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아직 임상 3상이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일 영국 매체 가디언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 전에 백신 개발 성과를 공개함으로써 공공보건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티븐 한 미국 식품의약품청(FDA) 국장은 이날 “FDA는 3상 임상시험이 끝나기 전에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다만 백신을 ‘패스트트랙’으로 승인하는 방안은 그 편익이 위험성을 능가할 때 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결정은 정치적 압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과학과 약품,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지 정치적인 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한 국장의 발언이 공개되자마자 패스트트랙 승인에 대한 경고를 쏟아냈다. 바이러스학자인 미 컬럼비아대 앤절라 라스무센 박사는 “3상 임상 시험에서 신뢰할 수 있는 안전성 및 효능 데이터를 얻기 전까지 백신에 대한 긴급 승인은 절대 용납하거나 수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리차드 페토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 겸 세계보건기구(WHO) 자문위원도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백신을 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효과에 대한 증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라질 보건 당국도 이날 백신 승인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브라질 보건부 산하 국가위생감시국(Anvisa)의 구스타부 멘지스 의약품·생물학 제품 총괄 담당은 “코로나19 피해가 계속돼 백신 개발에 대한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다”면서 “정부의 백신 확보 노력을 돕기 위해 승인 심사 기간을 단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영국에서도 지난 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올해 안에 신속히 백신을 승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3상 임상시험이 끝나기 전인 코로나19 백신의 사용을 승인했다. 중국 신랑망 등은 정부가 바이오 제약업체 시노백 바이오텍의 코로나19 백신 후보인 ‘코로나백’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7일 중국 칸시노 바이오로직스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이 끝나기 전에 긴급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 위해 여러 국가와 협의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23일에도 중국의약집단(시노팜) 산하 중국생물기술(CNBG)은 SNS 위챗을 통해 자체 개발한 백신후보의 긴급사용을 허가 받았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미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백신후보를 투여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6월 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 방안을 비준해 긴급 상황에 백신 2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정부는 8월 중순에 이미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V 백신’을 2상 임상시험 종료 후 곧바로 승인했다. 러시아의 두 번째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소재 국립 바이러스·생명공학 연구센터 ‘벡토르’도 지난 27일 현지 언론 ‘로시야-24’와의 인터뷰에서 “3상 임상시험은 공식 등록 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정치인과 기업들이 ‘백신 최초 승인’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최종 시험에서 종합적인 효과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고 본다”면서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백신을 무턱대고 다수에게 접종하려는 시도는 효과가 높지 않은 백신의 출시를 야기할 수 있고, 오히려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과학자들로 구성된 WHO의 백신 시험 전문가 그룹은 지난 27일 의학전문지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을 만들면 백신이 없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서 “그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자신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중단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또 “그런 백신 때문에 보건당국이 백신의 효과가 있다고 틀린 가정을 하거나, 개인이 나는 면역력이 있다고 잘못 신뢰하게 되면 코로나19 통제 정책이 단축되거나 시민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