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시세조종 및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1일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전·현직 경영진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기소와 함께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택하며 스스로 정한 원칙을 포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나아가 재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막중한 시기, 검찰의 이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기점으로 국내 경제 상황이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1일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승계 과정에 불법적인 소지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교환하는 합병 방식이 정해진 가운데,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합병이 종료된 후 사실상의 지주회사가 된 삼성물산 지분을 안전하게 확보해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무리하게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거래 자체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도 마찬가지다.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계속 반영하지 않다가 2015년 합병과 동시에 이를 부채로 잡아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것을 두고 검찰은 분식회계가 명백하다고 본다.

검찰은 지난 6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등 3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과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며 구속영장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검찰 수사심위를 요청했으나, 검찰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구속영장부터 청구한 셈이다.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진행된 후다.

다만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사태가 반전됐다. 이어 예정대로 열린 검찰 수사심위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권고가 나왔으나, 검찰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논란의 폭풍속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결정이 나오며 재계에서는 삼성의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및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콘트롤 타워인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걸려들 경우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의 신변에 따라 삼성전자의 행보 자체가 크게 출렁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병을 얻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급하게 등판했으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경영 현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으나, 이 부회장은 동요하는 조직을 빠르게 추스리는 한편 뉴 삼성(New Samsung)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다.

실사구시 전략에 맞춘 새로운 경영기법을 빠르게 체화해 발전시켰으며 강력한 인수합병 로드맵도 가동했다.

당장 2014년 8월 스마트싱스, 콰이어드사이드를 비롯해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으며 2015년 11월에는 브라질 문서 출력관리 기업인 심프레스도 전격 인수했다. 2015년 2월에는 삼성페이의 모체가 된 루프페이를 인수했고 3월에는 사업용 디스플레이 시장 전통의 강자인 예스코일렉트로닉스도 손에 넣었다.

2016년 6월에는 클라우드 업체 조이언트, 스마트TV의 애드기어도 연이어 인수했고 8월에는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주택 및 부동산 관련 시장에서 럭셔리 가전 브랜드로 명성이 높은 데이코를, 이후에는 하만 인수합병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 부회장은 법정 구속됐으며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할 때까지 약 1년간 삼성은 초유의 총수 부재 사태와 직면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이후 출소와 함께 유럽, 중국과 일본 등을 돌며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신남방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보폭을 맞추며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 선언을 통해 야심찬 시스템 반도체 전략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 연장서에서 코로나19가 터지고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자 삼성전자의 행보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정면돌파를 택했고, 준법경영을 강하게 주장하며 정국반등을 노렸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발족의 배경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위의 권고에 따라 본인의 경영 승계와 관련된 논란을 두고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최근 2, 3개월 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기 MLCC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삼성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메시지 중 핵심인 강력한 비전발굴은 이내 현실이 됐다. 당장 5월 13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의 전격적인 회동이 눈길을 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현대차 임원들은 충남 천안 성성동에 위치한 삼성SDI 공장을 방문해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전지 기술에 대한 설명을 청취했으며, 이 자리에는 이재용 부회장도 함께 했다.

이 부회장은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장 사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 등과 함께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기도 했다. 현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사내행보도 공격적으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사업장인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주요 경영진들과 동행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산업 동향에 대해 현장 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중장기 사업 전략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 7월 6일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해 사내 벤처프로그램 ‘C랩’에 참여 중인 임직원들을 만나고 담소를 나눴고 16일에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MLCC(전자회로에 전류가 일정하게 흐를 수 있도록 제어하는 부품) 생산공장을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여기에 C랩 인사이드 및 산학협력센터 설치 2주년 행사 등, 이 부회장은 조직을 추스르고 안정적인 로드맵을 구축하기 위해 말 그대로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는 뒤이어 공격적인 반도체 공정 확대도 연이어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 가동에 들어간 점이 눈길을 끈다. 연면적 12만8900㎡(축구장 16개 크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셈이다.

▲ 이재용 부회장이 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출처=삼성

평택 2라인에서는 차세대 모바일 D램인 16Gb LPDDR5 모바일 D램이 출하됐으며, 추후 삼성전자는 연속적으로 평택캠퍼스의 외연을 넓힌다는 각오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파운드리에 이르는 전방향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검찰의 판단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커졌고, 그 결과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