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목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이유를 이들을 보는 순간 실감한다. 이 부부가 사는 법은 남다르다. 40대 초반. 직장 생활과 먹고 사는 일에 대한 현실적 고민에서 오는 동년배 부부의 스트레스가 이들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남들보다 여유롭게 지내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생.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을 하고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 전체에 부부의 삶과 취향이 녹아 있다.

부부가 즐겨 듣는 노래는 김소월의 시 ‘개여울’을 따온 가요. 떠나간 이에 대한 한없는 기다림을 담은 구슬픈 음색이 공방을 메워도, 분위기가 어둡거나 슬프지 않다. 그저 잔잔할 뿐. 좋아하는 노래를 질리도록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많은 양의 진한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순간, 노래에 마음을 눕힌다. 풍경에 심신을 달랜다. 나무 내음 가득한 이들의 공방은 한 편의 동화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스튜디오가 된 리뉴얼한 공방

‘In...i furniture studio(이하 In..i)’는 ‘I in I’의 줄임이다. ‘내 안의 나’를 뜻한다. 이름에 담긴 의미를 듣는 순간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생 후반에 진정한 나를 찾고자 애쓰는가.

그런데 이 젊은 부부는 일찌감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본인들의 꿈을 찾았다. 그리고 5년 전,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한 곳에 터를 잡았다.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하기 위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꾸린 이들은 박상순(41)-이은주(43) 부부다.

부부의 가구 제작소는 아늑하고 평안하다. 넓은 공터를 팔 벌려 안은 스튜디오 목조 건물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스튜디오 앞 잔디밭에는 무성한 풀이 제멋대로 돋아 있고, 그 위를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 다섯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 다닌다. 부부가 나무를 두드려 지어낸 커다란 개집은 이름조차 무색케 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눈에 띄는 공간은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놓인 주방 앞 바(BAR)다. 높고 넓은 테이블 위로 은은한 조명이 빛나 두 사람에서 네 사람까지 마주 앉아 차 한 잔, 혹은 술 한 잔 하기에 제격이다. 집 안에 이 같은 바가 있으면 부부간의 흉금 없는 대화가 자주 이루어질 터다.

부부는 두 자녀를 비롯해 가족이 사는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 자택보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공간 설계를 부부의 생활 양상에 맞춰 최적화해놓은 까닭에서다. 생활하는 공간, 일하는 공간이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부부의 지론이다.

부부는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화려한 외형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구 제작 전에 공간을 먼저 생각한다는 게 박상순씨의 설명이다.
남편인 박상순씨는 주로 가구 제작을 한다. 아내 이은주씨는 디자인을 맡았다. 남편과 이곳에서 거의 매일을 보내는 까닭에 가구 제작에도 참여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많은 돈을 벌진못하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을 만들어 줬고
부족한 학습도 직접 지도해줄 수 있어 더 행복하죠.

친환경 공간미학에 프리미엄

그렇다면 ‘스튜디오 퍼니처’가 뭐길래 고객들이 이곳까지 와서 주문 제작된 가구를 사갈까. 공장에서 생산하는 가구와 달리 이들은 수작업으로 가구를 만들어낸다. 획일적으로 만드는 가구가 아니라 고객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반영하는 ‘맞춤형 가구’다.

가구는 일반 브랜드 가구보다 단가가 비싼 편이다. 부부가 공들여 한 가구당 한 달에 걸쳐 제작하는 맞춤형 가구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당연하다. 주문하러 오는 고객들도 납품 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한 달이 되든 두 달이 되든 기다려 주문한 가구를 제공받는다. 기한이 언제가 되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성을 쏟은 ‘나만의 가구’를 갖고 싶은 마음에서다.

고객층은 초기에 가족이 대다수였다. 신혼부부는 전체 고객의 10% 정도다. 지금은 홈페이지나 전람회를 통해 ‘In..i’의 가구가 알려지자 기업 고객이 많아졌다. 기업 CEO실에 배치할 가구를 주문하는 회사도 제법 많다.

부부가 샘플용으로 만들어 놓은 테이블 주변에 앉아 커피를 대접받으니 분위기 좋은 카페가 따로 없다. 받침 없이 가로로 긴 나무 의자나, 나무 결이 살아 있는 테이블은 만져보면 촉감이 부드럽다.

주로 주방이나 거실에서 식탁으로 쓰이는 이 테이블은 네 사람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크기다. 옆으로 넓고 세로 폭은 좁은 편. 마주 앉은 사람 사이의 거리를 고려한 디자인이다.

부부가 정한 가구 콘셉트 문구가 ‘그와 나 사이를 디자인했다’라니, 그 의미가 새삼 와 닿는다. 마주 앉은 상대방의 얼굴이 가까워 한결 친근하게 여겨진다. 네모 반듯한 테이블일 뿐인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즘 건축 자재와 가구에 친환경 인증이니 뭐니 수식어가 많은데, ‘In..i’에서 사용하는 가구는 ‘친환경’임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천연 소재이기 때문이다. 인체에 유해한 요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목재는 북미산 하드우드를 수입해 쓴다. 국내 목재로는 느티나무, 산벚나무를 사용한다. 예외로 서랍장에는 소프트우드를 사용한다. 피톤치드 성분을 발산하는 것으로도 알려진 편백나무로 만들어, 서랍을 열었을 때 특유의 향이 짙다.

나무에 바르는 오일도 천연 오일을 사용한다. 천연 오일은 건조 기간만 4일. 이 또한 자연 건조다.

이렇게 완벽을 기한 가구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한 달. 부부가 한 달에 만드는 가구의 수는 전부 2세트다. 2세트면 나머지 부부의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작업량이다.

앞으로 3개월 분량은 선주문이 들어온 상태. 주문이 들어오면 부부는 고객을 만나 원하는 가구 콘셉트에 관해 상담을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사전 공간 탐색이다.

가구가 들어설 자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 최적화된 가구가 나올 수 없는 까닭에서다. 공간의 장점을 살리고 사용하는 이의 동선을 최대한 줄이는 가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사전 조사에 임한다.

“한 공간에서 가장 빛나는 가구이기보다 그 공간에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박씨의 바람은 남다르다. 따라서 서울, 수도권 등 가까운 곳으로는 부부가 직접 방문을 해 공간을 치밀히 점검한다.

박씨 부부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가구 콘셉트 문구는 ‘단아, 그 절제된 편안함을 디자인했다’다. ‘In...i’에서 만드는 가구들은 대체로 선이 단조롭다. 곡선의 사용을 최대한 줄였으며, 틀에 맞는 반듯한 선을 구현했다. 디자인은 화려하지 않다. 최대한 절제된 미를 살렸다.

박씨는 과도한 장식이나 꾸밈이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금방 질리지 않는 가구를 추구하는 연유에서다.

‘In...i’에서 제작되는 가구의 수명은 100년 이상. 박씨는 중간에 관리만 잘 해 주면 100년은 물론 300년까지도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 견디는 가구를 만드는 것은 부부의 목표다. 이씨 또한 다음 세대까지 변하지 않고 물려줄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남편의 손재주,나의 디자인 재능이
수제가구란 공통의관심사를 한결 쉽게
실천하게 했고남들보다 원하는 바를 더 빨리 찾게 했죠.

동호회도 운영 바비큐 파티도

박씨 부부는 젊은 시절 각자 다녔던 직장에서 높은 수입을 기록했다. 박씨는 과학기자재를 판매하는 회사를 직접 운영했고, 이씨는 건축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다녔다. 이씨가 다니던 회사에서 타 디자이너들과 공동작업으로 설계한 건물 중 국내의 내로라하는 유명한 건물도 꽤 있다.

그러나 이씨는 평소 가구 디자인이 꿈이었다. 박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무를 소재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취미로 여겼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박씨는 손재주가 많아 무엇이든 잘 만들어낸다는 것.

두 사람의 꿈과 재능이 만나 가구 제작소를 차리자는 결심이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하여 부부는 각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남시에 필지와 건물을 임대해 가구 제작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과정을 쉽게 지나왔기에 남들보다 원하는 바를 빨리 찾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동작업소를 차린 이후로 부부가 하루 평균 같이 보내는 시간은 24시간 전부다. 이제는 둘 중 한 사람이 외출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하는 이 씨의 말이 부부애를 실감케 한다.

부부는 올해로 결혼 16년차를 맞는다.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해 자녀가 둘이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스튜디오에 와서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박씨는 “과거처럼 많은 돈을 벌지는 못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하고도 삶의 질은 더 높아졌다. “이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빠로서 직접 아이들에게 다 해 줄 수 있다”고 덧붙이는 박씨.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고, 부족한 학습도 직접 지도해 줄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특히 고교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첫째 아이는 주말에 스튜디오에 놀러오면 공터에서 마음껏 공을 찬다. 박씨는 과거처럼 많은 교육비를 들이지 않아도 현재의 생활이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더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주말이면 스튜디오 앞마당에 바비큐 요리를 차려놓고 가족과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근교로 산책을 나가거나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부부가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부부만 작업을 하다보면 외부인을 접촉할 기회가 없어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부는 고개를 젓는다. 공방에서는 현재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은 10명. 가구 제작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 구성됐다.

이들이 시간 날 때마다 개별적으로 공방에 찾아와 작업실에서 각자 작업을 한다. 가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도 부부의 혹독한(?) 교육을 거치면 솜씨가 는다. 물론 가구 제작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동호회 회원의 필수 조건이다.

30~50대 나이의 동호회 회원들은 공방에 찾아와 가구를 만드는 일 외에도 부부와 함께 식사나 티타임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낸다. 2~3년 지난 회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정이 많은 부부는 회원들과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왔다. 회원들이 바비큐 파티에 동참하기도 한다.

부부가 공동작업을 하면 어려운 점도 많다. 작업하는 부분에 있어서 빈틈을 용납하기 어려운 것. 일반 직원을 고용했다면 2~3번 만에 마무리 할 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10번이고 재작업한다.

처음 이미지 작업을 할 때는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재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씨는 “같이 작업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부부의 생각도 닮아간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함께 만족하는 디자인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원하는 바를 가장 먼저 알아주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 주며, 힘들 때는 서로 격려하는 동료로 서로에게 최상의 파트너인 부부. 가구 제작은 막노동이라 장시간 작업 후에는 온 몸의 근육이 아프다는 그들에게는 ‘노동주’가 백미의 즐거움이다.

그들의 노동주란 고된 작업을 끝내고 부부가 함께 바에 앉아 마시는 막걸리 혹은 와인 몇 잔을 말한다.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묘약이 또 있을까.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