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소현 기자] 국내에서 5만원권 품귀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도 현금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대면 결제가 늘어났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 자금인 현금 확보가 증가하면서다.

▲ 출처=한국은행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코로나19가 주요국 화폐 수요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에 따르면 국내 화폐발행잔액은 지난 2011년초를 정점으로 둔화됐지만,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올해 3월 이후 다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고액권인 5만원권의 경우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환수율은 20.9%로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환수율(60.1%)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뿐 아니라 다수의 국가들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EU(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 주요 8개국을 조사한 결과 각국의 화폐 수요 증가율은 평시보다 2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올해 3~8월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13%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동기(5%)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11%) 수준을 넘어섰다. 미 연준(Fed)의 소비자 지급수단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민간의 거래용 현금 보유가 17%(69달러→81달러), 예비용 현금 보유(소지하지 않고 자택 등에 보관)가 88%(257달러→483달러)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경우에는 확산세가 진정된 현재에도 증가율이 9%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국가보다 코로나19가 이르게 확산되면서 지난 2월 수치가 급상승하며 3월에는 11%를 기록한 이후 지금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폐발행잔액이 증가한 유럽에선 고액권 품귀현상이 두드러졌다. 유럽연합의 화폐발행잔액 증가율도 올해 3~7월 평균 9%로 상승하며 지난해 동기보다 4%포인트 상당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1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고액권인 200유로권은 91%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일본 또한 지난 7~8월 증가율이 6% 수준으로 상승한 가운데, 증가분의 97%를 최고권액인 1만엔권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출처=한국은행

한은은 현금 수요가 급증한 원인으로 ▲이동제한 등으로 인해 현금접근성 제약 우려에 대한 대응 ▲화폐 지급과 교환 수요에 응하기 위한 금융기관의 영업용 현금 확보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예비용 지급수단 확보 등을 꼽았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경기침체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자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고액권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 상황에서도 금융시스템 중단 우려 등으로 현금 비축 수요가 증가한 바 있고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금 수요는 고액권이 중심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난 등 위기 시에는 현금에 대한 신뢰가 비현금지급수단보다 우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하게 결제를 완료할 수 있고 가치를 안정되게 저장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