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본사나 해외 대주주를 둔 국산차 업체 3개사의 수장들. 왼쪽부터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도미니크 시뇨라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예병태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출처= 각 사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외국 기업을 본사나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국산차 업체 3사가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지속 강화해오고 있다. 국산차 3사의 생산 능력은 전세계 사업장 가운데 한국의 위상을 높인데 기능한 주 요소다. 다만 이를 위축시킬 수 있는 고임금, 노사 갈등 같은 위험요소를 현명히 해결해나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기업 성장의 관건으로 지목된다.

24일 현재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3사는 각각 인천·창원, 부산, 평택 등지에서 완성차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시장 침체 등 요인으로 신차 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공장별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매월 배포하는 국내 자동차산업 월간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산차 3사의 지난 1~8월 완성차 생산량은 한국지엠 22만3405대, 르노삼성차 8만9394대, 쌍용차 6만4745대로 각각 집계됐다.

전년동기대비 한국지엠 22.2%, 르노삼성차 19.1%, 쌍용차 28.1%씩 일제히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자일대우상용차, 타타대우상용차 등 나머지 국산차 업체들의 실적을 포함한 전년동기 대비 전체 생산량 증감폭 –16.3%를 상회한다.

다만 한국이 해외에 비해 탁월한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거둠에 따라 3사를 비롯한 국산차 업체들의 생산 실적이 도드라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지난 상반기를 기준으로 주요 자동차 시장의 생산 실적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162만7643대를 만들었다. 중국(1008만7798대), 미국(348만823대), 일본(309만7292대)에 이어 4위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2만8332대에 비해 19.8% 감소했지만 순위는 7위에서 3단계나 올랐다.

해외 본사의 글로벌 방침에 따라 외국 시장에 출시할 차량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 양사의 경우 이번 K-방역의 덕을 톡톡히 봤다. 유럽, 북미 등 코로나19로 완성차 생산시설 대부분이 휴업한 가운데 차량을 지속 생산함으로써 일부 수요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지엠, 르노 등 한국 지사의 모그룹들은 K-방역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국산차 업체 ‘3중(三中)’ 가운데 일부는 이 같은 생산능력을 글로벌 본사로부터 인정받아 최근 모종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르노삼성차는 작년 말 수출 전용 모델 닛산 로그의 단종 이후 바닥을 기는 수출 실적을 기록해왔지만 최근 신차 XM3의 유럽 수출 물량을 본사로부터 배정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지엠도 지난해 1월 모그룹 직속 법인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를 출범시키는 성과를 냈다. 쌍용차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60년 넘는 업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물밑에서 신규 투자자를 적극 발굴하고,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위탁생산 협력에 관해 긴밀히 논의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본사가 해외 사업장에 연구개발(R&D) 조직을 출범시키기로 결정하기 위한 조건에 해당 지역의 충분한 생산 역량이 포함된다. 연구진이 차량에 관한 신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시험하고 상용화하기 위한 실물을 생산할 능력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R&D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본사들이 눈독 들이는 자동차 산업의 R&D 부문 인력풀(pool)이 국내에 조성될 수 있었던 요인에도 자동차 시장이 수십년 간 발전해온 점이 꼽힌다. 한국고용정보원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 자동차 산업 종사자 수는 38만여명으로 제조업 종사자 전체 인구의 10% 초반 정도 비중을 차지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자본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에 R&D 시설을 설립한 데엔 연구·개발 과정을 뒷받침할 생산시설이 구비됐는지 여부가 일부 반영된다”고 분석했다.

국산차 삼중은 다만 그간 기업을 존속시켜올 수 있었던 밑천인 생산 역량을 구조조정할 위기에 놓였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친환경차, 자율주행, 차량공유 등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단순히 생산역량을 강화해나가는 것만으론 경쟁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져서다.

2018년 5월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된데 이어 2022년 이후 부평2공장의 신차 생산물량 배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은 한국지엠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르노삼성차도 저조한 생산량을 고려해 부산공장을 오는 25일부터 내달 18일까지 3주간 휴업시킬 계획이다. 쌍용차도 과거 체어맨 등 현재 단종된 차량을 생산하던 평택공장 2조립라인을 무기한 휴업한 상태다. 글로벌 방침에 따라 공장 가동율이 좌우되는 국산차 삼중 입장에선 불안한 현상이다.

업계에선 국산차 삼중이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노동 생산성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란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철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외자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역량이 글로벌 본사의 관심을 받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이 전세계 사업장 가운데 인정받을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인 생산 역량을 존속·강화하려면 임금 개선, 노사 협력, 스마트 공정 도입 등 조건을 충족시키도록 관계 주체들이 적극 힘써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