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면 문을 열어 줍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메일이 잔뜩 들어와 있다. 요즘은 각종 금융회사에서 보내오는 참조 자료 메일들도 서두에 읽을만한 내용들을 먼저 싣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최근에 받은 것 중 하나가 ‘노력의 문’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일생 동안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이 있었다. 한번도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죽을 무렵이 되어서야 문지기에게 물었다. “대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문지기는 반가워서 말했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면 문을 열어 드리려고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열어달라고 부탁을 했거나, 열려는 노력이라도 했었다면 벌써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절로 문이 열리기만 바랐기 때문에 그 문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시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할 때가 있다. 그냥 그 앞을 맴돌기만 할 뿐 시도해볼 생각도 못할 때가 많다. 머릿속으로는 ‘당연히 안 될 것이다’는 자포자기의 마음만 가득한 상태로 말이다. ‘밑져봐야 본전이다’는 말은 알지만 막상 중요한 어떤 순간이 닥쳤을 때에는 ‘해 보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 같이 느껴져서 시도 자체를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고객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져서 접근조차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그 고객은 얘기 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는 거다.

 

할 마음도 없는 사람 앉혀둔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냐

나의 아버님께서는 창설 초기의 해병대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어찌어찌 보급행정병으로 근무를 하셨다. 지금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술이라도 한잔 하시면 그때의 추억을 얘기하시는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천번도 더 들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듣곤 한다. 내가 아는 한 내 주위에서 가장 글씨를 멋드러지게 잘 쓰는 분이신데,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시절에 악필이었던 것이 한이 맺혀서 몇 년간을 펜 글씨 연습을 해서 스스로 연마하신 결과다. 붓글씨가 아니고 연필이나 볼펜으로 쓴 글씨들 중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직접 봐온 모든 사람들의 글씨체 중에서 단연코 1등이다. 사실 나도 어릴 때 조금 흉내내기를 하다가 포기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해병대에 지원해서 초반에는 고생께나 하셨고, 부대에서도 배 고픈 서러움도 많이 겪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대에서 알음알음 보급병을 모집했는데,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왔다. 지독히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으셨다. 그 밤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가 지원을 해서 자리가 채워지고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이나 끙끙대셨다.

마침내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지원이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내무반을 나와서 행정반으로 갔다. 어떻게 말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면 또 주저할 수가 있어 일단 행정실의 문부터 두드렸다고 한다. 자다가 깨서 짜증난 선임하사의 얼굴은 무서웠지만, “보급병을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먼저 지르고 봤다. 그랬더니 행정반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빈 종이 한 장과 볼펜을 던져주며 아무 글씨나 써보게 했다. 긴장은 됐지만 글씨에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머리 속으로 생각나는 글귀나 눈에 보이는 아무 글씨를 되는대로 종이에 채웠다.

“이야, 이 자식 글씨 하나 기가 막히네. 합격. 내일부터 행정반으로 와.”

그게 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심한 시골 출신 해병대 일등병의 성취감은 그 날 밤을 흥분으로 꼬박 지새우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오전부터 행정반에서 각종 서류 정리며 차트를 만드는 일로 군 생활을 하게 됐는데, 무엇보다 괜찮았던 것은 행정반에서 근무하는 인력의 경우 식사를 따로 그리고 먹고 싶은 만큼 할 수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때부터 매 끼니 식판 두 그릇씩을 비웠고, 덕분에 정기 휴가시절 찍었던 조그만 흑백 사진에는 아직도 얼굴에 살이 두둑하게 오른 멋진 청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우연이지만 나 역시도 보급행정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아버님은 중대 보급병이었지만, 나는 대대 보급병이었다. 나 역시도 그냥 일반 보병 주특기로 부대 배치를 되던 와중에 여단 본부에서 잠깐 대기하던 반나절 동안에 대대군수 장교가 찾아왔던 일 때문에 군수행정병이 되었다. 더블백 옆에 끼고 어리둥절해 하던 이등병들을 보면서 “여기 글씨 좀 쓴다는 놈 있으면 손들어 봐.”라고 성질 사납게 말을 했다. 대기하던 내부반에서 이열로 줄지어 앉아서 서로 눈만 멀뚱멀뚱 하던 차에 “제가 좀 씁니다”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대기병들은 “무슨 일인데?”라며 영문을 몰라 했다. 나는 속으로 ‘이건 틀림없이 행정병을 선발하는 것일 거야’라며 ‘같은 값이면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전투 훈련을 받는 것 보다는 편하겠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된 것이었다. 나 역시도 군수과 사무실에 불려가서 지금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보기도 힘든 누런색 갱지에 아무 글씨라도 써야 했다. 벽에 붙은 구호나 눈 앞에 보이는 서류철의 제목 그리고 생각나는 노래 가사 같은 것을 두서 없이 썼을 때, 옆에서 보던 대위가 “됐네.”라고 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 이후 자대 배치 받고 제대할 때까지 보급행정 일을 맡아 했다.

자대를 배치 받고 난 이후에 고참 선배들에게 한동안은 쥐어 박히기도 했고, 터무니 없는 욕을 먹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슨 백이 있거나 수완이 있어서 편한 보직을 맡게 된 것이냐는 원망 섞인 부러움이었다.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글씨 잘 쓰는 것은 군수행정 일을 보는 데에 별반 쓰이지도 않았다. 모든 문서는 타자기를 써야 했고, 재물조사 같은 서류에 기입하는 것이야 날짜와 수치 정도여서 그 정도에는 명필까지는 필요도 없었다. 변별력이란 용기 내어 지원한 것이었다.

 

시너지 효과도 있지만, 마이너스 효과도 있어

그 한 가지는 분명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다. 하고자 하는 맘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사무실에 앉혀 놓는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을 뽑고, 일은 그 다음이었다. 그건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느낀 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직원들이라 할지라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거나 비판적인 입장만 고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일단은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직장생활 하다 보면 어이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팔리겠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품질이 우수하기만 하면 고객은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는 소신이 너무 강해서, 죽으라고 성에 차도록 제품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 놓고 ‘그 제품의 우수함을 알아주지 않는 시장의 멍청함’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떨어지는 감을 받아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설익은 감나무 밑에 죽치고 있어봐야 소득이 없다. 잘 익어가는 감들을 수시로 살피고 떨어질만한 곳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많다면야 좋겠지만 머릿수가 늘어난다고 효과까지 같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소위 프리라이더라 불리는 무임승차자들이 없어야 하는데, 이 역시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링겔만의 효과’라는 것이 있다. 1910년대에 프랑스의 농업공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막스 링겔만 (Max Ringelman)이라는 사람이 발견한 사실인데, 뭐 알고 보면 별 것도 없다. 줄다리기 실험을 했는데, 한 명이 당길 때는 자신의 힘을 100 퍼센트를 다하지만, 두 명이 되면 각각의 힘의 90퍼센트를 살짝 넘는 수준이었고, 세 명일 경우에는 85퍼센트 그리고 여덟 명이었을 때는 불과 64퍼센트 정도의 힘의 크기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리해 보자면 링겔만 효과는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조직 성과에 대한 개인의 공헌도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조직을 다수의 구성원들이 있는 이유는 서로 협력하고 보완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역할을 구분하고 담당을 정해서 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조직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구성원으로서 조직에 몸을 담고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성과가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일 보다 먼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성과에 대한 공유가 뒤따라야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기억나는 대답이 있다. KT 이석채 회장이 한 말인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라고 한 답이다. 샐러리맨 생활을 삼십년 가까이 해 오지만 매번 진행했던 조직개편이나 기업의 비전이 가슴 깊이 와 닿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을 입장에서 까라면 까야 했던’ 식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제가 잘 합니다”라고 번쩍 손을 들고 일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모습이 바람직하겠으나, 사실 이런 식으로 조직문화를 바꾼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끄는 리더나 따라가는 구성원들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된다. 대부분은 자기 영역에서만 아는 체 하고, 조금만 벗어나도 남의 일인 양 한다. 하기 싫어하는 사람 억지로 데려온 꼴이다. 조직들 대부분이 늘 이 같은 고민들로 다람쥐 챗바퀴 돌 듯 하게 된다.

푹푹 찌던 삼복더위에 방 안에 몇 사람이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면서 앉아 있었다. 몇 사람이 더 들어갔지만, 땀 흘리고 앉아 있는 걸 보고 궁시렁 대면서 같이 앉아서 비지땀을 흘렸다.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혹시, 에어컨이 고장 났나?’ 싶어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왔다. 땀 흘리던 사람들이 서로 의아해 쳐다봤다. 그렇다. 에어컨도 켜지 않고 덥다고만 하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문이 열리기만 바라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마찬가지로 팔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고객들 원망부터 늘어놓지는 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