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박한 시대다. 진득하니 쟁여놓은 돈만으로 든든하던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은행 곳간을 털어 투자처를 찾는다. 곳간 돈으로 장사하는 은행에게 이는 치명적이다. 저금리 시대에 은행이 고전하는 이유다. 국내 금융 산업 위기론 속에 은행들은 신대륙을 찾아 나섰다. 해외의 금융영토 개척을 통해 악화일로에 놓인 수익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고전하는 은행, 해외 시장 눈 돌리다

“1000만원 정도 예금하려 했는데, 그냥 두고 쓰려고요. 세금 빼면 1년 후에 25만원 정도 (이자가) 붙더라고요. 물가상승률 보다 못한데 무슨 예금입니까.” 연말 상여금 등을 모아 올 초 은행 예금을 계획했던 최진혁(32⋅강남구 수서동)씨는 은행연합회의 금리 상황을 검토한 후 뜻을 접었다. 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의 흔한 풍경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은행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지난 해 말에는 금융기관의 수익률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 마진(Net Interest Margin, 이하 NIM)’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기준금리가 인하된다고 가정하면 NIM의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위기를 체감한 은행은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새로운 수익원 확보에 나선 것. 해외시장 공략 강화도 그 중 하나다. 우리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생존전략이자, 위기 이후 경쟁우위 선점의 관건”이라고 했다. 이미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KB금융그룹 등 국내 주요 금융사들은 답보일로에 있는 국내 시장을 탈피, 성장잠재력이 큰 해외 시장에 개척에 나선 상태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2013년 국내외 경제는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여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강화해 왔다”고 말했다.

   

‘선택 혹은 집중’, 새 금융영토를 찾아라

금융사들은 각각 역량과 특성에 맞춰 핵심시장을 선정, 시장 특성화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격전지는 ‘베트남,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이다. 작년 한 해 동안만 이 시장에 4개의 지점을 새로 개설했다. 베트남 카드사업과 홍콩 자산운용 현지법인 출범 등 비은행 사업도 강화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중국, 인도네시아, 미주 등에 진출했다. 그 중 인도네시아에 집중해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지난 2012년, 진출 5년만에 해외네트워크 30개를 달성한 것. 한국계 은행 중 자산⋅대출금⋅예금규모 1위다. 최창식 하나은행 회장은 “지금까지는 나무를 심고 키우는 과정”이었다며 “E-banking, 스캐닝시스템 등 선진 금융서비스를 도입하는 한편, 고객별 맞춤 상품패키지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내년도부터 본격적인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했다. 1984년부터 미국에서 영업을 해온 우리은행은 이후, 중국(2007년), 러시아(2008년)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영역을 확대했다. 우리금융그룹은 2015년까지 해외자산 및 수익비중을 10%로 높이고(현재 5%), 글로벌네트워크 500개 및 해외자산규모 500억 달성을 목표로 하는 ‘Global 10500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 추진의 효율화를 위해 성장성, 수익성, 전략적 중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Global Target 16대 시장’ 선정해, 각 시장마다 차별화된 진출모델을 적용하는 방침을 선보이고 있다. KB금융그룹은 2012년 개설한 중국현지법인 및 북경지점의 활성화와 함께, 동남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나갈 방침이다. 아시아 지역 현지인 시장 및 한국계 고객 기반을 고려한 결정이다. 또한 선진 금융시장에도 선별적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성공요인은 강력한 현지화

해외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국내 금융사들이 꼽는 요인은 단연 ‘현지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짧은 업력에도 불구, 인도네시아에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현지화의 답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창식 하나은행장은 “현지화는 현지인들이 하는 것”이라며 “4년간의 은행장 생활을 통해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조직을 어떻게 관리 및 육성해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그룹 글로벌 네트워크의 강력한 현지화를 강조한다. 이 회장은 “기존 한국계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현지화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고 했다. 중국진출 핵심키워드를 ‘현지화’로 잡은 KB금융그룹도 ‘현지기업 및 현지인을 대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금융활동’을 목표로 철저한 현지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진출한 지역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은 현지화의 가교역할을 한다. 아시아를 핵심시장으로 삼고 있는 KB금융그룹은 캄보디아, 태국 등 아시아 7개국에서 현지 자원봉사활동을 수행하며, 금융이 가진 차가운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KB국민은행과 YMCA가 함께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가 그 주인공. 이들은 아시아 각 지역 현장에 투입돼 취약계층 아동 언어교육, 장애 아동 직업훈련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하나은행-외환은행도 해외 법인 인근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글로벌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법인 임직원은 작년 중국 랑팡시의 빈곤지역을 찾아 생필품 지원 및 면화 따기 지원활동을 벌였고, 인도네시아에서도 자카르타 극빈층 밀집 지역인 칼리조도를 방문해 도시락을 나눠주는 활동을 벌였다. 현지법인을 중심으로 1사 1촌 일손돕기 등도 진행했다.

 

글로벌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

글로벌 전문 인력의 양성은 해외시장 개척의 처음이자 마지막 퍼즐이다. 인적자원 경쟁 우위와 함께 자연스러운 현지화를 꾀할 수 있다. 우리은행그룹의 경우, 2007년부터 매년 ‘국내 외국인 유학생 대상 인턴십’을 실시하고 있다. 작년까지 7차에 걸쳐 총 68명의 외국인 유학생 인턴을 선발했으며, 이 중 국내외에서 6명을 채용, 향후 글로벌 경영 인적자원으로 육성하고 있다. 황록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은 “우수인력 확보가 글로벌사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현지 사정에 밝을 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문화에도 익숙한 ‘지한파’들이어서 해외진출 후 현지영업에 핵심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KB금융그룹은 역시 현지 문화 이해력 및 네트워크가 탁월한 지역 우수 인재들을 적극 활용, 해외 비즈니스 역량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KB금융그룹 전략기획, 재무관리, 부동산금융, Private Banking 등의 영역에서 지난 해 100명의 해외 우수인재를 채용한 바 있다. 이들은 향후 KB의 미래 경쟁력 확대를 위한 글로벌 사업 추진의 핵심 동력으로 활약할 계획이다.

 

<표> 해외 진출 금융그룹 현황 및 성공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