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1》
- 김하인 지음
- 생각의나무 펴냄
- 2000년

꽃들 중에서 신이 제일 나중에 만든 것이 국화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국화가 식물 중에 가장 진화된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도연명의 <국화예찬>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같이 동서고금에 국화처럼 상찬되는 꽃도 흔치 않습니다.

청순, 정조, 평화, 절개, 고결을 말할 때 우리는 국화를 떠올립니다. 국화는 어느 상황에서든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하고 있지요.

추위에도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까닭에 그 모습이 지조 굳은 충신이나 절개 높은 여인에게 곧잘 비유되곤 합니다. 그래서 4군자 중 하나로 칭송되는가 봅니다.

국화는 장수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신선인 팽조(彭祖)는 국화로 가득한 연못가에 살며 매일 새벽 국화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 마신 까닭에 장수했다고 합니다.
또 중국 남양 여현, 감곡이라는 강의 상류는 온통 국화가 만발해 있는데, 매일 새벽 국화에서 떨어지는 이슬 방울이 강물을 타고 하류로 흐르는 까닭에, 그 물을 마시고 사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장수했다고 합니다.

국화에 얽힌 이야기 하나 더. 옛날 중국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신선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이 신선이 미래를 예견하여, 제자 항경(恒景)에게 말합니다.

“이번 9월9일에 이 집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 어서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이 집을 떠났다가 다시 오거라. 그리고 여기 국화주가 있으니 가지고 가거라. 쓸모가 있으리라.”

“스승님은 어찌 하시려구요.”
“이제 나는 천상으로 돌아가련다. 훗날 다시 만나자꾸나.”

스승의 말에 따라, 항경은 식솔들을 데리고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그들은 어느덧 높은 산에 이르게 되고, 항경은 멀리 집과 마을을 바라보며 국화주를 마셨습니다.
그날을 그렇게 산에서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보니 닭, 개, 소 등 집안 가축이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비장방의 예언 덕분에 식솔들은 무사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국화주를 마시며 재앙을 떨쳐버리는 9월9일 중양절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국화는 봄에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고, 여름엔 잎을 기름에 튀겨 먹습니다. 가을엔 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고, 겨울엔 흰 꽃으로 술을 빚어 불로장생주로 담가 먹습니다.

꽃을 즐기고, 먹는 것을 즐기고, 향기를 즐기고, 다양하게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국화입니다. 어느 도도한 여자처럼 차가운 모습이지만, 늦가을 저녁 마음속까지 젖어드는 꽃내음으로 사람의 심정을 흔들 때 비로소 국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백색의 국화는 성실, 진실, 감사의 의미가 있고, 황색의 국화는 실망, 짝사랑의 의미가 있으며, 적색의 국화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을,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여, 그리운 이에게 적색의 국화를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김하인이 《국화꽃 향기 1》에서 전합니다.

나는 당신을 은혜하고 고와하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쉼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내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향기로 이미 눈 멀고 귀 멀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상에 살아있는 유일한 한 사람의 여자가 된지 이미 8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무심함이 내게는 참기 힘든 가혹함이었지만 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10년을 채우고 20년을 채울 수 있습니다.

-《국화꽃 향기 1》 123~124쪽

이현 지식·정보 디자이너, 오딕&어소시에이츠 대표 (rheey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