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해멀(Gary Hamel)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톰 피터스 등과 더불어
포스트 드러커 시대의 ‘왕좌’를 다투는 ‘경영구루’이다.
지난 1990년대 복합기업들의 강점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시너지 경영의 득세를 예측한 것도 바로 그이다.
게리 해멀이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시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신한금융그룹 전략 포럼행사에 강연자로 참석해 ‘혁신’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게리 해멀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가
강조해온 ‘메시지’를 심층 분석했다. <편집자 주>

“전략은 전투를 조직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적 투쟁이다.” 프로이센이 배출한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남긴 전략의 정의다.

유럽대륙을 뒤흔든 나폴레옹 전쟁에 종군해 수많은 전투현장에서 얻은 통찰력을 정리한 이 전략가는 경영자들에게도 늘 영감의 원천이다.

나폴레옹에게 ‘포로’로 잡혀 그의 군대 지휘 능력을 지켜본 이 프로이센군의 장교는 총사령관의 폭넓은 시야, 대담한 발상을 전승의 요건으로 꼽는다.

게리 해멀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클라우제비츠’를 자주 인용하는 그의 팬이다. 그가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의 이름 또한 ‘군사용어’에서 비롯된 ‘스트레터조스(Strategos)이다.

그의 말마따나, 총성 없는 전투에 비견되는 글로벌기업들의 시장 쟁탈전은 생사가 엇갈리는 치열한 ‘전장’을 떠올리게 한다.

백병전은 기본이다. 때로는 지축을 뒤흔드는 호쾌한 전차전도 불사한다.
강자들은 압도적인 물량공세로 경쟁의 구도를 ‘참호전’에 묶어두며 후발주자들의 추격의지를 약화시킨다.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한 것도 초반 승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프랑스, 영국의 참호전에 휘말렸기 때문이라는 게 사가들의 분석이다.

후발주자들은 강자의 전략을 빠른 속도로 수용하며 시장을 잠식해 들어간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에서 기동전(Blitzkrig)으로 ‘참호전’을 돌파하며 마지노선을 구축한 프랑스의 ‘허’를 찌른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이러한 ‘전략의 컨버전스’가 시대정신이다. 일본의 오토바이 업체들은 할리 데이비슨 특유의 엔진음까지 그대로 재연하며 이 컬트 브랜드의 비교우위를 허물 태세이다.

미 경쟁사들도 ‘맞춤형 제품’으로 할리 데이비슨의 강력한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국내 금융산업도 경쟁사의 ‘강점’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며 시장 선도 제품의 비교우위를 지워버린다.

세계적인 전략 컨설팅그룹인 맥킨지(Mckinsey) 출신의 최동준 SC제일은행 상무는 “돈 같은 ‘코모더티(상품, Commodity)’도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자동차, 카드 등 여러분야를 거친 컨설턴트 출신 금융인의 고충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리 해멀 교수는 ‘참호전’에서 벗어날 무기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시스코(Cisco), 버진(Virgin), 유피에스(UPS), 찰스 스왑(Charles Schwab) 등의 성공 방정식에 주목해 온 그가 ‘혁신(Innovation)’을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독일이나 일본이 패배한 ‘이면’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참호전’을 돌파할 전략의 부재가 있었다. 게리 해멀 교수의 이번 강연 주제도 ‘일상에서 실천하는 창의의 노하우’이다.”

2차 대전 초반 아시아를 휩쓸었던 일본군은 ‘항공모함’과 ‘제로 전투기’를 창의적으로 조합했다. 항공모함으로 미국의 전진기지를 타격한 진주만 공습은 전쟁 초반 판세를 일본군으로 기울게 한 묘수였다.

프랑스, 러시아와의 양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독일의 슐리펜 계획도 대담한 발상의 산물이었다.

전쟁 초반 승승장구하던 독일이나 일본이 결국 패배한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참호전’을 돌파할 묘수가 더이상 없었다.

국내 금융권의 경쟁사들은 지난해 앞다퉈 ‘복합상품’을 출시하며, 시너지 대전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또 다른 ‘참호전’의 시작이다.

게리 해멀 교수의 이번 강연 주제는 ‘일상에서 실천하는 창의의 노하우이다.

사우스웨스트, 그레이하운드와 경쟁하다
그가 즐겨 인용하는 사례가 바로 ‘사우스 웨스트’이다. 이 저가 항공사는 경쟁사를 버스회사로 설정했다.

바로 미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회사인 ‘그레이 하운드’가 타깃이었다. 버스 회사와 경쟁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는 없었다. 기내식이나 고정 좌석을 없애 비용을 대폭 낮춰야했다.

‘턴어라운드(Turn-around) 시간’을 줄인 것도 주효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해 재이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40분이내’로 대폭 절감했다.

용역 직원들, 승무원들의 탄탄한 팀워크가 시간 단축의 비결이었다. 음식점으로 치자면 회전율을 더 높인 셈이다.

게리 해멀 교수는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미 항공사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경쟁사로 이직한다면 항공산업이 과연 달라질 수 있겠냐는 것이 골자다.

그는 부정적이다. 항공업계가 닦고 조이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가재도, 구럭도 다 놓쳤다’는 비판이다. ‘경쟁 상대의 재규정’, 일사불란한 ‘실행의 노하우’는 사우스웨스트항공사 성공의 양날개였다.

게리 해멀 교수가 강조하는 두 번째 성공 키워드는 혁신의 절차화이다. ‘3M’이나, ‘애플’, GE 등이 이 분야의 ‘달인’들이다.

이 기업들의 비교우위는 시장에서 일정 수익 이상을 낼 제품을 꾸준히 만드는 ‘프로세스(절차)’이다. 이러한 역량을 뒷받침하는 요소의 하나가 바로 기업의 규모이다.

그는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하루아침에 ‘조직원’의 사고를 바꾸거나, 이러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노 교수의 냉정한 현실 진단이다.

그가 학습곡선(Learning curve)를 중시하는 배경이다. 은행, 보험, 증권, 자동차를 비롯한 개별 분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업들의 ‘학습곡선’은 혁신의 출발점이다. 계열사들의 시너지는 혁신의 또 다른 동력이다.

GE가 헬스케어 부문 계열사의 환자 진단 기술을 항공 분야에 이식해 성과를 본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게리 해멀 교수는 기업의 규모는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그는 지난 1990년대 프라할라드 미시간대 교수와 공동저술한 《Competing for the Future》에서 GE를 비롯한 복합기업들의 시너지 경영을 화제에 올리며 ‘따로 또 같이 경영’의 득세를 예고한 바 있다.

게리 해멀이 제시하는 또 다른 조언이 바로 ‘혁신 포트폴리오’의 구축이다.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 사우스웨스트의 저가항공처럼 ‘비즈니스 콘셉트’를 뒤흔드는 혁신의 비율을 전사적인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신한금융지주가 게리 해멀급 경영석학을 초빙해 전략 회의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한금융그룹 계열사 본부장급 이상이 참가하는 경영전략 회의로, 매년 시너지 전략 회의라는 이름으로 열려왔으나 올해부터 경영 전략 회의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회의에서 논의되는 주제를 전략 등 경영 전반으로 확대해서 다루려는 포석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날 포럼에는 라응찬 회장을 비롯한 그룹 임원과 주요 부서장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