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삼성그룹 150억원, 현대차그룹 100억원, SK그룹 80억원…. 전 국민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 세월호 참사 이후 재계 주요 기업들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쾌척한 기부금 액수다. 해당 기업들에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정작 이를 보는 국민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기업들이 곳간을 여는 것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까닭이다.

물론 최대 목적을 이윤 창출로 꼽는 기업들로선 이익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기부금 형태의 사회공헌이 이제 더는 큰 변별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일까. 일부 기업들은 몇 년 전부터 자신들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진행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맞춤형 사회공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물만 집중해서 판다”

유한킴벌리는 우리나라의 유한양행과 미국의 킴벌리클라크가 3대7의 투자비율로 합작해 1970년 세운 회사다. 국내 최초의 미용티슈인 크리넥스를 비롯해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 최초의 팬티형 기저귀 하기스 등을 선보이며 여성, 육아용품 시장의 한 획을 그었다.

여성, 육아용품 전문기업이니만큼 유한킴벌리의 사회공헌활동 중에는 유독 ‘아름다운 가정’과 관계된 것이 많다. 우선 마을공동체와 함께 ‘돌봄모델’을 꾸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마을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소통하고 어울리며 유아를 돌볼 수 있는 모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신혼부부들에게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신혼부부학교’,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생명 육아를 위한 교육을 진행하는 ‘생명육아교실’도 유한킴벌리만의 특색있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코웨이는 ‘물’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기업이다. 이 때문일까. 코웨이가 진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은 ‘물’과 관련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캄보디아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우물파기’다. 코웨이는 수질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의 식수환경 개선을 위해 펌프식 우물을 2006년부터 매년 100공씩 지원하고 있다. ‘1000개의 우물, 1000개의 희망’이라는 슬로건처럼 2015년까지 총 1000공의 우물을 팔 계획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웨이는 정수기업계 1위라는 이름에 걸맞게 깨끗한 물이 필요한 곳에 정수기를 나누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뼘 사랑’은 아토피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등 생활환경의 원인 작용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환경성질환 아동을 돕는 활동이다. 실내공기 오염물질, 식수문제 등 환경성질환의 원인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깨끗한 물과 공기를 제공하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을 지원한다. 그 밖에 환경부와 함께 상수도 미보급 지역 중 자연방사성 물질이 많은 지역에 정수기를 보급하는 것도 코웨이만의 맞춤형 사회공헌활동이다.

결혼 이민자 모국 방문 지원. 사진=NH농협 제공

NH농협에서는 당연하게도 농촌복지증진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이 눈에 많이 띈다. 기업, 단체 등이 지닌 자원과 역량을 농촌지역의 취약계층에 연결해주고,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농업인 소비자들을 위한 보호사업을 하는 것 등이다.

NH농협은 일반인들이 쉽사리 생각하기 어려운 사회공헌활동도 진행 중이다. 바로 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이다. 노총각 농업인들이 주로 국제결혼으로 짝을 찾는 것을 염두한 활동으로 해석된다. ‘농촌여성 결혼이민자 모국방문 지원’을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장기간 고향을 찾지 못했던 결혼이민자들에게 항공권, 체재비 등을 지원하고 ‘다문화 여성 대학’을 만들어 한글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 밖에도 NH농협은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지닌 결혼이민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자 대한법률구조공단과 공동으로 무료 개명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 정답이 있다. LG전자와 엔씨소프트는 특화된 기술을 총동원, 장애인 돕기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LG유플러스는 LG상남도서관과 함께 ‘책 읽어주는 휴대폰’을 개발,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해당 휴대폰은 시각장애인들의 높은 선호도를 반영해 지상파 DMB와 MP3 재생 등 다양한 음성 서비스를 탑재했고 지하철 노선도와 카메라, 서비스센터 안내 등 다양한 기능을 음성으로 안내해준다. LG상남도서관이 운영하는 ‘책 읽어주는 도서관’에 접속해 음성 도서를 내려받아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적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15만 명의 어린이를 위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한 기능성 게임 ‘인니지’와 ‘AAC’로 지적장애 아동의 인지치료와 일상생활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과 공동으로 만든 이 게임은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기능성게임 전문 게임쇼인 ‘굿게임쇼’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자신들의 관심영역에 특화된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는 곳들도 눈에 띈다.

화장품업계 1, 2위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외모’에 중점을 두고 사회공헌을 진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을 7년째 해오고 있다. 암 치료 과정에서 피부 변화와 탈모 등 갑작스러운 외모 변화로 고통받는 여성 암 환우에게 메이크업, 피부관리, 헤어 연출법 등 다양한 뷰티 노하우를 선물함으로써 외모뿐 아니라 내면의 자신감까지 찾아준다는 계획이다. 여성 암 환우들이 있는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항암,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LG생활건강은 브랜드 오휘를 통해 ‘아름다운 얼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서울대학교병원과 협력, 구순구개열 환아 등 선천성 안면기형을 지닌 어린이들의 성형수술을 후원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2007년 이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LG생활건강은 외모 콤플렉스로 집 밖에 나가길 꺼리는 어린이들을 고려해 ‘동그라미 캠프’라는 힐링캠프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때문에 벌어진 일은 꼭 책임진다”

기업활동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올 때가 있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개발했는데 그것에 중독되는 사람이 나오는 식이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른바 ‘대가성 사회공헌’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SDI는 국민의 시력 개선 활동에 열심이다. 자사 디스플레이에 집중하느라 시력이 나빠진 사람들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움직이는 안과병원. 사진=삼성SDI 제공

LG디스플레이는 2008년부터 ‘실명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실명예방재단과 함께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눈건강 교실’을 운영하고 두메산골에 있는 노인들에게는 ‘무료 안구 검진’을 제공한다. LG디스플레이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4월 ‘숨은 유공자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삼성SDI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선 실로암 안과병원과 함께 ‘움직이는 실로암 안과병원’을 운영, 전국을 누비며 진료와 개안수술을 무료로 진행하는 것이 눈에 띈다. 또한 삼성SDI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무료 안경지원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SDI가 ‘눈’에 집중하고 있다면 KT는 ‘귀’ 건강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에 나섰다. KT는 연세의료원과의 협력해 2003년부터 ‘KT소리찾기’를 진행,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인공와우, 뇌간이식 수술, 재활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의료수준이 낙후된 개발도상국의 청각장애 아동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청각장애 아동들을 한국으로 초청, 인공와우 수술을 지원하는 한편 현지에 직접 방문해 50명의 아이들에게 디지털보청기를 지원한 바 있다.

교통사고 사망률 1위 국가의 위상일까. 이와 관련한 기업들의 사회공헌도 부지기수다. 국내 대표 완성차 메이커인 현대자동차는 ‘세이프 무브’를 통해 교통안전문화 정착에 힘을 쏟고 있다. 어린이대공원 안에 ‘키즈오토파크’를 운영, 실제에 가까운 교통교육환경에서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있고 ‘해피웨이 드라이브’ 캠페인을 통해 통학버스 승∙하차 사고 예방을 위한 보호기를 보급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도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빗길안전을 위해 지금까지 50만 개의 투명우산을 전달한 상태다.

 

박스기사

사회공헌활동, 중소∙중견기업이라고 예외 없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내 형편이 좋아야 남을 챙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언론에서 접하는 사회공헌활동의 대부분이 대기업의 전유물로 보이는 것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은 기업들이라고 사회공헌활동에 무관심하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상당수의 중소∙중견기업이 각자의 역량에 맞게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말 공동으로 발간한 <2013 중소∙중견기업 사회공헌 백서>(이하 백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잘 담겨 있다.

백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209개사 중 130개(62.2%)의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 곳도 111개나 됐고 그중 19개사에는 아예 사회공헌만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다.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 중 63개사(48.5% )는 임직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도 있었다. 임직원 자원봉사단은 평균 185.5명으로 구성돼 있었고 연간 봉사활동 횟수도 33.6회에 달했다.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지 않거나 추진하더라도 어렵게 진행하는 이유로는 ‘인력과 예산의 부족’을 꼽았다. 최소한의 예산이나 인력이 없이는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원인이 분명한 이상 중소∙중견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 활성화 방안도 간단하다.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세제혜택, 자금지원 등 물질적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작은 기업들이 이웃을 향해 손을 내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