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다. 장기 관점에서 수급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주요 기업들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요처인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의 격화, 그와 연결된 D램 가격 하락 전망 등 변수들로 인해 국내를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향후 전망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호재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 영향으로 ‘언택트(비대면)’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의 서버용 D램의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 여기에는 알리바바·텐센트·바이트댄스 등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기업들의 수요 증가분이 반영됐다. 이에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서버용 D램(32GB 모듈 기준)의 글로벌 거래 가격은 116달러를 기록하며 1월에 비해 6.4% 오른 가격대가 형성됐다.  

코로나19의 종식을 논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 가운데서 이러한 추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었다. 비대면 업무 지원을 위한 중국 기업들의 클라우드 투자 역시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2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은 18조2300억원, 영업이익은 5조4300억원을 기록하며 코로나 위기 가운데 삼성전자의 양호한 실적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2분기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1조9467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대비 205.3% 증가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특히 이 기간 SK하이닉스의 서버용 D램은 전체 D램 매출 모바일용의 비중을 역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진정 국면으로 하반기에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수요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그랬다. 

고래들의 자존심 싸움 

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분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큰 악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기술이 조금이라도 반영된 반도체는 모두 우리(미국)의 승인을 받은 후 화웨이에 공급해야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과 같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당장 다가오는 1차적 피해는 화웨이 매출분의 감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체 매출 중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2%, 11.4%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7조3000억원, 3조원 수준이다. 비중으로 보면 아주 높지는 않다. 그러나 두 기업에게 화웨이 수출금지는 곧 당장 매출 7조원, 3조원 규모의 거래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에 특별 수출허가를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감안하면 수출 승인이 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최근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에 대한 제재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20일부터 미국 기업들은 텐센트와 거래(transaction)를 할 수 없게 된다. 텐센트에 대한 제재는 사실 미국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중국 역시 애플·포드·월마트 등 미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요소마저도 감수한 미국의 강경대응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고뇌하게 만들고 있다. 

시련의 연속과 일말의 기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다른 측면으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IT·전자 산업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보고서를 통해 “2020년 4분기 서버용 D램 가격 하락 폭은 기존 10%∼15%에서 13∼18%까지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주력 제품 중 하나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D램의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2개 업체가 전체의 73.6%를 차지했다.  

▲ 글로벌 서버용 D램 가격 하락 전망. 출처= 트렌드포스

서버용 D램 가격 하락 예상에는 크게 다음 2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비대면 비즈니스 수요 증가 예상으로 약 6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서버용 D램을 미리 구매해놓은 기업들의 재고가 아직 쌓여있는 것 그리고 미국의 화웨이 봉쇄로 인한 글로벌 D램 수요의 감소다. 

이러한 시장의 급변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향후의 긍정적 전망과 추가 성장을 기대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위기로 다가서고 있다. 물론 두 기업은 나름대로의 우회 전략으로 위기 상쇄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화웨이가 잠시 뒤로 물러서면서 생기는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의 공백을 노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샤오미, 비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공급되는 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의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이 미-중 분쟁의 장기화로 인해 다방면으로 받게 되는 타격을 완벽하게 상쇄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뜻하지 않은 계기로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 가운데 생존을 위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계산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