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예쁜 손글씨로 아날로그 틈새시장 개척

이순화(45) 씨는 직장을 그만둔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자신의 손글씨 솜씨를 살려 창업에 성공한 경우다. 평소 미술을 좋아하고 손재주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던 그녀는 제품이나 이벤트 성격에 맞게 글씨 도안을 만들고 채색하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POP아트, 톨 페인팅 등 생활공예 전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손글씨가 희귀해진 디지털 시대다. 연필을 잡기 보다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데 더 익숙하다. 뇌가 손가락 끝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일까. 자판을 두드리지 않으면 생각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많다.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로 쉽게 문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현실은 10여 년 전만 해도 무성의하게 여겨졌던 손글씨를 독특하고 정성스러운 표현 수단으로 보이게끔 한다.

여기, 글자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예쁜 손글씨 하나로 제2 인생을 시작한 여인이 있다. 이순화(45) 씨가 그 주인공.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주부로 전업, 그리고 서른다섯 나이에 다시 피오피(POP) 아티스트로 전업한 그녀는 어엿한 ‘1인 기업가’다. 그런데 POP아티스트가 뭐냐고? 생소하기도 흥미롭기도 한 얘기를 듣기 위해 그녀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똑.똑.똑.

35살 전업주부, 손글씨 매력에 빠지다

결혼 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2년 터울로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림하며 가정주부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집에서 TV를 보던 이 씨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이런 전문분야가 있었어?’ 한 정보 프로그램에서 당시에는 너무나도 생소했던 ‘POP 아트’를 접한 순간, 마치 운명처럼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구매시점광고(Point of Purchase Revertising)’를 뜻하는 말로, 일명 상품 판매대에서 눈길을 잡아끌게 알록달록한 글씨를 쓰는 게 POP다. 단순한 글씨 구성보다는 사진과 그림, 다양한 글씨체를 활용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물은 천편일률적이지만 손글씨는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감성과 개성이 그대로 묻어나게 되죠. 색을 입히고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넣기 때문에 광고뿐 아니라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미술을 워낙 좋아하고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지 POP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2003년 그녀는 본격적인 POP아트 배우기에 돌입했다. POP전문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12주 동안 저녁반 수업을 들었다. 흑판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려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초크아트(Chalk Art)’, 스티로폼을 주재료로 행사용 글씨를 만드는 ‘폼아트(Form Art)’ 등 POP아트와 관련된 종목은 두루 섭렵했다. 배우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어 바로 창업에 나섰다. “붓, 물감, 종이만 있으면 되니까 저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겠더라고요. 전화나 온라인 주문만 가능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서 부담이 적었습니다.”

글씨쓰기 창업 숱한 시행착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다 잘 될 것 같았지만 창업이 어디 그리 쉬운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글씨 하나로 무슨 돈을 벌겠느냐는 주변의 우려가 높았다. 거리에서 홍보 전단지와 명함을 돌리고 인터넷 카페를 운영해도 한 달 1건 주문이 전부였던 적도 부지기수. 일거리가 아예 없었던 때도 있었다.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 탓에 POP 한 장을 만드는 데 밤을 지새우기도 여러 날이었다. 지금은 한 두 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작업에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수입보다 재료비가 더 많이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 들어온 주문이 식당 메뉴판 디자인이었어요. 마수걸이 고객이었기에 정말 공을 들여 만들었어요. 그런데 고객이 정작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얼마나 당황스럽고 난감했었는지….” 글씨를 쓰다가 망쳐 종이도 엄청나게 버렸다. 쓰고 또 쓰고 그렸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연습했다. 홍보물 색상과 모양, 숫자(가격) 노출 등 중요 요소들의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그녀가 POP아트 창업을 결심했을 때 남편의 걱정이 컸단다. 당시 잘 알려진 분야가 아니라서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주부에게 재취업의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좋아하는 일에 전심전력으로 매달리는 제 모습을 보고 남편이 마음을 돌리던걸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남편의 전문적인 조언과 응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만족스럽다는 고객들의 반응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매장 홍보물이나 백일·돌잔치용 안내판 등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대형 편의점의 POP디자인을 전담하는가 하면, 대형서점에서 그녀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점점 일거리가 늘어났고, 수입 역시 점점 많아지게 됐다. 그렇게 2년 동안 무점포로 집에서 POP 주문제작을 해오던 이 씨는 2005년, 서울 인현동 집 근처에 10평 남짓한 작은 공방을 열었다.

예쁜 손글씨뿐 아니라 초크아트, 원목 위에 페인팅하는 톨 페인팅(Tole Painting) 등 POP아트를 폭넓게 활용한 각종 생활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공방 보증금 1000만원, 대형 코팅기와 책상 및 집기 구입비를 포함해 투입된 자금은 1200만원 정도. 숍 마련에 큰 비용이 들진 않았지만 오히려 POP아트와 관련된 다양한 기법들을 배우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고.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essays cheap감성과 개성 담아 작품 만든다는 자부심 커

그녀가 붓을 들었다. 물감을 묻히더니 기초공사도 없이 그야말로 일필휘지(一筆揮之)다. 여인네의 손끝에서 거침없이 펼쳐지는 ‘선의 미학’에 기자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고객이 POP 주문을 하면 디자인 방향만 상의해요.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들은 전적으로 제게 맡기죠. 주 고객층은 음식점, 미용실, 커피전문점, 휴대전화 가게, 네일숍 등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매장이라면 모두 해당됩니다. 초등학교 등 전교·학급 회장 선거가 치러지는 봄·가을 시즌에 특히 POP 주문이 밀려들어 바빠요.” 가격대는 4절 크기의 종이 1장 기준으로 2만원.

톨 페인팅 작업과정도 보여줬다. 이 씨의 그림붓이 ‘쓱싹쓱싹’ 잎이 무성한 나무를 형상화한 반제품 위를 움직였다. “톨 페인팅은 가구나 나무 집기 등에 그림을 그려 넣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예의 한 기법이에요. 원목에 색을 입혀서 만든 티슈케이스나 휴지걸이 같은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을 만들 수 있어요. 요즘은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더 각광받는 분야이기도 해요.” 출장 작업을 나갈 때도 있다.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 낡은 침대나 탁자에 그림을 예쁘게 그려 리폼을 해주는 식이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이 씨는 그동안 운영하던 공방을 정리하고 2년 전,서울 신대방삼거리 인근에 자리한 ‘지따’라는 지인의 나무공방 내에 입점했다.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개인 숍을 운영할 때보다 이익이다. 단순히 색을 입혀 판매되던 나무공방의 가구는 그녀가 온 이후로 전혀 딴 제품으로 변신해 팔리고 있다. 그녀가 다채로운 그림을 그리고 캐릭터를 붙여 가구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기 때문.

발생하는 수익은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다. 이 씨와 나무공방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셈이다. 이 씨는 문화센터, 여성인력개발센터, 고등학교 교내 계발활동(CA) 등에서 학부모와 아이들 대상으로 외부수업을 진행하고 자체 수강생을 교육하며 지도자의 길도 걷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취미 혹은 전문적으로 POP아트와 톨 페인팅을 배우러 그녀를 찾아온다.

이를 위해 이 씨는 사단법인 한국예쁜글씨협회에서 관련 수업들을 듣고 POP자격증(민간)을 취득한 뒤, POP교육강사 인증까지 받았다.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월 평균 매출은 200만~300만원. 나무공방 입점에 따른 비용을 제외하면 재료비 외엔 인건비도 따로 들지 않으니 수익은 꽤 쏠쏠한 편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꼽았다. 무엇보다 집에 있는 엄마도 좋지만 일하는 엄마가 더 좋다는 아이들의 말에 자랑스럽고 뿌듯하단다. “POP아트는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인기 창업 아이템으로 떠올랐어요. 수작업이다 보니 단 하나뿐인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죠.”

올해로 창업 11년째. 그녀는 고정수익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안주하지 않고 POP를 응용해 생활공예 전 분야에 걸쳐 한 단계씩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은 가죽공예도 넘보고 있다. 가죽이란 멋스러운 재료로 또 다른 개성 있는 소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 열심히 배워볼 계획이다. 그녀는 마흔 언저리의 주부들에게 용기를 전했다. “계속 하다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단기간에 돈이 안 된다고 그만두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꿈은 이뤄질 거예요.”

이 씨는 “미래를 위해 지금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권했다. 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그 행복과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사는 것이 곧 성공한 인생이라는 그녀. 흥에 넘치고 행복에 겨운 그녀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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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성공노트

자본금

붓, 물감, 종이만 있으면 집에서도 POP아트 작업을 할 수 있음. 개인 공방 마련 시, 공방 보증금 1000만원에 대형 코팅기와 책상 및 집기 구입비 200만원 정도를 포함해 투입된 자금은 총 1200만원. 소자본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솜씨가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면 부업, 나아가 창업까지 가능함.

준비기간 및 과정

POP전문학원이나 문화센터 POP강좌, 개인 교습 등의 방법으로 POP아트를 배울 수 있음. 개인 교습의 경우 수강료는 약 50만원선으로 문화센터 강좌에 비해 비싼 편. 재료비 포함해 60만~65만원이면 배울 수 있음. 교육과정부터 창업하기까지는 300만원 정도가 필요함. POP아트 강사가 되려면 관련 자격증은 필수. (사)한국예쁜글씨협회에서 POP광고 및 POP예쁜글씨 자격 관련 수업을 듣고 자격증(민간)을 취득할 수 있음. 이후 POP교육강사 인증을 받으면 지도자가 될 수 있음.

성공노하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쓰고 그리기를 부단히 연습함. 홍보물 색상과 모양, 숫자(가격) 노출 등 중요 요소들의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며 차별화를 꾀함. 잡지를 보며 색감을 공부하고 다른 POP아트 작품들을 많이 보며 벤치마킹함. 초크아트, 폼아트, 톨 페인팅 등 다양한 관련 기법들을 배우는 데 투자하며 실력을 업그레이드함. 안주하지 않고 POP를 폭넓게 응용해 각종 생활공예품을 제작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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