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作品S.W-302, 철 250×120×70㎝, 1964-1965

1960년에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한 박석원은 아직 대학생이었던 1961년 국전에 <희망>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작가로 데뷔하였다. 1962년에 신인예술상을 수상하였고 1966년에는 제5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1968년과 1969년 국전에서 연이어 국회의장 상을 수상하였는가 하면 1969년에는 상파올로 비엔날레(제10회)에 출품할 정도로, 이미 20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기로 성장했다.

박석원은 조소과에 입학하여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의 조각을 통해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2학년 재학 중에 <희망>(1961년)이라는 인체석고 작품을 국전에 출품했는데, 이 작품은 인체를 약간 단순화시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실재현적인 표현으로, 당시 우리나라 국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누드상이다.

이듬해 국전에 출품했던 <포즈> 역시 같은 경향의 작품이다. <희망> 보다 인체의 동제가 강조되어 있으며 인물이 시선을 멀리 두고 있어 공간의 활용에 대한 관심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석고작품이다.

박석원의 조형언어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62년경이다. <포즈>와 같은 아카데믹한 인체 누드 상을 국전에 출품했으면서도 동시에 <작품8>과 같은 추상적인 철 용접작품을 출품했다. 국전에 철 용접조각을 출품한 것은 박석원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57년에 김인태, 필주광과 같은 홍익대 출신 작가들과 전상범, 송영수 같은 서울대 출신 작가들이 철조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구에서 유행했던 철 용접조각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은 1950년대 후반기였다. 1955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김정숙은 용접조각을 배워 와서 1957년 봄 학기부터 홍익대에서 직접 용접조각을 가르쳤다. 또한 1957년 5월 덕수궁에서 연린 미국현대작가 8인전에 출품되었던 용접조각 작품들이나, ‘미술수첩’같은 일본 미술잡지에서 소개하던 용접조각은 젊은 작가들에게 ‘현대조각’을 제작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박석원(한국현대추상조각 선구자 박석원,A South Korea Sculptor PARK SUK WON,조각가 박석원,朴石元,PARK SUK WON,한국현대추상조각 선각자 박석원,박석원 작가)이 1960년대에 용접조각을 적극적으로 제작한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김정숙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박종배, 이종각 같은 선배들이 철조실에서 용접하는 것을 직접 보고 철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글=김이순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