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중공업이 2012년 7월 인도한 해상풍력 설치선 '퍼시픽 오르카(PACIFIC ORCA')호의 모습. 출처=삼성중공업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수주절벽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가 해상풍력산업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고부가가치 선박인 풍력터빈설치선(WTIV) 수요가 늘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천연액화가스(LNG)선이나 초대형유조선(VLCC)처럼 발주가 많지 않아 수주절벽의 돌파구로 삼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해상풍력산업 뜨니… 풍력터빈설치선(WTIV) 기대감 ‘쑥쑥’

23일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회사는 이달 초 모나코 선사 스콜피오벌커스와 풍력터빈설치선(WTIV) 1척과 옵션 3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맺었다. 해당 WTIV는 하이브리드형 배터리가 적용되는 친환경 선박으로 대당 가격은 2억6500만~2억9000만달러 수준으로 알려진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건조의향서를 맺은 만큼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풍력터빈설치선은 해상풍력단지에 풍력터빈을 설치하기 위한 특수선을 말한다. 발전기를 바다위에 설치하는 만큼 지상에서 발전설비를 운반, 설치하기 위한 배가 필수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1GW(기가와트) 규모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최소 2~3척의 초대형 전문설치선이 필요하다. 

최근 10년간 발주가 없었다가 최근 들어 발주 재개 조짐이 일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다, 풍력발전 시장이 육상에서 해상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해상풍력은 육지보다 더 풍부한 바닷바람을 확보할 수 있고 입지가 자유로워 대규모 단지 건설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 풍력발전 시장은 지난해 29.1GW에서 2030년 177GW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50년까지 450GW의 해상 풍력발전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해상풍력산업 활성화로 WTIV 발주가 늘어나면서 수주절벽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나온다. 고부가가치 선박인데다, 국내선사들이 건조 경험을 갖고 있어서다. 

올 들어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절벽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경제 둔화 우려에 투자심리가 저하됐고, 국제해사기구(IMO)2020의 황산화물 배출규제 도입에 따른 선주들의 관망세에 따른 영향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7월 전 세계 선박 누계 발주량은 2018년 2118만CGT에서 2019년 1573만CGT로 26%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661만CGT로 58% 감소했다. 이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의 주력 선종인 LNG선(14만㎥ 이상) 발주는 전년 대비 73%나 줄어들었다. 벌크선(-74%)에 이어 두 번째로 감소폭이 큰 상황이다. 

발주 물량 적고 시간 오래 걸려… 섣부른 기대감 지양해야

그런데 WTIV는 기술력이 담보돼야 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이 건조의향서(LOI)를 맺은 설치선 1척은 최소 2억6000만달러(한화 3086억원)로 알려진다. 반면 대표적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분류되는 LNG선(17만4000㎥)의 7월 기준 선가는 1억8600만달러(한화 2208억원)다. 

아울러 발주 물량이 드문 만큼 기술력은 물론 건조 경험도 중요하다. 국내 조선사들은 글로벌 톱티어의 인지도와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성공적인 건조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 독일 알베에그룹 자회사 알베에이로부터 WTIV 3척을 수주한 바 있으며, 삼성중공업도 2010년 싱가포르 SPO로부터 1척을 수주해 2012년 성공리에 인도한 경험이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이 인도한 WTIV는 3.6MW(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12기를 동시에 운반해 설치할 수 있어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나친 기대감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긍정적인 시그널은 맞지만 시장이 작은 만큼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건조 선종인 LNG선 등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아울러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만큼 일반 선박 발주보다 시간이 지연돼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는 불리하다는 말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거의 10년 만에 신조 발주가 나왔다는 점에서 좋은 시그널인 것은 맞다”고 말하면서도 “LNG선이나 유조선처럼 시장이 어마어마해서 매년 수십 척씩 발주가 나오는 선종이 아닌 만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들어 WTIV 관련 문의가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해상풍력단지가 먼저 개발·구성돼야 하는 만큼 일반 탱커선이나 유조선처럼 빨리 발주가 진행되진 않는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