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 7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의 최성제 실장과 강신일 책임투자팀장이 퇴사했다. 수탁자책임실은 2018년 12월 운용전략실 산하의 책임투자팀에서 승격되며 중량감을 키운데다 현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던 적극적 스튜어드십코드의 전권을 갖는 부서였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의 핵심부서 중 하나로 꼽히는 수탁자책임실을 박차고 나온 두 사람의 행보에 궁금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 궁금증은 지금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두 사람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명분으로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말이 회자된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각 기업의 결정적 순간에 특정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는 말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퇴사를 두고 스튜어드십코드를 명분으로 삼아 기업을 길들이려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성이 모호해졌다는 신호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정부가 억한 심정이 있어 기업을 압박하고 길들이려는 것은 아니라 믿는다. 정권의 출범과 함께 재계를 겨냥한 적폐청산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지금도 그 ‘굿판’이 간간히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순한 의지는 여전히 투명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무려 5년간 한화 계열사들의 한화S&C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조사를 진행해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고, 몇몇 기업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압박’을 이어가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에 억한 심정이 있는 것은 아닐텐데, 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와 동기로 모든 의사판단을 정치적 후각에만 매달려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가 입법예고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 사태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CP(콘텐츠 제공자)의 플랫폼 유지 책임을 지운다는 발상은 업계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이견은 있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제대로 된 망 이용료를 내지 않아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을 받는 넷플릭스를 규제한다는 미명하에 네이버와 카카오같은 국내 ICT 기업에 대한 압박도 키우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나라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토종 인터넷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를 겨냥한 규제를 시도하면서 ‘넷플릭스가 억울하지 않게’ 토종기업에 대한 규제도 동시에 가동하는 필요이상의 ‘꼼꼼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개정안에 글로벌 기업에 대한 현실적인 제재장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넷플릭스를 규제한다며 내놓은 개정안이 막상 넷플릭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넷플릭스 처럼 CP로 활동하는 토종기업 네이버와 카카오만 타격하는 촌극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 정도 되면 대한민국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가 소위 ‘종교적 차원’에 이른 것 아닌가라는 망상마저 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작가 쌩떽쥐베리가 쓴 어린왕자에는 어린왕자와 처음 만난 사막여우가 등장한다. 사막여우는 새로운 별에서 온 어린왕자와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친구가 되자는 제안에는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이야”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어린왕자는 그 말에 삶의 통찰을 느끼며 서로를 차분하게 이해하며 알아가는 과정을 배워간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어떤가. 정부는 투박하게, 비효율적으로, 심지어 잔혹하게 길들여주겠다며 철심이 가득 박힌 채찍만 기업들에 휘두르고 있다. 원하는 것도, 지향하는 바도 없어보여 지금 현실이 기업들은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