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검찰이 1일 이재용 부회장 등 11명에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과 관련,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올해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기소와 함께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검찰이 이를 뒤집은 셈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수사심위 소집을 요청하는 이 부회장 측의 의견을 묵살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다만 검찰이 이번에 다시 불구속 기소 카드를 꺼내며 수사당국의 칼날이 다시 한 번 이재용 부회장의 목덜미를 노리는 분위기다.

“불법 정황 명확” “인정할 수 없어”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은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을 두고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부회장이 자사주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에 나섰고, 그룹 차원의 불법적인 활동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불구속 기소의 배경이다.

이 부회장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인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분식, 업무상 배임죄는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뿐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삼성물산 합병은 정부규제 준수, 불안한 경영권 안정, 사업상 시너지효과 달성 등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합법적인 경영활동이고, 합병과정에서의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판단받았다”고 해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처리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수차 번복되었고, 12명의 회계 전문가들도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한 점을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불구속 기소는)국민들의 뜻에 어긋나고, 사법부의 합리적 판단마저 무시한 기소는 법적 형평에 반할 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검찰의 공정한 의사결정 절차를 믿고 그 과정에서 권리를 지키려 했던 피고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승복할 수 없다. 나아가 영장 청구와 수사심의위 심의 시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죄를 기소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추가했으며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이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나아가 “합병비율 조작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나서 공소사실에 한 줄도 적시하지 못하고 있다. 합병비율 조작이 없고 법령에 따라 시장 주가에 의해 비율이 정해진 기업 간 정상적인 합병을 범죄시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납득할 수 없으며 피고인들은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검찰의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검찰의 불구속 기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몇 년 간 법정공방 불가피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 신분으로 2017년 2월 구속기소된 후 지금까지 만 3년 6개월 재판을 받고 있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난 후 지난해 8월 대법원 상고심 결론이 나왔고, 현재 파기환송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 파기환송심 결과가 언제 나올 것인지 기약도 없는 가운데, 이번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으로 이 부회장은 또 하나의 사법 리스크와 마주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위의 권고에 따라 본인의 경영 승계와 관련된 논란을 두고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에 이어 2015년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모두 사법 리스크로 이어지며 상당한 난관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몇 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한다는 대목이 부담스럽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당장 경영에 집중하는 것보다 법정 공방을 앞두고 대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길 것”이라면서 “불구속 기소 상태로 몇 년간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이 부회장이 정상적으로 경영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및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초기술 격차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두고 미국의 인텔과, 파운드리 시장을 두고는 대만 TSMC의 아성을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 단위 투자와 인수합병을 지휘해야 하는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빠져들 경우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초기술 격차 로드맵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