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아람코는 미국, 중국, 인도 등과 추진 중인 야심찬 계획들이 재검토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출처= GulfNew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에너지 산업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업계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에 최대 정유사 사우디의 아람코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국제 유가의 가격 폭락은 거액의 배당금을 지불해야 하고 정부 지출의 상당 부분의 재원을 조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대기업 아람코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제 아람코는 한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도록 강요 받을지도 모른다. 계획된 프로젝트들을 포기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인도의 정유 네트워크 구축을 재검토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의 정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계획들이 최근 몇 주 동안 줄줄이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2일에는 미국의 주요 정유시설 증설을 연기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아람코 관계자는 "현재 모든 것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의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할 때 아람코의 전략적 우선순위 재조정은 회사와 사우디 왕국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너지 시장을 분석 및 예측하는 팩츠글로벌에너지(Facts Global Energy)의 아만 나세리 중동담당 전무는 "이런 프로젝트에는 항상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했다.

저유가 지속 전망

아람코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의 가격이 여전히 연초 가격보다 33% 낮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봉쇄령으로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지난 2분기 아람코의 순이익은 66억 달러(7조 8500억원)로 전년보다 73%나 떨어졌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세계 경제가 재가동되면서 수요가 ‘부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분석가들은 완전한 회복 전망은 뒤로 미루고 있다.

IHS 마킷의 석유시장부문 책임자 짐 버크하드는 최근 고객들에게 “적어도 2021년 1분기 말까지는 석유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수요 회복을 위해서는 여행, 특히 항공 여행과 출퇴근이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효과적인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이러한 상황이 아람코에게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람코는 향후 5년간 매년 750억 달러(90조원)의 배당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당금은 12월 공모 때 투자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고, 아람코가 여전히 1조 9000억 달러의, 애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 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람코의 주식은 현재 IPO 가격보다 약 13%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BP와 쉘은 현금 확보를 위해 배당금을 삭감했지만 아람코에게는 배당금 삭감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런던의 투자자문회사 팰리시 어드바이저스(Palissy Advisors)의 애니쉬 카파디아 에너지담당 이사는 "배당금 외에 주가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에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면 배당금을 현 수준에서 유지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사는 또 막대한 사회 및 군사비 지출 재원을 위해 석유 수입(收入)에 의존하는 사우디 정부에도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올해 유가 폭락으로 사우디의 실권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대규모 관광 프로젝트와 미래형 도시 건설 등으로 사우디의 석유수출 의존도를 낮추려는 비전 2030 계획을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야심찬 계획 변경 불가피

아람코는 현재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구상했던 해외 프로젝트들, 특히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계획들도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화제를 모았던 살만 왕세자의 방중에서 100억 달러(12조원) 규모의 중국 정유단지 조성을 위한 합작법인도 다시 재평가하고 있다.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정유·석유화학 사업 지분 20%를 매입하기로 한 합의한 것도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람코가 텍사스주 모티바(Motiva) 정유공장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늘리기 위한 66억달러의 투자도 재검토하고 있으며, 셈프라 에너지(Sempra Energy)와의 천연가스 개발 협력도 정밀조사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팩츠글로벌에너지의 나세리 전무는 특히 정유 프로젝트는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수반되지만 적어도 몇 년 동안에는 현금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 현재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는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람코는 이달부터 '변화하는 시장 역학관계에 대한 대응력과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포트폴리오를 재평가하는 새로운 부서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나세리전무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재검토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계획의 절반은 취소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과거의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 아람코에게 가능한 유일한 선택사항일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유가 안정을 위해 지난 4월 감산에 합의했기 때문에 사우디는 석유를 더 퍼올릴 수도 없다. OPEC이 생산량을 늘린다 하더라도 여전히 올해 말까지는 감산 이전보다 하루 770만배럴 덜 생산할 것이다.

아람코와 사우디 정부와의 밀착 관계를 생각할 때, 최근 2030년까지 연간 저탄소 투자를 10배 늘리겠다고 밝힌 BP처럼 친환경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혁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석유로 먹고 사는 나라고 아람코는 석유를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아람코의 식욕은 여전하겠지만 아람코는 에너지 개혁보다는 여전히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화석연료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