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메디톡스 vs 대웅제약' '퓨젠바이오 vs 씨엘바이오' 등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균주 전쟁의 승자가 서서히 가려지는 모양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5여년간 벌여온 보톡스 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손을 들어주면서 승기를 잡았다. 퓨젠바이오는 최근 씨엘바이오를 상대로 제기한 ‘세리포리아 락세라타’ 균주 특허권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동안 균주를 도용했다고 의심을 받았던 업체들이 의혹 해소에 실패하면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주'(위)와 대웅제약의 ‘나보타’ 출처=각사

5년 보톡스 싸움 '희비 교차'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를 둘러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다툼은 지난달 6일 공개된 미국 ITC의 예비판결로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앞서 메디톡스는 지난해 1월 대웅제약과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일부를 도용했다’는 혐의로 미국 ITC에 제소한 바 있다. 메디톡스 전(前) 직원이 자사의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훔쳐 대웅제약에 제공했고 이를 통해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가 개발됐다는 주장이다.

ITC 행정판사는 지난 1년간 전문가 검증과 증거심리를 위한 청문회를 통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예비판결을 내렸다. 또 대웅제약의 나보타에 대해 10년간 ‘미국 시장 수입 금지 명령’을 내릴 것을 ITC 위원회에 권고했다. ITC 위원회는 예비판정 결과를 검토해 오는 11월 최종 판결을 내린다.

아직 ITC의 최종 판결이 남아있지만 메디톡스는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ITC의 예비판정 결과가 뒤집힌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 미국 ITC는 지난달 6일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 예비 판결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가 관세법 337조를 위반한 불공정경쟁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출처=메디톡스

메디톡스는 ITC 판결을 토대로 국내에서 진행 중인 민사, 서울지검에 접수된 형사고소 등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에 관한 혐의를 밝힐 계획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관련 자료가 제출되면 우리나라에서도 ITC의 판결과 동일한 결론을 낼 것으로 확신한다"며 “미국 ITC에 제출된 여러 증거자료와 전문가 보고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웅제약은 ITC 예비판결에 대해 ‘당장의 효력을 가지지 않는 권고사항’이라면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은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정책적 판단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이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웅제약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보타의 미국 판매 중지는 물론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신종버섯균주 전쟁서 퓨젠바이오 완승

바이오벤처 기업들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못지않은 균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퓨젠바이오는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라는 신종버섯균주의 도용 문제를 놓고 씨엘바이오와  3년째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는 참나무나 적송에서 자라는 구멍장이과 버섯에 기생하는 백색 부후균의 일종이다. 2002년 일본 원시림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으나 균주의 숨겨진 가치를 확인한 퓨젠바이오가 식의약 목적으로 연구 개발을 진행해 20여개의 관련 원천특허를 확보했다.

양사의 치열했던 공방은 퓨젠바이오가 씨엘바이오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완전히 전세를 휘어잡았다. 이번 가처분 결정으로 씨엘바이오는 올인원크림바, 올인원로션, 올인원샴푸 등 논란 중인 균주가 포함된 제품 6종에 대해 생산, 판매, 사용이 금지된다.

▲ 세리포리아 락세라타. 출처=퓨젠바이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0민사부는 지난 18일 결정문을 통해 “씨엘바이오 제품들에 함유된 균주가 세리포리아 락세라타와 유전적 유사성이 낮은 신종 균주라고 볼 수 없다”며 “세리포리아 락세라타 K-1과 세리포리아 라마리투스는 동일한 균주에 사용하는 서로 다른 명칭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씨엘바이오가 생산·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퓨젠바이오의 특허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가처분 결정을 인용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씨엘바이오가 가처분 결정에도 지속적으로 특허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위반 시마다 퓨젠바이오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라는 간접강제를 함께 명했다.

이미 씨엘바이오는 지난 1심에서 퓨젠바이오에게 총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 회사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핵심 사업동력마저 잃게 되면서 균주 도용에 따른 철퇴를 제대로 맞고 있다.

김윤수 퓨젠바이오 대표는 "회사의 핵심 자산과 같은 균주나 특허를 도용하는 행위는 관련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라면서 "이번 가처분 결정은 특허 등 지적재산권 보호가 이제 사법기관에서도 미래산업경쟁력 강화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