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세계 최대 전기 자동차 업체인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테슬라는 오는 22일(현지 시간) 오후 1시 30분, 한국 시간으로 23일 오전 5시 30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소재 공장에서 주주 총회와 배터리 데이를 열고 이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가 이번 배터리 데이에 대해 "테슬라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행사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과연 전기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의 판도를 바꿀 내용이 발표될지 세간의 관심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관전 포인트는 테슬라가 채택한 차세대 배터리와 자체적으로 제작한 전기차용 배터리, 그리고 주요 배터리 업체들의 테슬라향 공급선 변화다.

차세대 배터리의 조건, 단가는 낮추고 수명은 높인

테슬라의 차세대 배터리를 두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선 단가는 낮추고 수명은 높인 배터리일 것이라는 예상이 공통적이다. 전기차가 내연 기관 자동차와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원가 절감과 주행 거리 향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이 두 가지 조건 모두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는 요소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비용에서 40~50%를 차지하고, 전기차 주행 거리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에 좌우된다.

이에 따라 코발트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코발트 프리' 배터리가 발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코발트는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원료지만, 지역 편재성과 공급 불안정 등으로 값비싸 배터리 단가 인하의 걸림돌로 꼽혀 왔다.

테슬라는 배터리 내 코발트 비중을 낮추겠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다. 테슬라는 '2019년 임팩트 보고서'에서도 "최종적으로 코발트를 배터리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원가 절감 측면의 연장선상에서 테슬라가 CATL의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도 높다. LFP 배터리는 현 대세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가격적 매력이 크다. 니켈 대신 철이 들어가 비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무게가 무겁고 에너지 용량이 작다는 단점이 있다. 

CATL의 LFP 배터리는 기술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지적되고 있지만, 테슬라는 해당 배터리를 공급 받겠다며 CATL에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 절감과 동시에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CATL의 LFP 배터리는 이미 지난 7월부터 테슬라의 중국향 전기차 모델 3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테슬라와 CATL이 공동 개발하고 있는 '100만마일 배터리'도 발표 후보로 거론된다. 100만마일 배터리는 배터리 최대 수명이 100만마일(160만km) 수준에 이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해당 배터리의 수명은 기존 배터리 대비 5배 이상 길다는 설명이다.

▲ 테슬라 '배터리 데이' 페이지. 출처=테슬라

일각에서는 '나노 와이어' 기술이 적용된 배터리의 등판도 점친다. 테슬라가 배터리 데이를 예고한 페이지의 배경 이미지가 나노 와이어 기술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나노 와이어 기술을 통해 배터리 양극·음극 재료를 단면 지름 1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수준의 극미세선으로 만들어 에너지 밀도를 향상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나노와이어 기술 적용 시 에너지 밀도를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 대비 2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테슬라가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나, 일단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설사 공개되더라도 상용화는 먼 수준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최근 삼성이 관련 기술을 전격 공개해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도 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2022년까지는 배터리 자체 양산 힘들다…배터리 업계 '안도'

배터리 업계가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테슬라의 자체적인 배터리 생산이다. 오늘의 고객사가 내일에는 강력한 경쟁사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산업의 선두 주자인 테슬라가 전기차용 배터리까지 장악하면, 배터리 업체들은 큰 공급처를 잃는 동시에 시장 파이까지 뺏길 공산이 크다. 전기차 시장과의 동반 성장이라는 청사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적인 배터리 제작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며 시장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테슬라도 한 방이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원가 절감 전략의 일환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배터리 개발에 돌입했다. 테슬라는 현재 미 프리몬트 공장에서 1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 라인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적인 리튬 이온 배터리 설계 및 대량 생산을 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캐나다 배터리 생산 설비 업체 하이바시스템스와 미국 배터리 업체 맥스웰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엘렉트렉은 로드러너 프로젝트로 생산된 배터리 셀의 사진을 입수해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배터리 셀의 직경은 기존 셀보다 2배 가량 확대된 모습인데, 이는 셀 크기를 키워 포장을 축소하고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 개수를 줄여 비용을 줄이는 구조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테슬라는 독일 베를린에 짓고 있는 '기가팩토리 4'에서 내년부터 양산될 전기차에 자체 개발 배터리를 탑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테슬라의 배터리 생산 내재화가 당장 배터리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전망이다. 머스크 CEO가 테슬라의 배터리 수급이 당분간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협력사들과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뜻이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가 21일(현지 시간) 게시한 트윗. 출처=트위터

머스크 CEO는 21일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파나소닉·LG화학·CATL 등으로부터의 전기차용 배터리 수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 생산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나, 오는 2022년 심각한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난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므로 물량 확보에 힘쓸 것"이라고 부연했다.

즉, 테슬라의 배터리 대량 생산 시점을 2022년 이후로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테슬라의 배터리 수직 계열화로 LG화학을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의 테슬라향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일축되는 분위기다.

기존 테슬라 배터리 공급사들의 수주 기대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테슬라의 전통적 파트너인 일본 파나소닉은 테슬라와의 합작 공장인 미국 네바다주 소재 기가팩토리 1에서 배터리 생산 라인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LG화학 측 역시 당분간 공급선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테슬라가 배터리 생산 내재화를 시도해도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파트너 배터리 회사들 측면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다. 최근 물적분할 로드맵 발표 후 주가가 하락하던 LG화학이 22일 기준 다시 반등하기 시작한 것도, 머스크 CEO의 트위터가 큰 역할을 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편 머스크 CEO는 주주 총회와 배터리 데이를 하루 앞두고 모든 임직원들에게 "올해 3분기 차량 판매가 역대 최다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테슬라의 분기 기준 최다 판매량은 지난해 4분기 기록한 약 11만2000대였으나, 시장은 테슬라가 올 3분기 14만4000대의 판매량으로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의 파괴적인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