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우주성 기자] ‘전세 소멸론’의 여파는 월세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전세가 줄어들면 자연 월세 형태의 임대차 계약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월세 시장 확대가 주거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 전세는 ‘개발시대의 의식 수준’이며, 월세로의 재편이 정상화 과정이라는 ‘월세 정상론’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런 주장이 현실과 괴리됐다는 반박과 평가 역시 만만치 않다.

임차인 주거 안정·상향에 기여한 전세제도

‘전세’는 대다수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아주 밀접한 주거형태 중 하나다. 법제상으로는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 편입됐지만, 이미 조선후기에 유사 형태의 계약이 확인될 정도로 유서가 깊다. 이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 등으로 전세에 대한 제도적 보호는 더욱 강해졌다.

학계에서는 전세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존속해 온 것은 임차인에게 여러 모로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전세가 임차인에게 유리한 측면은 크게 주거 안정 측면과 주거 상향 기능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교수에 의하면 전세는 목돈 부담은 크지만 계약기간 동안 주거비와 주거 안정 측면에서 월세보다 유리하다. 또 장기적으로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자가의 주거 상향 이동 기능을 수행해 왔다는 평가다.

김성환 건산연 부연구위원 역시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가 보다 유리한 부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전세는 주택가격 대비 저렴한 비용을 치르고도 보유자금을 넘어서는 수준의 주거공간을 2년간 보장받을 수 있다. 또 현재 전세 자금 대출의 금리 수준에서는 월세 지불로 매월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것보다 전세제도가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대차 가구나 청년 가구에서도 전세 선호 현상은 뚜렷하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가구(가구주 연령이 만20세에서 만34세인 가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주거지원 정책은 ‘전세자금 대출지원’으로 전체 응답의 39%를 차지했다. 전·월세가구 역시 ‘전세자금 대출지원’을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특히 해당 조사를 보면, 신혼부부 가구의 경우 전세 거주 비중이 일반가구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반 가구의 전세 거주 비중이 15.1%인데 비해 신혼부부 가구의 전세 비중은 31.6%로 2배나 높은 셈이다. 신혼부부의 경우 전세 자금대출이 용이하고, 각종 주거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세 선호·비중 높은 젊은 세대… 전세 감소로 ‘타격’

지난 2018년 결혼한 A씨(32세) 역시 부모님이 준비해 준 자금과 개인 적금으로 전셋집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한 케이스다. A씨는 “기회가 있다면야 목돈을 마련해서 전세를 들어가는 것이 돈을 불리는 데 유리하지 않나. 대출 역시 전세가 훨씬 유리한데 월세가 낫다고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역시 자신의 저서인 <전세>에서 “전세는 보증금 증액으로 목돈을 저축하는 강제 저축 기능을 수행해 장기적인 자산 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현재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B씨(30세)도 “맞벌이지만 생활비에 월세면 남는 게 없는데다가, 부모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시작은 전세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전세 자금과 대출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보고 있는 지역들도 요즘 가격이 너무 상승한데다가 전세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니 걱정된다”고 푸념했다.

김진유 교수는 전세의 준전세 전환이나 보증부 월세의 순수 월세 전환 추세가 젊은 층이나 주거취약계층에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월세의 경우 주거비 부담이 상당히 큰 주거 유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월세 물량이 증가하는 경우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주거비를 쓰고 나면 나머지 금액으로 식비, 의료비 등의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데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 그런 비용을 우선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강한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거주자들의 인식과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실제 ‘2012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세 거주자가 월 주거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한 비율은 전체의 10.2%지만 보증부 월세는 64.3%, 순수 월세의 경우는 69.1%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역시 여당 일각에서 주장한 ‘월세 정상론’과는 달리, 전세의 월세 전환 추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달 ‘전월세전환율’ 인하에 착수했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이율을 말한다. 전월세전환율이 내려가면 전세를 월세로 전환 시 월세가 낮아지게 된다. 정부는 현행 4%인 전월세전환율을 2.5%까지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전월세전환율 인하로 인한 월세 절감보다, 전세 보증금을 은행 등지에서 대출받아 이자를 내는 편이 임차인들에게는 더욱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많다. 전월세전환율 인하에서 신규 계약분은 미적용 된다는 점도 맹점 중 하나다.

김 교수는 “월세 증가에 임차인들이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전월세 주택의 수요가 높은 지역의 전세 물량이 감소하고 있다. 임대차 3법 등으로 기존 전세입자들이 재계약을 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산술적으로 물량이 대폭 감소한다. 재건축 실거주 요건을 2년 이상으로 채운 것도 전세 물량 감소에 영향을 줬다. 향후 월세나 준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치 구간) 거주형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