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키우던 SMIC가 직격탄을 맞을 경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중국 기업 점유율은 물론, 중국 반도체 굴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도 가만히 앉아 당할 생각은 아니다. 자국 반도체 굴기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선언하는 한편, 미 국채 판매 등 보복카드도 염두에 두고 있다. 

▲ 출처=갈무리

꼼꼼한 때리기
로이터는 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해 미 국방부가 중국 SMIC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보도했다. SMIC가 중국 정부와 유착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SMIC를 올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MIC가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경우 미국 기업들은 당국의 특별허가가 없으면 SMIC에 부품을 판매할 수 없다. 

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중국 기업은 최소 275곳에 달한다는 것이 로이터의 설명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 당시 자국 기업과 중국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한편, 지난 5월에는 제3국을 통한 반도체 수급까지 막아버렸다. 미국 기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자국 기업의 부품이 중국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화웨이의 우군이던 대만 TSMC도 미국 공장 증설을 계기로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한 상태에서 중국 반도체 굴기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화웨이의 경우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차단되고 TSMC마저 미국으로 돌아서자, 모바일 AP 수급을 위해 팹리스 자회사 하이실리콘 비중을 키우는 한편 대만 팹리스인 미디어텍의 완제품 '디멘시티' 수급으로 이어지는 우회경로를 타진했으나 이 역시 미국의 압박에 루트가 차단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또 하나의 파운드리 반도체 수급 루트, SMIC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가시화되며 중국 반도체 업계 전체는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SMIC 나비효과
SMIC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파운드리 기업은 아니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7나노 이상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TSMC는 최근 2나노 로드맵까지 밝혀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으나, SMIC는 아직 14나노 수준의 공정으로만 활동하는 중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3분기 기준(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추정치) TSMC가 53.9%, 삼성전자가 17.4%인 가운데 SMIC는 4.5%의 점유율로 5위를 달리는 중이다.

SMIC의 나노 공정은 프리미엄에 어울리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SMIC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에 섰다는 것은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다. 아직 14나노 공정에 머물렀으나 EUV 공정 도입을 시도하는 한편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도 받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EUV 공정 도입은 미국의 견제로 결국 실패했으나, SMIC의 파격적인 외연 확대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상하이 증권거래소 커촹반에 2차 상장, 9조원의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홍콩 SCMP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5년 이상 사업을 해온 중국 반도체 제조기업이 28나노 이상의 미세공정을 가질 경우 10년간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외 공정에는 5년간 면제, 이후 5년간 세율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중국 정부의 SMIC 맞춤형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그 정도로 SMIC의 잠재력은 상당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SMIC에 대한 압박을 키울 경우 단기적으로는 화웨이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의 반도체 수급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화웨이의 경우 퀄컴 등으로부터 모바일 AP 등을 수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는 한편, 올해 4월과 5월 추가제재로 제3국을 통한 반도체 수급도 완전히 막힌 상태다. 이런 가운데 팹리스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으로 설계를 했을 때의 중요한 파운드리 파트너인 자국 기업 SMIC에 미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대만 미디어텍의 완제품 수급도 막힌 상태에서 화웨이 입장에서는 프리미엄을 넘어 중저가 전용 파운드리 공급 라인까지 막히는 최악의 사태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미국 정부의 최근 조치로 중국 화웨이는 물론, 파운드리 시장에서 SMIC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자연스럽게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의 반사이익이 점쳐지는 가운데 프리미엄에 집중하는 삼성전자가 아닌, SK하이닉스(000660)가 중저가 파운드리 시장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올 연말 중국 우시 공장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8인치(200㎜) 틈새 공정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경쟁자인 SMIC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경우 중국 시장에서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출처=갈무리

중국의 고민, 깊어진다
미국의 '꼼꼼한' 제재는 중국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는 한편,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자국에 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그 연장선에서 추가적인 제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분간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거래가 끊겨 아우성대는 자국 기업의 고통을 외면하고, 최소한 미국 대선 전까지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을 키워갈 공산이 크다.

중국 입장에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공격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으나 '먹튀' 논란이 일고있는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 프로젝트처럼 부정적인 이슈만 터지고 있다. 

하드웨어 반도체 수급도 문제지만 소프트웨어 운용도 골치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월 다른 나라가 미국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를 쓰려면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바 있으며, 미국 기술이 들어간 EDA는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도 80% 중반대를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중국 EDA 점유율은 글로벌 기준 0.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는 하드웨어에 이어 소프트웨어 측면에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는 초반 미국 제재 당시 하이실리콘을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를 했고, 하이실리콘이 반도체를 설계할 때 사용하는 EDA는 '메이드 인 USA'다.  

▲ 궈 핑 화웨이 순환회장이 중국에서 열린 '2020 베터 월드 서밋'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한국화웨이

반격카드는?
미국의 반도체 압박에 중국은 맞대응할 카드가 딱히 없으나, 우회적 방법으로는 충분히 응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반도체 굴기에 대한 직접적이고 선명한 의지다. 

최근 중국 글로벌타임스신문에 따르면 화웨이 궈핑 순환회장은 내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하이실리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중국 반도체 공급라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궈핑 순환회장은 "지난해 구글 안드로이드에 대항하기 위한 하모니 운영체제를 개발한 바 있다"면서 미국의 압박은 어려움이 크지만, 반도체 부문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인프라 투자 의지가 여전한 가운데, 3세대 반도체 로드맵 이야기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3일 중국 정부가 향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3세대 반도체 비전을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갈 것이라 보도했다. 투입될 자본은 수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14차에 거쳐 5개년씩 로드맵이 가동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도체 자급률 확대라는 큰 그림을 전제로 하면서 메모리와 시스템, 파운드리 전반의 공격전략을 날카롭게 다듬겠다는 의지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미 국채 매각 시나리오가 부상하는 중이다. 당장 글로벌타임스는 5일 "(미국의 압박이 커진다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모두 판매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면서 "군사적인 충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전량 매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맞아 미중 관계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분쟁도 격렬해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이미 상반기에만 106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를 처분했으며 만약 반도체를 포함한 미국의 압박전술이 더욱 날카로워진다면 궁지에 몰린 중국이 미 국채 매각으로 응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 이어 중국은 미 국채 보유량이 가장 많으며, 그 규모는 1조달러에 달한다. 만약 중국이 미 국채를 전량 매각한다면 시장에 미 국채가 대거 풀리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이 금융 전반으로 옮겨가며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가 역력해지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