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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터놓고 얘기합시다] ‘지급명령’의 공습①지급명령, 그냥 지나치지 말자

# “기초생활 수급자입니다. 2006년경 지인의 대출금에 보증을 섰습니다. 제가 그 대출금을 쓴 것이 아닌 데다가 너무 오래돼서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결정문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A 씨는 당시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가 말한 지급명령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목: 양수금

채권자: 00대부

갚을 돈 : 1700만원(원금 600만원)

내용 : 00캐피탈의 보증채무금

A 씨에게 보증을 부탁했던 지인도 같이 지급명령을 받았으나 시간이 이미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지급거절의 이의신청을 했다고 한다. 기초수급을 받은 A 씨는 청구된 금액이 너무 거금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 B 씨는 며칠 전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문을 받았다. 원금 1600만원, 이자 2700만원 총 4300만원. 채권자인 00대부라는 업체는 알지 못하는 곳이다.

“2003년도에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약 3억원의 빚을 졌습니다. 이 당시 00카드를 비롯해서 채권기관 10곳의 대출금을 연체했습니다.” 이후 B 씨는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며칠 전에 온 이 지급명령결정문에 2주 안에 이의 신청을 하라고 했는데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그 기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몇 주 후에 B 씨 집에는 법원의 집행관들이 들이닥쳐 살림살이에 스티커를 붙였다고 한다. 값어치 있는 물건들은 없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 앞에서 그는 부모로서 면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급명령이란 법원이 ‘빌린 돈 지급하라’는 명령

빚을 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소송서류 중 하나가 바로 지급명령결정문이다. 지급명령은 채권자가 신청한 내용만을 가지고 법원이 채무자에게 ‘빌린 돈을 지급하라’고 명령하는 결정이다. 채무자는 이 결정에 대해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채권 시효가 소멸되어서 갚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단순히 시간을 끌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의신청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2개월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채권자는 이 결정문을 가지고 채무자의 재산에 압류스티커를 붙이거나 경매신청할 수 있다.

뜬금없이 찾아오는 지급명령문

A 씨는 2006년에 지인의 대출금에 보증을 섰다. 10년이 넘은 시점에, 법원으로부터 받은 지급명령문에는 이자가 잔뜩 붙어 있었다. 채권자는 A 씨가 모르는 대부업체였다.

이와 같이 지급명령이 채무자에게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처음 대출한 대출기관이 채권을 팔아 채권 소유자가 돌고 돌았기 때문이다.

보통 카드사와 제도권 금융기관은 채무자가 대출금을 연체하면 몇 달 동안 심하게 독촉한다. 그 이후 채권을 다른 곳에 팔아버린다. 예컨대 카드사가 채무자에게 받을 돈이 1000만원인데 심하게 독촉을 해도 회수되지 않으면 대부업체에 700만원에 받고 팔아버린다.

700만원에 채권을 산 이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1000만원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이렇게 회수가 되면 대부업체는 300만원의 이득이 생기는 것이다.

이 대부업체가 독촉하다가 회수하지 못하면 또 다른 대부업체에게 채권을 판다. 채권은 팔릴 때마다 순차적으로 싸진다. 최종 매입자는 처음 대출금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채권을 사오기도 한다. 매각되는 채권이 얼마나 싸지는지와 관계없이 마지막에 매입하는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처음 연체한 1000만원을 받아내려고 한다.

채무자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갚아야 할 채권이 팔린다. 몇 년이 지나면 채무자는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대부업체를 알지 못한다.

죽은 채권, 부활 노리는 대부업체

A 씨가 대출금에 보증을 서준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법률전문가들은 금융기관에 빌린 대출금에 대해서 연체된 후 5년이 지나도록 소송이 없었다면 채권이 소멸한다고 설명한다. 이 5년의 기간을 ‘소멸시효기간’이라고 부른다.

신용정보회사의 어느 추심원은 “대부업체가 지급명령을 하는 채권들은 수 년 동안 거듭 팔았던 것이어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들이 많다. 이들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고 확정된 채권에 대해 신용정보회사에 추심을 의뢰한다”고 말했다.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시효기간인 5년을 넘겼다는 말과 같다.

대부업체들은 5년이 지나서 채권이 소멸하더라도 사례처럼 지급명령을 신청한다. 5년의 시효가 지나서 채권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대부업체가 지급명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률상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받고 2주 동안 이의신청이 없으면, 이 채권의 시효는 다시 10년으로 늘어난다. 소멸한 채권이 부활한다는 것.

또 지급명령을 받은 채무자가 채권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대부업체의 독촉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 금액이라도 상환을 하면, 채권은 ‘전체’가 부활한다고 한다. 법률전문가들은 대부업체가 이와 같은 점을 노리고 지급명령을 남발한다는 설명이다.

간단한 이의신청, 몰라서 낭패 보는 일 많다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안 갚아도 될 채무를 떠안게 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급명령결정에 대해 채무자가 대응하는 방법은 지급명령을 보내온 법원으로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는 일이다. 형식적으로 복잡할 것이 없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법원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는 일련의 과정은 대부분 서투르고 제대로 하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필요하면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꽁꽁 숨기면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의신청서 양식은 법원 홈페이지와 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다. 서류양식을 다운받아 사건번호, 채권자, 채무자를 정확하게 기재한다. 보기와 같이 ‘이의를 한다’는 내용과 ‘시효로 소멸한 채권임’을 명시하면 된다. 타이핑이 서투르면 흰 종이에 볼펜으로 써도 무방하다.

이마저도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확신이 없으면 지급명령문을 들고 해당 법원 독촉과를 찾아가서 접수직원의 설명을 듣고 이의신청서를 제출해도 된다. 법원 접수창구에는 이의신청서 양식도 준비되어 있다. 제출은 법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법원은 등기우편으로 서류를 접수받기도 한다.

대응 방법은 간단한 반면 이의기간인 2주를 넘겼을 때는, B 씨 사례와 같이 집안의 물건에 압류 스티커가 붙어 낭패를 보게 된다. 채무자가 이의신청서에 채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기재하면, 법원은 채권자에게 유효한 채권인지 확인을 요구한다.

대부업체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업체는 법원의 요구가 있기 전에 채무자의 이의신청서 내용을 보고 스스로 지급명령을 취소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한다. 채무자가 시효기간이 지나서 채권이 소멸한 상황을 알아챈 이상 지급명령 절차를 더는 진행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랜 전에 빌린 대출금이나 그 대출금에 보증 선 채무가 5년이 넘었는지는 지급명령문 내용에 기재된 대출일자를 확인해볼 일이다. 5년이 넘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이의신청은 하는 것이 좋다. 약 2달간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B 씨는 2주라는 시간을 넘겨버렸다. 그는 이의신청을 하지 못해 채무가 부활되어 확정된 상황이다. 이 경우는 어떤 해법이 있을까? 가령 채무자가 10억원의 채무가 있는데, 이 중에 1000만원의 채권이 이처럼 지급명령이 확정된 상황이라면 채권자에게 상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파산 상태에서 한 건의 지급명령이 확정된들 달라질 것은 없다.

채무조정을 하는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파산 상태에서 이렇게 확정된 지급명령은 의미가 없다”며 “파산이나 회생신청하는 기회에 이의기간을 넘겨 확정된 지급명령 채권금액을 같이 정리하면 된다”고 방향을 일러주기도 했다.

채무자가 파산이나 회생신청을 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채권자와 조정하여 협상을 할 여지도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채권이 싸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의신청을 한다고 해서 모든 지급명령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간단한 이의신청으로 시간을 번 뒤에 주위의 도움을 청할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정무위 소속)은 지난해 6월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해서는 추심을 금지하고, 채권추심회사가 시효를 부활시키기 위한 지급명령 청구나 압류 신청 등 시효부활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하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에 의하면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추심금지를 위반함으로써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손해액의 3배 이내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빚 갚을 의무가 사라진 소멸시효 완성 채권 규모는 12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2010년 이후 5년간 162개 금융회사가 4122억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2.9%인 120억원에 대부업체 등에 매각했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지급명령은 모두 27만409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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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정 기자  |  lawyang@econovill.com  |  승인 2017.03.18  14: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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