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나아가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기점으로 거세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국가 대 국가의 발언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원색적인 비판이 난무하는 한편 각국 영사관이 폐쇄되고 통상압박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공세는 더욱 집요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넘어 바이트댄스의 틱톡 서비스를 자국에서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틱톡 인수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여기에 텐센트의 위챗은 물론 알리바바도 미국 정부의 압박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험로를 예고하는 중입니다.

중국도 반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틱톡 및 위챗 등에 압박을 가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강도는 생각보다 흐릿합니다. 무역전쟁 당시 미국이 100을 공격하면 중국도 동일하게 100을 반격했는데, 틱톡 및 위챗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중국은 현 상황에서 '말'로만 대응하는 수준입니다.

왜일까요? 아직은 세계 초 강대국 미국과 맞대결을 펼치기는 어렵기에 정면충돌을 자제하려는 전략이지만, 사실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이미 써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보입니다.

만리장화벽
미국은 틱톡 등을 압박하며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를 출범시켰습니다. △클린 캐리어(Clean Carrier) △클린 스토어(Clean Store) △클린 앱(Clean Apps) △클린 클라우드(Clean Cloud) △클린 케이블(Clean Cable)을 핵심에 걸고 이에 부합되지 않는 타국의 서비스는 미국은 물론 동맹국의 안보를 저해하기 때문에 퇴출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현재 미국은 동맹국들이 클린 네트워크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응은, 앞에서 말했지만 다소 미온적입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렸기 때문인데, 무슨 카드를 이미 써버렸다는 것일까요?

바로 만리방화벽입니다.

중국은 2003년부터 인터넷 공간에 만리방화벽을 세웠습니다. 인터넷 주권을 세운다는 미명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포함의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모조리 퇴출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만리방화벽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체안정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것을요. 중국 정부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결집하게 되면 소요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우려했고 이에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외국, 주로 미국의 서비스들을 자국 시장에서 모조리 퇴출시킨 초강수를 둔 셈입니다.

덕분에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와 같은 중국 BAT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강력한 미국의 서비스들이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중국 서비스들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까지 받아가며 단숨에 몸집을 불렸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까지 타진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만리장화벽을 통해 인민을 통제했고 홍콩의 우산시위, 나아가 천안문 광장 기념 시위 등을 모조리 막으며 체제안정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은 거대 시장인 중국 진출을 끈질기게 타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물론 미국의 모든 기업들이 중국 진출에 나서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애플이나 테슬라와 같은 중국의 절친들도 있지요.

그러나 최소한 인터넷 기업 중에서는 미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성과를 거두더라도 아이치이와 손잡은 넷플릭스처럼 우회경로를 타진하거나, 혹은 오매불망 중국 정부의 '입'만 바라보는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2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중국의 만리장화벽은 일종의 상식이 됐습니다. 좋게 말하면 불만스럽지만 모두에게 '원래 그런 것' 정도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 만리장성. 출처=갈무리

트럼프 시대
이 오묘한 평화는 트럼프 시대에 깨졌습니다. 취임 초부터 자국 보호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거하게 싸움꾼 본능을 보이더니, 이번에는 중국의 만리장화벽과 비슷한 전략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클린 네트워크입니다. 이에 기반해 자국은 물론 동맹국에서 중국 인터넷 서비스를 '쓸어버린다'는 기발한 발상이 나왔습니다. 틱톡과 위챗 등에 대한 압박의 동력입니다.

중국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틱톡에 대한 압박을 가한다면 중국도 비슷한 압박으로 몰아쳐야 하는데, 이미 만리장화벽으로 자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인터넷 기업은 없습니다. 후려치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건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클린 네트워크와 만리장화벽의 차이점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리장화벽은 전형적인 폐쇄입니다. 자국의 막대한 시장을 무기로 삼아 미국 기업들을 몰아내는 한편, BAT 성장 등을 통해 자력갱생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는 외부와의 단절을 전제로 가능한 전략입니다. 반면 클린 네트워크는 성격이 다릅니다. 일단 시작부터 폐쇄가 아닌 연대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아무리 차이나머니를 살포해도 얻을 수 없었던 친구(동맹국)가 많고, 이를 바탕으로 연대를 통해 중국이라는 '적'을 배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자는 목표도 강렬합니다.

▲ 출처=틱톡

차이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와 중국의 만리방화벽은 동일한 인터넷 장벽이지만,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만리장화벽을 쌓았고 미국도 정치적인 이유(코로나 위기를 넘으려 외부를 때리는)로 클린 네트워크를 출범했다고 볼 수 있지만, 중국은 폐쇄를 택했고 미국은 연대를 택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뼈 아픈 순간입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줄리아 로벨은 저서 '장성, 중국을 말하다'를 통해 만리장성을 두고 "중국을 읽는 거대한 은유"라 표현했습니다.

야만스러운 이민족을 막고 내부를 통제하기 위해 장성을 건설하고, 그 안에서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본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자신했던 중국. 막대한 인구와 자원이 있기에 장성 안에서 발현된 중국의 제일주의는 오랫동안 동아시아 역사를 좌우했고, 당시의 경험은 2000년대 들어 만리장화벽으로 승화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미국이라는 초거대 국가를 마주한 중국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스스로를 폐쇄한 중국과 연대를 통해 배제하는 미국.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폐쇄의 패러다임을 겪는다는데, 어쩌면 중국의 방식이 옳은 것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연대의 가능성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까요? 아주 약간의 시간만 흐르면, 역사는 그 답을 말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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