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퇴근 후 왠지 그대로 귀가하기 싫은 날, 근사한 분위기의 주점에서 술 한 잔 하고 싶은 바람을 완성시켜 줄 곳이 있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끼는 곳, ‘단풍나무숲’이다. 관악구 신림동의 시끌벅적한 골목, 한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단풍나무숲은 이름에서 풍겨오는 정취가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는 곳이다.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부터 독특하다. 새장 속 하얀 새들이 방문자를 반기더니, 벽면에 잘라 붙여놓은 굵은 나무 기둥의 단면에 적힌 시 구절이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늘어선 화분에 핀 예쁜 꽃들과 함께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여느 가게처럼 실내가 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옥상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게 전체 면적의 약 1/3정도 규모에 해당하는 이 야외 테라스는 진짜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이뿐만 아니라 꽃과 풀을 잔뜩 심어놓은 화단이 테라스를 둘러싸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소주 한 잔 가득 따라 내려놓은 술잔에, 바람에 실려 온 단풍잎이 떨어져 앉는다. 멀리서 도로의 차 소리와 거리의 행인 말소리, 주변 음식점에서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만 앉은 곳은 도심 속의 숲이다. 술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현대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가게 내부로 들어서는 문이 모두 옥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서 야외석과 실내석은 단절감 없이 하나로 통한다. 바닥에 박힌 단풍을 밟고 가게 실내로 들어가면 큰 나무 기둥에 다다른다. 나무 기둥 위쪽에 빨간색, 노란색 단풍 모양의 종이가 붙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방문객들의 소원이 적혀 있다. 이밖에도 벽면 곳곳에 시가 쓰였다. ‘숲에 가면 나무를 닮고 바다에 가면 모래를 닮는다’라는 글귀가 입구 현판에 새겨져 있다.

또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조명이 은은히 실내를 밝히는데, 한쪽 벽면에는 조명을 둥근 모양으로 희미하게 비춰 달을 연출했다. 야외가 보이는 낮은 바(BAR)형 테이블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기에 제격이다. 단, 술 한 잔 기울이기도 전 분위기에 취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분위기에 신경 썼다고 맛을 포기한 게 아니다. 안주가 나오면 마음은 다시 한 번 사로잡힌다. 제일 먼저 주문한 새콤한 골뱅이 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소면과 먹음직스럽게 빨간 양념을 쓱쓱 비벼 골뱅이와 함께 입 안에 넣으면 상큼한 미나리와 오이 향이 퍼진다. 그 후에 매콤한 맛이 밀려들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두 번 세 번 자꾸만 손이 닿을 음식이다.

소주 안주로 단골 메뉴인 두부 김치를 주문했다. 아랫부분이 깊이 파인 그릇 한가득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볶은 김치와 제각각의 크기로 썰린 두부가 담겨 나왔다. 볶은 김치를 흰 두부에 얹어 맛보니 돼지고기도 같이 씹힌다. 풍성한 한입거리다. 볶은 김치 특유의 신 맛과 함께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단 맛이 더해져 질리지 않는 메뉴로 통한다.

이후 이 집의 별미 왕새우 소금구이를 주문했다. 별미인 이유는 메뉴가 나오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높게 쌓인 흰 소금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새우를 보니 평범한 새우구이다. 그런데 가운데로 불이 활활 타오른다. 테이블에 오른 뒤에도 한동안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 이 메뉴를 주문한 손님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새우가 솔방울, 솔잎과 함께 제공되는 것. 코끝을 알싸하게 적시는 솔잎 향과 새우의 구수한 냄새가 테이블을 가득 메운다.

이곳을 설립한 문준용 ㈜HENGJIN FRANCHISE 대표는 전 메뉴의 차별화를 위해 직접 레시피를 연구했다. 골뱅이 소면에 얹은 식용꽃잎, 두부 김치 접시에 놓인 단풍나무 잎 등의 데코레이션에도 그의 섬세한 손길이 배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실감난다.


마지막으로 문 대표가 권한 이 곳의 인기 메뉴는 보쌈고기와 과일편채. 새우젓갈과 함께 나오는 삶은 돼지고기는 담백하고 적당히 달달한 맛을 낸다. 함께 곁들여 먹는 야채는 과일 드레싱으로 덮고 채 썬 사과로 마무리했다. 고기의 느끼한 맛을 없애고 과일과 야채의 조합으로 개운한 맛을 더했다. 보쌈고기 한 점은 소주 한 모금이든 맥주 한 모금이든 어디에나 어울린다. 메뉴는 20여 가지.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나무 잎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머릿속을 메우는 장면이 있다. 올 가을 이곳에 붉은 단풍이 찾아드는 광경이다. 그러고 보니 계절의 피크를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맞이할 수 있겠다.

메뉴 : 골뱅이무침 1만5000원, 왕새우소금구이 1만9000원, 두부김치 1만4000원, 보쌈고기와 과일편채 1만3000원, 소라구이 1만7000원
운영 시간 : 오후 6시~다음날 오전5시
위치 : 서울시 관악구 신림본동 1640-29 3층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출구 근처)
문의 : 02-888-1116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