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스티브 잡스의 혁신에서 팀 쿡의 시대로 안착한 애플이 시가총액 2조달러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19일(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468.65달러까지 수직상승해 시총 2조달러 기준인 467.77달러를 기록했으며, 장 마감 전에는 주가가 462.83달러로 주저앉았으나 여전히 시총 1조9790억달러를 유지하며 탄탄한 애플 제국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시총 2조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애플은 미국 상장기업 중 유일하게 시총 2조달러의 벽을 넘어선 최초의 기업이 됐다.

애플의 시총을 각 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교하면 이탈리아의 뒤를 이어 9위 수준이다. 실제로 미국이 20조4940억달러, 중국이 13조6081억달러의 GDP를 기록하는 가운데 애플의 시총은 2조739억달러의 GDP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비슷하며 GDP 1조8686억달러의 브라질을 앞지른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애플이 보유한 규모의 경제는 이제 주요국의 경제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

▲ 출처=갈무리

1달러에서 468.65달러까지

애플이라는 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를 알아야 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 조앤 심슨은 가족들이 잡스의 아버지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고 잡스도 인정하지 않자, 아들을 양자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어린 잡스는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가 유년을 보낸 북 캘리포니아는 베트남전을 계기로 불꽃처럼 일어난 반전 평화주의와 히피문화, 신비주의가 판을 친 격동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잡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가 되어 특유의 철학적 감성을 기르게 된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 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하지만 이내 자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게임회사 아타리에 입사했다.

아타리에 입사한 잡스는 개인용 PC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직후 친분이 있던 개발자이자 휴렛패커드(HP)의 직원이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의기투합한 그는 직접 개인용 PC를 제작해 판매했다. 허름한 창고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은 ‘가내수공업 개인용 PC’를 만들었다. 애플의 시작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10개월 동안 200대나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뒤이어 출시한 애플II도 크게 성공하면서 잡스는 돈방석에 올랐다. 그러나 IBM이 유통망과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애플이 가능성을 증명한 개인용 PC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잡스는 리사 프로젝트를 가동해 GUI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출시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했다.

잡스에 치명타를 날린 것은 MS였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무기로 PC를 끼워 팔기 시작한 MS는 IBM이 가지지 못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며 순식간에 개인용 PC 시장을 장악했다. 결국 초조함과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잡스는 쫒기듯 회사를 떠나고 만다.

그럼에도 애플의 위기는 계속됐다. 잡스가 떠난 애플은 여전히 추락을 거듭해, 1997년 주가가 1달러로 곤두박질친다. 결국 죽어가는 애플을 살릴 수 있는 구원자는 잡스 뿐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당시까지 넥스트를 경영하던 잡스가 화려하게 애플로 복귀하는 순간이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후 처음 한 일은 비대해진 매킨토시 라인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매킨토시, ‘아이맥 G3’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무기는 따로 있었다. 2001년 그는 희대의 역작 아이팟을 공개하며 전 세계를 혁신의 충격과 환희로 몰아넣었다.

세계는 아이팟에 찬사를 보냈으나, 잡스는 멈추지 않았다. 핀란드 노키아를 중심으로 휴대전화의 트렌드가 스마트폰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직감한 그는 아이팟과 같은 음원 서비스마저 스마트폰이 삼켜버릴것으로 예상했다. 애플이 2005년 모토로라와 함께 락커를 출시한 배경이다. 그러나 외부와의 협력은 잡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절치부심, 세상을 놀라게 만들 비밀병기를 준비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 연단에 오른 잡스는 블랙베리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폰에 달린 조잡한 키보드를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가”라는 파격적인 멘트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 아이폰의 탄생. 세계는 그 순간을 “Apple reinvents the phone(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이라고 불렀다.

▲ 출처=플리커

애플의 혁신은 잡스 사후 팀 쿡의 시대가 열려도 계속됐다. 워낙 혁신가 잡스의 존재감이 강했기에 공급망 관리의 대가인 쿡의 시대를 맞아 애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쿡은 신중했지만 강렬했다. 그는 “잡스는 내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체할 수 없다. CEO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늘 그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도 애플의 재고관리·수요예측 시스템을 개혁해 효율성과 마진을 창출하는 작업에 속도를 냈다. 이어 아이폰의 대형화, 애플워치 및 페이 등 연이어 히트상품을 내놓는 한편 필요하다면 잡스의 철학도 거스르는 행보를 보여줬다. 그 연장선에서, 2020년 8월 애플은 시총 2조달러의 미국 최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 생태계, 액면분할

애플의 시총 2조달러 금자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은 코로나 쇼크, 생태계 구축, 액면분할의 공이 컸다.

코로나 쇼크는 애플은 물론 글로벌 ICT 업계에 있어 성장의 발판이 되어줬다. 아마존과 MS도 조만간 시총 2조달러 고지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집단감염 우려가 번지는 가운데 비대면 트렌드가 강화됐고, 이 과정에서 애플의 기기 판매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평가다.

애플의 생태계 전략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아이폰 매출에만 의존하지 않는 상태에서 애플뮤직 및 애플TV 플러스 등 다양한 콘텐츠 소프트웨어 전략을 가동하는 한편 이를 코로나19 쇼크와 적절히 배치해 큰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 하반기 출시되는 5G 아이폰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애플이 지난달 30일 4대 1 주식 액면분할 계획을 발표한 것도 주가부양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애플 주식을 사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분간 애플의 시총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승승장구 애플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최근 포트나이트의 에픽게임즈 사태를 계기로 시장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과도하게 커지고 있는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애플을 꿈의 시총 2조달러 기업으로 이끌었으나, 역으로 애플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준다는 점에서 소위 ‘양날의 칼’이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