유업계의 실적 부진은 사실상 확정된 미래였다. 시장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실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 시국에 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현대오일뱅크는 2분기 국내 정유사들 중 유일하게 흑자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현대오일뱅크의 2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가 마치 불가항력처럼 정유 업황을 좌우하는 와중 재무 악화를 타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제 마진의 부진이 불가피한 대신, 설비의 경쟁력 및 유연한 운용을 통해 정유 사업의 손실을 메꿨다. 특히 '초중질 원유' 처리가 신의 한 수로 꼽힌다. 초중질 원유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황 같은 불순물이 많아 정제하기 까다로운 유종으로 꼽힌다. 즉, 기술만 좋으면 원가 절감을 타진할 수 있는 원재료인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고도화 된 탈황 설비를 활용해 남미산 초중질 원유의 투입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개선했다는 설명이다. 2분기 현대오일뱅크의 초중질 원유 비중은 경쟁사 대비 5~6배 높은 33%까지 확대됐다.

경쟁사들 대부분이 정유 사업에서 낸 대규모 적자를 석유화학 및 윤활기유 사업에서 일부 보전한 것과는 차별화 되는 대목이다.

남미산 초중질 원유의 경제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해당 원료의 가격 상승은 중동산 원유에 비해 더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정기 보수 기간 중 하루 2만 배럴 규모의 탈황 설비 증설을 완료해 초중질 원유 추가 투입이 가능해졌다"면서 "올 하반기에 초중질 원유의 경제성이 더 높아지면, 석유 제품 시황 개선 시 연간 흑자 전환도 노려볼 만하다"고 언급했다.

정말 턴어라운드? 하반기 웃을 수 있을까

정제 마진 개선과 코로나19 종식이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정유 4사는 입을 모아 하반기 실적 회복을 예상했다. 각국의 코로나19 셧다운이 풀리면서 경제 활동이 재개되고 있고, 유가 및 석유 제품 소비의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쓰오일 측은 "올 3분기 주요 국가들의 코로나19 관련 제한 조치 완화와 경기 부양책으로 원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도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가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면서 석유 소비가 증가, 이는 정제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라고 예측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분기 흑자 전환의 기세를 이어 하반기에도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하반기에는 2분기 유가가 저점에 머물 당시 사들인 원유가 공정에 투입됨에 따라 '래깅 효과'를 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래깅 효과란 유가 상승으로 석유 제품 가격이 올라 판매 시 얻는 마진이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한편, 원유 공식 판매 가격(OSP) 급등이 정유사들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사 아람코는 지난 7월 OSP를 전월비 배럴당 5.6~7.3달러 인상한 바 있다. 이는 20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이어 이달 OSP도 배럴당 1달러 인상돼 현재 1.2달러까지 오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가장 확실한 시황 개선 동력으로 꼽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코로나 시대에도 유효한 자구책을 마련했듯이, 다양한 수익성 개선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