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의 잘 알려진 시 <가지 않은 길>은 단풍 든 숲 속의 두 갈래 길을 몸 하나로는 다 가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시작한다.

필자는 의사가 안 될 수도 있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필자의 말 못할 병 때문이었다. 바로 혈관미주신경성 실신(vasovagal syncope)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1년 내내 거의 전교 2등만 했다. 그런데 반에서도 2등이었다. 10개 학급이니 전교 10등 안에 들면 반에서는 당연히 1등일 만도 한데, 하필 우리 반 1등 하는 녀석이 전교 1등이었고 우리 반 2등인 내가 전교 2등을 도맡아 했다. 한번은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만 본 시험에서 그 친구와 나는 둘 다 딱 1개씩만 틀렸다. 이번에는 공동 1등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총 25개 문항인 수학 시험 한 개를 틀린 나는 총점 296점이었고, 총 33 문항인 국어시험 하나를 틀린 그 친구는 총점 297점이었다. 다시 또, 그 녀석이 전교 1등이었고 내가 전교 2등이었다. 그는 정말 나를 거의 미치게 만드는 경쟁자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가 없었다면 난 그렇게 이 악물고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밤을 꼬박 새워 공부한 그 시험이 끝나고 심하게 앓았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서 링거액을 맞았다. 그런데 정맥 주사 바늘이 내 혈관을 찌르는 순간, 나는 얼굴이 노래지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잃었다.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었다. 정맥 혈관 근처에는 부교감신경의 일종인 미주신경 다발이 지나가고 있는데 정맥 주사 바늘의 자극에 의해 이 신경이 활성화되어 전신혈관확장, 저혈압, 뇌혈류감소가 일어나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쇼크와 유사한 증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다행히 미주신경성 실신은 대부분 인체에 무해하며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 저절로 회복된다.

부모님은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다. 의사가 되려던 선친이 피 보는 것이 싫어 약사가 되신 아쉬움도 있었고, 친 형님이 당시 S대 의대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촌 이내에 의사가 열 명도 넘는 집안 분위기도 한몫 했다. 그러나 이 미주신경성 실신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의대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 스스로가 주사하나 제대로 못 맞는데 남의 혈관을 찌르고 피를 보는 것은 못할 짓이라 생각했다.

의사를 못할 뻔한 두 번째 이유는 선생님들의 충고였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은 미대에 가라고 권했고, 기술 선생님은 공대에 가라고 하셨다. 생물 선생님은 머리 좋은 학생이 생물, 화학와 같은 기초과학을 전공하지 않고 의대를 가는 것에 냉소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꿈을 키우는 시기에 선생님들의 이런 멘토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의사를 못할 뻔한 세 번째 이유는 낙방의 고배였다. 대학입시 첫해에 S대 의대에 낙방하면서 S대 치대에 합격했다. 그리고는 다시 재수를 해서 S대 의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약 그 때 재수에 실패했다면 과연 삼수를 했을까? 치대에 복학해서 치과의사가 되었을까? 지금도 당시의 치대 학생증, 의대 학생증을 나란히 보관하고 있다. 지금 필자가 돌출입 수술, 양악수술과 같은 악안면수술, 즉 치아를 포함한 잇몸뼈에 대한 수술을 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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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대를 가고 의사가 되었다.

주사 맞다가 쓰러지던 필자가 의사가 되기 위해 시체 해부를 하고, 남에게 주사를 놓고, 수술할 때 피를 보고 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는 않았을까? 신기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통은커녕 남에게 주사를 찌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인턴[수련의]을 한지 25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혈관이 잘 안 보이는 수술예정 환자에게 직접 정맥주사를 단번에 성공하고 뿌듯해하기도 한다. 게다가 주사와 피 보는 일이 일상이 된 덕택인지 이제는 필자도 주사를 잘 맞고, 혈관 주사를 맞아도 미주신경성 증상이 없다. 말 못할 병이 사라진 셈이다. 그러니 행여 돌출입, 윤곽 수술 도중에 필자가 갑자기 실신할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주사를 맞다가 미주신경성 실신을 했던 경험, 기초과학 분야나 미대, 공대에 가라는 선생님들의 충고, 입시 첫 해 S대 의대 낙방과 치대 입학, 그리고 재수해서 의대에 입학한 경험, 전공과(성형외과)의 선택까지 운명처럼 맞물려 결국 지금 돌출입수술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매번 몇 가지 길 중 한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선택이란 달콤하고, 즐겁고, 아쉽고, 고통스럽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대에서 생화학, 미생물학과 같은 기초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돌출입, 양악, 윤곽수술을 할 때 치과와 팀 진료를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얼굴 라인을 만들기 위해 절골선을 직접 디자인해 그림을 그리고, 절골용 톱과 각종 기구로 얼굴 윤곽선의 미학적 개선을 위해 다듬고 조각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 필자의 직업이니, 사실 미술도 하고 기계도 다루며 기초과학에 뿌리를 둔 의학의 힘을 빌어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예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가지 않은 다른 길의 향기도 누리며 지내니 감사할 일이다.

김난도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삶은 일과 여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여가는 절반에 지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 한다고 썼다. 이런 면에서 수술 자체를 즐거워하는 필자는 행복하다. 돌출입으로 마음의 상처가 많던 환자가 행복해할 때 더욱 그렇다.

만약 필자가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감출 수 없는 창조의 욕구 때문에 내 손으로 뭔가를 그려내고, 만지고, 다듬고, 만들어내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옷이었을지, 조각이었을지, 그림이었을지, 자동차였을지, 아니면 신약이었을지,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체재료였을지는 알 수 없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끝맺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 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made all the difference].

요즘 전국 의대생들의 동맹휴학과 의사국가고시 거부 사태가 안타깝다. 입시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경험한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란, 입학이든 취업이든 정책이든, 편법이나 특혜나 찬스사용 없는 공정한 룰과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긍정적인 변화(difference)로 귀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