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중앙동의 관악산 남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를 가로질러 탄천으로 흘러가는 양재천. 옛날에는 ‘학여울’ 등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양재동을 흐른다 하여 양재천으로 불린다.

 

옛 모습의 달라진 것은 지난 1995년. 이곳에 생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주변 시설이 확충돼 현재의 양재천은 건강한 생태하천으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산책, 웰빙 바람을 타고 많은 주민들이 찾아오는 곳으로서 도심형 생태공원의 대표적 성공케이스로 손꼽히고 있다. 요즘 이곳 양재천에 너구리가 자주 출몰해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개과 동물인 너구리는 동아시아의 토종 동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귀가 뾰족하고 꼬리에 줄무늬가 있는 너구리는 일명 ‘아메리카 너구리’로 불리는 ‘라쿤’이다. 라쿤과에 속하는 라쿤은 너구리 완전히 다른 동물. 그러니까 미디어 속 캐릭터로 낯이 익은 너구리는 사실 ‘진짜 너구리’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너구리는 귀가 둥글둥글하고 주둥이가 뾰족하게 생겼다.
 

 

너구리 사냥이 허용됐던 80년대까지만 해도 너구리를 수렵이 성행했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너구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항의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2005년부터 시행된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에 따라 너구리에 대한 일반인의 포획이나 식용·약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지난 2001년 MBC <느낌표!>에서는 다시 살아난 양재천에서 너구리를 찾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경규가 간다!’ 시리즈로 한창 상종가를 올리던 개그맨 MC 이경규가 너구리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새가며 잠복했던 순간순간은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당시 이경규와 제작진은 너구리를 처음부터 쉽사리 볼 수 있을 거라 기대에 들떴지만 야행성 동물인 너구리는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각종 포획 장비 동원했지만, 너구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도 잡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의 매주 클로징에서 이경규의 “오늘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기필코!”라는 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프로그램이 방송된 해를 넘긴 2002년 1월에서야 겨우 너구리를 포획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방송 이후 사람들은 도시 생태계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너구리는 양재천 생태계의 상징이 됐다.

 

시간은 흘러 2015년의 다시 1월의 양재천. 우면산 자락과 양재천이 만나는 이곳에는 여전히 너구리가 출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양재천에서 또다시 이경규와 너구리가 다시 만났다. 양재천을 따라 조성된 서초보금자리지구. 이곳에 지난 1월 이경규가 직접 이사로서 홍보와 운영 등에 나서는 프리미엄 오븐구이 전문점인 ‘돈치킨’(www.donchicken.co.kr) 우면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양재천의 너구리가 산책 나온 사람으로부터 치킨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너구리가 이경규를 만나러 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최근 이 돈치킨 매장을 찾아오는 손님들 사이에서 종종 “여기도 너구리 왔어요?”같은 흥미로운 질문들이 오고 간다. 어떤 손님들은 너구리 찾으러 치킨 사 들고 양재천 가야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아직 너구리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야생동물치고는 비교적 온순하고 인간에게 해를 심하게 끼치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의 교류가 많았던 너구리지만 아직 양재천 너구리의 정확한 숫자조차 서울시는 파악하지 못했다. 작년 10월과 12월 두 차례 조사에 나선 것이 전부다. 그러니 아직 치킨 사 들고 너구리 찾으러 가기 보다는 그냥 치킨 먹을 때마다 너구리 얘기하는 정도만 해두길.

 

너구리는 옛날부터 민가에 먹을 것을 구하러 내려오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환경파괴로 인해 도시로 내려온 너구리가 많아졌다. 인간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녹지공간이 생기게 되자 이곳에서 인간과 너구리는 다시 마주하고 있다. 야행성인 너구리는 이제 낮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치킨까지 좋아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인간과 식성도 가까운 모양이다.

 

13년 전 양재천에서 만났던 너구리와 이경규. 되찾은 도심 속 자연으로 이경규 치킨집도 들어왔고 너구리도 돌아왔다. 많은 시청자들이 뭉클했던 너구리와의 만남을 기억한다. 그 아름다운 추억처럼 앞으로도 인간과 너구리가 아름다운 공생을 이어갈 수 있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