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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보다 젊다’ 간병-합창단 오가며 나눔인생[50플러스] 서울대병원 호스피스 봉사 김서홍 씨(68세)

호스피스(hospice)는 라틴어 ‘손님(hospes)’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원래는 중세 유럽에서 성지 순례자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곳을 뜻했으나, 십자군전쟁 발발로 많은 부상자가 호스피스에 수용돼 치료를 받거나 죽음을 맞이하면서 부상자나 임종환자들의 안식처로 인식되면서 오늘날의 의미로 굳어졌다.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암병동에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서홍씨. [사진=박재성 기자]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암병동의 호스피스완화상담실. 2014년 새해, 우리 나이로 68세가 되는 김서홍 씨는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자다.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들에게 ‘사신(死神)의 공포’를 걷어주는 대신 ‘아름다운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힘이 되어주는 도우미로 인생 2막의 한 부분을 의미 있게 장식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김 씨는 크지 않은 토목회사에 취직했으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되기 시작한 기업 전산화 작업을 맡으면서 졸지에 ‘IT맨’으로 변신했다. IT 업무는 이후 오십 후반 일에서 사실상 은퇴할 때까지 천직으로 따라다녔다. 우연히 맡은 컴퓨터 업무가 30여 년간 ‘천직’ “나는 IT 1세대는 아니더라도 1.2세대에 해당한다”고 소개한 김 씨는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1981년 독립해 IT 관련 소프트웨어 및 소모품, 주변장치 등을 판매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다. 1970년대 초는 국내 컴퓨터 시장이 초기인지라 사업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나 2, 3년 뒤 금성사(LG전자 전신), 삼성 등 대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는 것을 목도하고는 중소 개인사업자들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며 어렵사리 컴퓨터 소모품 판매로 버티던 그는 나이가 5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업계에서 ‘중늙은이’ 취급을 당하는 데다 사업도 갈수록 IT인력 파견업으로 변질되자 과감히 일을 정리해버렸다. 2003년 사업을 접으면서 운영하던 회사 2~3개 중 5층 건물의 1개만 남기고 임대업으로 전환한 선견지명 덕분에 지금까지 든든한 노후자금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전까지 회사를 경영하느라 빌어다 쓴 대출금 등 빚 때문에 5년간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특A급 신용우량자’로 신용등급이 격상돼 있다. 암 사망 친척 동생 간병이 호스피스 봉사의 씨앗 역할 이 같은 사업의 우여곡절 와중에 김 씨에게 어느 날 병자를 간호하는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40대 중반에 장 계통의 암에 걸린 친척 동생을 수발하는 일을 예상치 않게 맡게 됐어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병원에 가서 간병했는데, 동생이 운명하기 직전까지 1년가량 했던 것 같아요. 동생도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갈수록 저를 찾더군요. ‘왜 나를 자꾸 찾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말벗도 되어주고, 화장실 가는 일, 몸을 씻기고 닦아주는 등 편하게 대해주니까 동생도 나를 편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리고 10년 전에는 친한 선배가 척추암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두는 슬픔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뒤 간병과 슬픔의 추억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김 씨에게 호스피스라는 인연은 우연찮게 찾아왔다. 서울 서대문 정동교회에 다니던 예순을 훌쩍 넘긴 2007년 어느 날 교회 게시판에 걸린 호스피스 교육생 모집 광고를 보고는 불현듯 지난날 암으로 죽은 친척 동생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 제대로 된 간병 봉사 활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이제 그럭저럭 먹고살면서 바쁘지 않으니 호스피스 일을 해보고 싶다”고 의견을 구했더니 흔쾌히 동의해주었다고 한다. 아내의 격려에 고무된 김 씨는 각당복지재단의 ‘무지개 호스피스 봉사단’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일주일에 10시간씩 총 4회 40시간 받았다. 이수 직후 교육 받은 것을 썩히지 말고 적극 활용하겠다는 열정과 함께 봉사활동 의지를 보이자 무지개 호스피스 봉사단은 그에게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완화상담실에서 봉사해 보라고 추천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서울대병원 호스피스 봉사활동은 지난 2008년 1월부터 시작해 2014년이면 만 6년째를 맞이한다. 서울대병원 자체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도 매월 한 차례씩 받고 있을 정도로 호스피스 활동은 환자는 물론 병원에서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하면 무조건 배우게 됩니다” 김 씨는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나 일반 국민이 호스피스를 지나치게 부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현재 국내에 가장 대중화된 형태가 호스피스 요양병원인데, 환자나 그 가족들, 일반인들은 말기암 환자가 죽으러 가는 곳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호스피스 병동에 한 번 들어가면 사망해 나오지, 살아선 못 나온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호스피스 병원은 오히려 남은 생명을 좀 더 즐겁게 유지해주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한 해에 450만 명가량이 사망하는데 50% 이상이 호스피스 기관에서 숨을 거두지만, 한국은 2%도 안 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호스피스시설 이용 실태를 소개하기도 했다. 환자가 그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 부족했던 일들을 하면서 삶을 편안하게 정리하도록 해주는 것이 호스피스 기관의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서홍 씨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통해 많이 배우고, 무조건 배우게 된다며 인생 2막 시기에 의미 있는 선택을 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과 접촉하다 보면 정말 많이 배운다. 간병인으로서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최대한 낮추게 된다. 또한 환자의 통증에 공감을 보여야 하며, 매 순간 환자 상황에 신속하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삶의 환경에서라도 적절한 대응력이 생기는 장점이 있다.” 김 씨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완화상담실에 나와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봉사하는 ‘월요조’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통 봉사팀 1개 조는 6~8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환자들을 위해 목욕, 옷 갈아입히기, 이발 및 미용, 기도와 예배 등 보호자가 하는 일들을 맡아서 해준다. 또한 환자들에게 좀 더 나은 완화 봉사를 하기 위해 ‘부종관리 마사지’ 교육을 서울대병원에서 받을 정도로 호스피스 봉사에 열정을 지니고 있다. 김 씨는 서울대병원 외에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정동교회와 세브란스병원이 봉사지원 협약(MOU)을 맺어 매주 수요일 오전 세브란스병원의 채혈실에서 환자나 방문객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봉사활동을 4년째 해오고 있다. 고교동문 합창단 단장 맡아 신앙의 나눔 전파 그렇다고 김서홍 씨의 노후 인생이 무조건 타인만을 위한 봉사로 장식되는 건 아니다. 2막 인생을 노래로 신앙을 알리는 문화활동도 즐기고 있다. 서울 배재고 출신인 김 씨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이 있는 월, 수요일 사이에 낀 화요일엔 고교 졸업 동문들로 구성된 ‘배재 아펜젤러 합창단’의 노래 연습에 나간다. 단원 40명으로 구성된 배재 아펜젤러 합창단은 20~70세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층을 이루지만,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으로 시니어 단원들이 주축을 이룬다. 베이스 파트 담당인 김 씨는 현재 합창단 단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 1958년 선교 중심의 합창단이 창단됐지만, 1960년대 초 정치 격변기에 해체됐다가 2010년 배재고 설립자 아펜젤러 목사의 한국선교 125주년을 기념하는 합창대회 개최를 계기로 부활했다. 졸업생들이 의기투합해 그해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합창대회를 열어 관객 3000명 이상의 성황을 이루며 합창단 활동이 재개됐던 것이다. 2013년에도 12월 7일 정기발표회를 가졌다. 김 씨는 “정기 발표회뿐 아니라 병원, 교회, 요양원 등 위문공연도 연 10차례 정도 가지며, 시니어 단원들 모두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유쾌한 마음으로 합창단 활동을 즐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호스피스 간병 봉사로 아픈 이의 고통을 덜어주고, 동문 합창단의 노래 봉사로 신앙심이 부족한 현대인의 심신을 힐링해주는 김 씨의 ‘사랑 나눔’은 노후 인생의 보람이자 아름다움이다. “호스피스 활동은 봉사의 마음만 있으면 그냥 참여하면 된다”고 권유하는 그는 “주님이나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은혜)을 그냥 가지고 있으며 뭐해요, 나누면 더 큰 기쁨이 되고, 은총이 되지요. 나이가 들수록 나누는 기쁨을 배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씨는 봉사의 나눔은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면 더 좋다고 조언하면서 자신이 즐겨 쓴다는 격언 ‘오늘이 내일보다 젊다’를 들려주었다.

전희진편집장  |  hsmile@econovill.com  |  승인 2014.01.09  09: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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