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화학의 글로벌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4각 생산 체제 및 합작 법인 현황. 출처=LG화학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LG화학의 전지 사업 부문이 독립한다. LG화학이 그간 배터리 사업 분사를 꾸준히 논의해 온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나, 최근 분사 추진이 급물살을 타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LG화학은 17일 전지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상장하는 안건이 이사회에서 통과됐다고 밝혔다. LG화학에 따르면,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 법인은 오는 10월 30일 개최되는 임시 주주 총회에서 승인을 거친 후 12월 1일부터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한다.

분사 방식은 전지 사업부를 100% 자회사로 거느리는 물적 분할이다. 물적 분할 시 신설 법인이 발행하는 신주 전부를 존속 법인이 갖게 되므로,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상장이나 지분 매각 등을 통한 막대한 자본의 유입도 용이해, 주력 사업인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규모 투자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올해 12월 전까지 분사를 마무리하고, 추후 기업 공개(IPO)를 실시할 계획이다. 

앞서 LG화학 측은 지난 16일 불거진 '분사설'에 대해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노 코멘트'로 일관했으나, 이미 업계 안팎에서는 LG화학의 전지 사업부 분사를 확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LG화학이 한창 전기차용 배터리로 주가를 올리고 있고 관련 실적 또한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배터리 사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을 '적기'라는 데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가 됐다

LG화학의 전지 사업부 분사는 시기의 문제였을 뿐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전에 한 업계 관계자는 "(LG화학 배터리 사업 분사는) 언제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거듭 제기돼 온 이슈다. LG화학 배터리 분사설은 지난 2011년 처음으로 나온 뒤 이달 초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서 LG화학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분사 작업을 추진하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으나, 이는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흐지부지됐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분기 이후부터 분사 가능성에 제법 힘이 실렸다. LG화학 전지 사업부의 수익성이 전기차용 배터리 호조를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LG화학 전지 사업부는 올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국내 배터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가운데 가장 먼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전까지는 적자 국면이 지속돼 배터리 사업 분사에 대한 내부 여론이 냉담했으나, 2분기를 기점으로 분위기는 반전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배터리 사업이 본격적인 이익 창출 궤도에 오르면서, 홀로 설 기반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다.

LG화학의 경우 지난 2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되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 현재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1위 업체로서 군림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3월 처음으로 세계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하이브리드카(HEV) 배터리 사용량 1위에 오른 뒤 5개월째 '장기 집권' 중이다.

게다가 LG화학이 항공 모빌리티 산업과 로봇 시장으로도 배터리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LG화학의 배터리 경쟁력은 그야말로 물올랐다는 평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한 '고고도 장기 체공 태양광 무인기(EAV-3)'는 지난달 LG화학의 차세대 전지인 리튬-황 배터리를 탑재하고 무인기 기준 국내 최고 고도 비행 기록을 세웠다. LG화학은 리튬-황 배터리를 전기차 위주로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사업성 검토 후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에 적용할 수도 있다며 항공 모빌리티 업계로의 진출 가능성도 열어 놨다.

또 LG화학은 최근 미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물류 자동화 로봇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세계 서비스 로봇 1위 업체인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될 가능성 또한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편, 경영진의 발언도 배터리 사업 분사를 염두한 말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차동석 LG화학 최고 재무 책임자(CFO)는 LG화학 2020년 2분기 경영 실적 발표 당시 "전지 사업 부문의 성장세 확대 등을 통해 실적 호조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중장기적 관점의 사업 효율화도 지속해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달성하는 사업 구조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외에도 LG화학의 이번 분사는 현재 저금리 효과로 주식 시장에 유동성이 몰리고 있고,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 대한 시장 주목도가 높은 등 분사 및 IPO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판단 하에 적극적으로 추진됐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왜 독립시키나

LG화학은 왜 배터리 사업 분사를 추진했을까. 여기에는 '굳이'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

대규모 자금 확보

결정적으로 LG화학은 대규모 자금이 절실하다. 대내외적으로 생산 능력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LG화학은 현재 미국 테슬라와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폭스바겐·르노·볼보·아우디·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재규어·포르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150조원이 넘는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물량을 수주한 상태다.

다량의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LG화학은 주요 전기차 시장인 유럽·미국·중국 등에 배터리 생산 설비를 신증설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말 35기가와트시(GWh)였던 배터리 캐파(생산 설비 용량)를 올해까지 100GWh, 내년까지 120GWh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폴란드 공장의 캐파를 60GWh까지 증설할 방침이고, 미국 GM과 50대 50 지분으로 설립하는 배터리 셀 합작 공장도 오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이 외 중국에 있는 생산 기지의 추가 증설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의 해외 배터리 생산 기지 신증설에는 연간 3조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LG화학의 적극적인 증설은 전기차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이 친환경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당분간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차량의 생산·판매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시장이 팽창하면 배터리 업체들의 사업 규모도 구조적으로 커진다.

이러한 가운데 기술력과 점유율, 규모의 경제 등을 고루 갖춘 소수 업체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독과점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시장 내 파이 다툼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이미 LG화학은 테슬라라는 먹거리를 두고 중국 CATL 및 일본 파나소닉 등과 접전을 펼치고 있으며, 이 배터리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도 근소한 격차로 LG화학을 맹추격 중이다.

수주 경쟁은 이제 증설, 즉 자본력 경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가격 인하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배터리 업체들의 증설을 부추기고 있다. 배터리 단가를 낮추려면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수적이며, 결국 배터리 생산 능력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배터리 연구·개발(R&D)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LG화학은 지난해에만 3300억원이 넘는 R&D 비용과 4조원에 육박하는 시설 투자 금액을 배터리 분야에 투입했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수주와 공급 사이에 2∼3년의 시차가 있어, 전기차 시대가 만개하기 전 기반을 다지기 위한 투자가 공격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LG화학은 그간 주로 석유화학 사업 부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배터리 사업 비용을 충당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자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석화 사업으로 남긴 이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 석화 사업 특성상 성장 모멘텀이 크지 않은 데다, 시황에 따라 투자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배터리 사업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이 시급해진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신주를 발행할 시 10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합작 법인 설립 위한 포석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사는 글로벌 합작 법인 설립을 위한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최근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사 간 합작사 설립이 전기차 생태계의 협업 모델로 부상하는 추세다. 각각 안정적 공급망과 공급처를 얻고자 하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의 니즈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폭스바겐이 스웨덴 배터리 팩 제조사 노스볼트와 합작법인을 세웠고, LG화학도 GM과의 합작사를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하고 있다.

이번 물적 분할을 통해 'LG-LG화학-LG에너지솔루션'으로 수직 지배 구조가 형성되면,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 설립은 국내에서는 다소 어려우나 해외에는 관련 제한이 없어 용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G화학과 현대자동차의 합작 법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이 같은 유추에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지난 16일 리퍼블리카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LG화학과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당국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LG화학 측은 "합작 법인과 관련된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는 있으나, GM 외 확정된 업체나 내용은 없다"고 일축했다.

배터리 브랜드 가치 제고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은 이제 오롯이 그 자체로 가치를 평가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CATL 등 다른 배터리 업체들과 직접적으로 배터리 가치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다.

LG화학 경우 CATL과 비교해 배터리 기술력은 앞서지만, 기업 가치 측면에서는 저평가돼 왔다.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만 운영하는 CATL의 시가 총액은 약 76조원인데, LG화학은 석유화학 등 다른 사업 부문들을 포함하고도 48조원 가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여러 사업부가 어우러져 있어,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 배터리에 대한 프리미엄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LG화학 배터리 사업부의 기업 가치가 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SK이노베이션, 소송전 부담 덜까

한편, LG화학의 분사는 1년 넘게 LG화학과 배터리 기술 관련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SK이노베이션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도 있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 상장에 집중하고 이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를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초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수조 원대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SK이노베이션은 수백억 원 규모의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사 간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온 LG화학이 조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한층 타협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