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하계동에서 온 육홍근(46)씨는 평소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초계탕을 장모님께 대접하고자 가족들과 함께 초리골 초계탕집을 찾았다. 담백하면서도 향긋한 육수와 쫄깃한 닭, 차가운 메밀국수 위에 얹어 먹는 따뜻한 메밀전의 맛 때문에 10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한 달 이상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제대로 된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말복이 눈앞에 다가왔다. 반복되는 폭우와 습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궁중음식으로 알려진 차가운 보양음식 초계탕의 원조 ‘초리골 초계탕’ 집을 찾았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초계탕 원조집을 찾기 위해 서울에서 1시간 40분간을 빗속을 뚫고 달렸다. 천둥번개가 치는 빗속의 자유로를 스릴 있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차 한대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파주 법원리 초리골에 도착한 것이다. 삼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 연못 속에 기둥을 세워 지은 2층짜리 초계탕집 건물이 보인다.

평일 아침, 아무리 원조집이라 해도 이런 폭우 속에 산 속에 있는 음식점을 사람들이 찾을까 싶어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약 40여개의 테이블은 가족들과 회사원들로 가득 찼다. 그나마 비가 와서 줄 서 기다리지 않는 것이라 하니 맛집을 찾는 사람들의 정성이 놀랍기만 하다.

초계탕은 닭 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후, 살코기를 잘게 찢어서 넣어 먹는 궁중음식이다. 찬 음식이지만 돼지고지와 쇠고기처럼 냉한 음식이 아닌 열이 있는 꿩이나 닭고기로 만들어 음식의 궁합을 맞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식이라 할 수 있다. 초계라는 말은 식초와 겨자를 뜻하는 말인데 겨자가 이북말로 ‘계자’다 보니 ‘초계탕’이 된 것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차갑고 상큼 조상 지혜 담긴 전통식
28년 째 파주에서 초계탕을 만든다는 ‘초리골 초계탕’의 김성수 사장. 그는 4대째 평양냉면의 가업을 잇고 있다. 이북 출신의 부모님은 평양냉면을 만드셨지만 그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음식을 만들고자 평양냉면이 아닌 초계탕을 선택했다.

그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맛을 보라”며 초계탕과 삶은 닭 날개를 권한다. 이곳에서 초계탕을 주문하면 메밀부침과 열무 물김치, 삶은 닭 날개와 초계탕이 한 세트로 나온다.

먼저 살얼음이 동동 뜬 열무 물김치를 그의 권유대로 쭉 들이켜본다. 얼큰하면서도 알싸한 맛에 입맛이 돋는다. 양파, 마늘, 생강, 고추씨 등을 넣고 삶은 닭고기 역시 소금을 찍어먹을 필요 없이 짭짤한 간이 배 느끼하거나 비리지 않았다. 드디어 초계탕에 손이 가는 순간 ‘겨자와 식초 맛이 강한 식힌 닭곰탕’ 의 맛을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먼저 향긋한 레몬향이 입 안에 퍼졌고 잘게 썰린 샐러리가 씹히며 채소 특유의 향긋함이 뒤따랐다. 잣의 고소함과 함께 고추의 스파이시한 맛, 배즙의 시원함도 어우러져 닭고기의 비린 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향긋함과 새콤함, 신선함과 담백함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맛에 ‘참으로 손이 많이 간 정성담긴 음식’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4대째 냉면가게를 해 온 가업을 잇다보니 옛날 초계탕을 재현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더군요. 초계탕을 처음 만들었을 때 닭고기가 찬 얼음 육수 속에 들어가니 닭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을까 미나리 등 다양한 재료 등을 넣어가며 15여 년 간 수백 차례의 방법을 시도했지요.”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그는 여러 가지 음식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의 장인들처럼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자 초계탕에 인생을 건 그는 수백 차례의 시도 끝에 전통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닭의 비린 맛을 없애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어필되는 맛을 찾았다. 삶은 닭 역시 우연히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 비린 맛을 없애면서도 쫄깃한 맛을 유지한다는 발견을 하고 저온숙성의 비결을 찾아냈다.

수백 차례 시도 끝에 찾은 저온숙성 비법
그런 그의 노력 때문일까. 이 빗속을 뚫고 초리골 초계탕집을 찾은 손님들은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너도나도 이 집 음식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세 쌍의 부부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테이블을 찾아 말을 건넸다.

비가 많이 오는데 어떻게 찾았냐는 질문에 일산에서 온 권오일(54)씨는 “역발상으로 비가 많이 와서 찾았죠”라고 유쾌하게 대답한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 기다리니 비오는 날은 기다리지 않겠다 싶어 일찌감치 함께 휴가를 맞은 이웃들과 이곳을 찾은 것이다.

“초계탕도 좋지만 따뜻한 메밀전을 차가운 메밀국수에 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혀요”라며 함께 온 이웃들이 옆에서 거든다. “새콤하면서도 얼큰한 초계탕과 삶은 닭고기를 소주 한잔과 함께 즐기는 맛이 일품이죠. 게다가 주변 경관도 한 몫 해요. 저는 이곳을 찾은 지 10년 정도 됐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주변 삼봉산에 등산하기 전 이곳에서 초계탕이나 메밀국수를 먹곤 합니다. 완전 웰빙 투어죠. 가격도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10년 이상 한번도 오르지 않았어요.”

파주에서 음식업을 한 지 28년이 되었지만 김성수 사장은 15년 이상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최근 폭우로 인해 채소 값이 폭등했지만 가격을 올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음식 가격은 초계탕 2인에 2만7000원, 3~4인에 3만6000원, 메밀국수가 5000원이다.

“성공하는 것은 쉽더군요.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폭우 속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며 문득 가게 안 ‘無聲虎人(무성호인)’이라는 휘호를 바라본다. ‘부르지 않아도 소리 없이 사람이 모인다’라는 뜻처럼 명성을 지키기 위한 김성수 사장의 노력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위치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168
문의 : 031)958-5250 (매주 수요일 휴무)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