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가 그 동안 미루어왔던 이른 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 작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내 외국기업들의 불안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출처= Freepi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이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그 동안 미뤄왔던 이른 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 작성에 착수했다고 CNBC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컨설팅기관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마이클 허슨 중국 및 동북아 대표는 21일 "중국 정부가 올 연말까지, 어쩌면 수 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올릴 미국 기업을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의 발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곤경에 처한 중국 내 다국적 기업들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문서에서 ‘신뢰할 수 없는 기업’에 해당될 기업의 조건은 ‘중국의 국권, 안보 또는 개발 이익"에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외국 기업’으로 다소 애매하게 표현되었지만, ‘정상적인 거래를 중단하거나 정상적인 시장 거래 원칙을 위반하고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중국 기업에 대해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는 외국 법인’들을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게 된다. 또한 기업 임직원의 중국 입국이 제한되거나, 거류 자격이 취소될 수도 있다.

중국의 반격?

중국의 이번 발표는 미 상무부가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 텐센트가 운영하는 소셜메시지 앱 위챗과 중국 스타트업 바이트댄스가 지원하는 동영상 앱 틱톡을 사용한 미국내 거래 금지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5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를 미국 납품업체와 협력하는 것을 금지하는 블랙리스트에 추가한다고 밝힌 직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을 제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이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여전히 국가 경제에 중요한 공로자인 외국인 직접투자와 외국 기업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기업인협의회(U.S.-China Business Council)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 발표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바란다"며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서 점점 더 압박을 느끼고 있다. 어느 한 쪽의 규정을 지키면 다른 한 쪽의 규칙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주재 유럽연합상공회의소의 요르그 우트케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요건에 대한 모호한 표현이 언어의 모호성이 당황스럽다”면서 “중국 내 EU 기업들은 기업 환경이 점점 더 정치화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예상 목록

최근 중국 정부는 최근 기업들에 대해 위약금을 물더라도 미국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기업 제재에 대한 대응에 나선 중국 정부는 상무부를 비롯해 반독점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에 블랙리스트 후보들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현재 후춘화 부총리가 중국판 블랙리스트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을 최종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라시아그룹의 허슨은 대표는 보고서에서 “중국 측의 조치가 국내 회사와의 경쟁업체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 기술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의 수입을 막는 것은 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와 관련된 회사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스코(Cisco), 델 EMC(Dell EMC), HP, 방위산업체 거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과 록웰콜린스(Rockwell Collins) 같은 회사들이 우선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중 시스코는 오랜 기간 납품을 했던 중국의 국영통신업체들과의 계약이 이미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중국 내에서 좋은 기업 시민으로서의 높은 글로벌 평판’을 이유로, 반도체회사 퀄컴(Qualcomm), 인텔, AMD는 ‘중국 내에서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강한 노력을 기울인 중요한 공급업체’라는 이유로, 항공기 제작업체 보잉은 ‘대만에 아파치 헬리콥터를 판매하지만, 중국의 항공산업과 미국 대표기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잉에 대해 아파치 헬리콥터를 명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이유로 목록에 포함될 가능성이 적다고 내다봤다.

중국 내부에서도 의견 엇갈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의 긴장은 지난 2년 동안 무역을 시작으로 기술과 금융까지 확전 됐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런 긴장이 트럼프의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11월 대선까지 계속 고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의 승리가 양국 관계의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중국 정부 내에서도 블랙리스트 공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이 미 기술기업들을 규제할 블랙리스트 작성에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일부 관리들은 블랙리스트 발표를 미국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면서 '방아쇠 당기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무역 협상을 주도했던 류허 부총리를 포함한 일부 고위 관리들이 블랙리스트가 미국의 더 가혹한 조치를 자극할 수 있다면서 발표를 미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발표 여부 자체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 지도부 내 이견은 중국 정부가 미중 관계를 완전히 붕괴하지 않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동안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제재에 대등하게 상대하려고 하면서도 일정 기준을 넘는 조처는 피해 왔다.

중국 상무부 부부장을 지낸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hina Center for International Economic Exchange)의 웨이젠궈 부회장은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향후 5년 동안 중국 기업의 약진을 막고 그 사이에 미국 기업이 중국에 뒤져있는 부분을 빠르게 따라잡으려는 것"이라며 "따라서 반도체 공급을 끊고 틱톡을 금지하는 것은 서막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이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갈등 대신 협력할 방법을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