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검찰은 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피의자의 신변을 구금하지 않고 재판에 회부하는 것)’ 결정을 내렸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은 최초의 사례인 이번 결정으로 검찰과 삼성의 계산은 더 복잡해졌다. 철저한 소모전이 될 공방의 과정을 감안하면 어느 한 쪽이 이기더라도 결론은 ‘제로 섬 게임’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심사숙고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시세조종행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전·현직 임원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기소에 대한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 이복현 부장검사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은 치밀한 계획 아래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흡수합병을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의 명백한 현행법 위반 정황들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검찰의 결정에 대해 삼성 측 변호인단은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안타까움이 느껴질 정도”라면서 “앞으로의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검찰의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며 검찰의 기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과 삼성 모두에게 '위기'

검찰의 결정은 사법 기관과 대기업 간 법정 공방 이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우선 삼성에게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는 위기 상황 속 ‘경영의 공백’이다. 현재 삼성은 미국-중국 간 분쟁의 장기화로 인해 대폭 줄어든 글로벌 반도체 수요 그리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생산 단계에서의 악재 등 전대미문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은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확대로 일련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8년, 2019년 2년 동안 총 11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최근 삼성의 행보를 감안하면 당초 목표한 '3년 180조원 투자'는 이미 달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투자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사업부문은 삼성의 DS(반도체) 부문이다.

지난해 4월 이재용 부회장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글로벌 1위 업체’로 도약시키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 계획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 확충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는 동시에 전문 인력 약 1만5000명을 채용하는 것이 계획의 주된 내용이다. 지난달 30일 가동을 시작한 세계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인 ‘평택2라인’ 역시 이 계획의 일환이다. 이러한 방향성의 중심에는 모두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으로 이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삼성의 대규모 투자확대에도 차질이 발생하게 됐다. 

검찰이 문제를 제기한 사안과 관련한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출석이 의무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피고인인 이 부회장은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과 연관된 재판도 파기환송 된 이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이 다시 한 번 법정 구속되는, 삼성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 남아있는 재판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 부회장의 결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삼성의 경영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검찰에게도 현재 상황이 주는 부담감은 적지 않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의 초강수를 둔만큼 검찰은 추후의 재판에서 ‘무조건’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해 내야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온갖 정치적 요인으로 현재 입장이 곤란해져 있는 검찰의 입지는 큰 타격을 입는다. 

우려섞인 외신 반응 

불구속 기소 결정 이후 우리나라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들을 예상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점 역시 검찰에게는 큰 부담이다. 검찰의 발표 직후 다수의 외신들은 이번 사안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검찰이 삼성을 기소했다고는 하나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수사심의위원회의 기소 반대 의견 등 선례에는 한국의 지배적 여론이 반영돼 있어 향후 열릴 재판에서 검찰의 승산은 높지 않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영국 로이터(REUTER)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각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기소 결정으로 국내 투자에 가장 앞장섰던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한국 경제에 있어 하나의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기소가 현재 한국 정부와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약 7억7000만달러(약 9100억원)의 피해를 입었음을 주장하며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에 중재를 요청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시 삼성의 부정행위가 인정되는 것은 곧 엘리엇이 부당한 피해를 입었음을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것과 같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이번 결정에는 검찰의 불안한 정치적 입지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종전의 관례대로 검찰이 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따랐다면, 정부 여당으로부터 검찰의 역할에 대한 큰 비난을 받았을 수 있다”라면서 “한국 검찰은 조직의 방위를 위해 기소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 지난달 30일부터 가동을 시작한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공장 삼성 펑택2라인. 출처= 삼성전자

제로 섬 게임 

결론적으로 검찰의 결정은 삼성과 검찰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삼성이 법정 공방에서 이긴다고 해도 공방의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으로 인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판단 보류 등으로 삼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재판의 진행이 당장 삼성의 일상적 경영에 미치는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의 인프라 투자나 인력 확충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은 최고경영자인 이재용 부회장의 승인이 필수적이다. 속도가 생명인 경영 판단이 재판 준비로 늦어지는 것은 삼성에게 매우 큰 손해다.     

검찰 역시 이 공방에서 이긴다고 해도 코로나19 위기 가운데 삼성에 대한 압박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검찰은 대내외의 부정적 여론과 불안한 정치적 입지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법정 공방의 과정부터 치열한 소모전이 예상되는 현재의 상황은 삼성과 검찰에게 있어 그 누구도 분쟁으로 이득을 본 주체가 없는 ‘제로 섬 게임’에 비유되고 있다. 이에,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국내 재계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