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제조 공정에 투입되는 로봇 시스템 모습.출처=현대중공업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업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주력사업인 정유와 조선에 집중하고, 신사업인 로봇과 선박 엔지니어링 서비스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특히, 해당 신사업들은 정기선 부회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추진하고 있는 그룹의 미래먹거리여서 경영승계 정당성 확보에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重, 비주력 사업 접고 미래 먹거리 키우고

31일 현대중공업지주(267250)는 현대로보틱스 상하이 자회사 지분 전부와 현대엘앤에스 지분 전부를 현대로보틱스에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처분 금액은 각각 141억7900만원, 53억800만원이다. 처분 목적은 사업효율성과 시너지 효과 제고 차원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신성장동력인 로봇사업에 힘을 실어주고자 시너지가 예상되는 스마트 물류 자동화 사업을 넘겨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엘앤에스는 유통 물류 자동화 설비 판매와 설치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지난 3월 1일 현대중공업지주 자회사로 편입된 바 있다. 

올 들어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업재편 속도가 가파르다. 길어지는 코로나19에 대비하고자 사업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경영승계가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6월에도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이사회를 통해 계열사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 매각 안건을 승인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은 발전소에 들어가는 산업용 보일러의 설계 및 제조를 주력사업으로 하는 회사다. 사업성이 불투명하고 시너지 제고가 어려운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조선업에 집중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사업분할 결정을 시작으로 지주사 전환 작업, 비핵심자산 매각 등 지속적인 사업재편을 이행 중이다. 그 결과 정유화학사업과 조선사업에서 세계적 수준을 갖춘 중공업 전문 복합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동시에 현대글로벌서비스와 현대로보틱스 등 신설법인을 세워 신사업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글로벌 서비스는 선박 유지보수와 기술 서비스, 선박 기재자 공급, 스마트선박 개발 등을, 현대로보틱스는 로봇사업을 영위한다. 특히, 해당 신사업들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회장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고 추진 중인 그룹의 미래먹거리라는 점에서 성장성이 기대된다. 경영승계를 위한 정당성 확보가 필요한 만큼 그룹차원에서 적극 육성할 가능성이 커서다.  

정 부사장은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설립된 지 약 1년 뒤인 2018년 초에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직접 경영을 맡고 있다. 또한 사실상 정 부사장이 분리를 주도한 현대로보틱스는 국내 1위의 굳건한 시장 입지를 바탕으로 글로벌 톱티어(Top-tier) 로봇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24년까지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 지난 6월 16일 현대중공업그룹과 KT그룹이 전략적 투자협약 체결식을 가진 직후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부사장)과 구현모 KT 대표(사장)가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출처=현대중공업(사진 왼쪽

주력 사업 부진에 신사업 험로… 사업 재편 돌파구 될까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연결 기준 올 상반기 매출은 9조7221억원, 영업 손실은 382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도 3382억원에 달했다. 현대중공업지주 기업가치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대오일뱅크가 지난 1분기 대규모 적자를 낸데 따른 결과다. 

현대오일뱅크는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짐에 따른 재고평가손실, 정제 마진 하락 등으로 직격타를 맞았다. 2분기 유연한 설비 운영과 원가절감 등을 통해 132억원의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1분기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업황이 최악인 상황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적임에는 틀림없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하반기 정유업계의 실적 부진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사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주절벽에 몰려있다. 코로나19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로 선주들의 신조발주 관망세가 이어져서다. 실제 조선사업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수주 달성률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2분기 실적에서도 비조선부문이었던 플랜트부문이 영업익 30억원을 내며 흑자전환했고, 엔진기계 부문은 전년 동기 대비 213% 급증한 511억원의 영업익을 냈다. 하지만 조선부문 영업익은 18.6% 감소한 1078억원에 그쳤다. 해양부문 적자도 이어졌다. 향후 실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신사업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엔 역부족이다. 현대로보틱스의 경우 올 초 코로나19로 인한 로봇시장의 성장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분기 로보틱스는 매출 544억원, 영업이익 18억원을 내는데 그쳤다. 특히, 영업이익 18억 원은 지난해 2분기보다 73.9% 급감한 수치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12.3%에서 3%까지 급락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올해 매출 목표였던 3400억원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용 로봇시장 침체에 따른 것이라는 게 현대중공업의 설명이지만, 이는 전 세계 로봇시장의 빠른 성장세와 상반된다. 실제 현대중공업지주 로봇사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8년 2.9%에서 2018년 2.1%로 하락했다. 순위는 6위를 유지했지만, 7위인 일본 나치와의 격차는 1년 만에 2800만 달러에서 500만달러로 줄었다. 

그나마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그룹의 실적 견인 역할을 했던 글로벌서비스도 일감 확보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 2분기 현대글로벌서비스는 매출액 2305억원, 영업이익 434억원, 순이익 28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항목별로 각각 37.9%, 83.1%, 46%씩 개선됐다. 영업익 개선 효과는 꾸준히 나타나는 상황이지만 조선업황 부진에 따라 미래를 장담하긴 어렵다.

실제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하반기 선박개조 매출 전망은 상반기의 60~70% 수준이 될 것이며, 수익성도 상반기보다 2%p 감소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크러버(탈황장치) 신규 수주도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와 저유가로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 전망이다. 

이에 경영승계를 추진 중인 정기선 부회장의 어깨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경영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사업의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접 진두지휘 하고 있는 만큼 신사업 성과가 곧 그의 경영 능력 평가로 이어진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주력사업 자산 정리 등 사업재편이 속도를 내는 이유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