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다라, 80×100㎝ 한지 위에 혼합재료, 2017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야만 싶은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폭 젖었다.”<윤동주 전집, 詩 달밤, 권영민 엮음, 문학사상 刊>

 

달빛이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창호지를 슬쩍 집적거리며 지나갈 즈음인가. 간다온다 말없이 그렇게 아아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들과 동행하는 빛을 겨우 달래어 불러 세웠다. 그 달빛에 어린, 무릇 숱한 사연들이 적막 속 마치 예정된 길을 가는 늑대의 행렬처럼 정연하구나. 바스락, 단 한 번의 소리도 없이 마음의 배열은 가늘게 떨리고 발돋움하는 연정은 들킬까 문풍지 울림을 핑계 삼아 그 대열을 따라 나선다. 불현 듯 유년의 소꿉놀이가 달빛에 어른거리누나.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뚫어 밖을 내다보던 즐거움이 어쩌면 그땐 그리도 재미나던지. 그 캄캄한 어느 날 밤, 화면의 검은 면에 뚫려진 부정형구멍처럼 그곳으로 맑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훅 들어와 어린 내 가슴에 그냥 안겨버리는 그 달빛이어라. 기쁨과 슬픔, 기원과 시시콜콜한 얘기마저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주며 교감해주던 하여 외로움에서 건져 올린 내 가슴에 영원한 보석으로 새겨져 있는 오랜 친구인 것을….

연회색, 연푸르게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반 투병한, 빛을 받았을 때 약간 반짝이는 결은 유년시절 오목조목 조각보를 잇던, 달밤 호롱불아래 다듬이 일을 하던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아련히 떠 올리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밤, 달과 함께 다시 얘기를 나누네.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시간에 부르는 내 마음의 노래, 그리움이여!

 

▲ 80×100㎝

 

◇뒤편까지 배려하는 심중의 징표

화면은 한글의 글꼴이 가진 형체로 단순화시킨 작품이다. 회흑색 분청사기가 백토물에 덤벙 적셔져 올라오는 듯, 화면의 하단엔 목탄에 그을린 자국 위 묽은 혼합 안료를 얹었다. 그럼으로써 달빛과 조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더욱 생생해 졌다. 흑백이 주조(主潮)이지만 먹으로 된 면과 선은 분청사기의 흑색이거나 진한 갈색이든지 그런 문양을 연상케 한다.

묵직하게 때론 밝고 정겨운 풍경은 달빛을 머금었다. 목탄과 먹이 어우러진 또 한지의 조직과 목탄입자가 서로 이뤄짐으로써 반질하지 않고 투박하지만 우리 질그릇과 같은 느낌의 질감을 드러내 보여준다. ‘달빛 어린-빛이 어둠에 내릴 때’작품은 달빛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건물이나 어떤 형상을 묘사한 것이다.

 

▲ 가나다라, 91×91㎝, 2017 (오른쪽)달빛 어린-빛이 어둠에 내릴 때, 100×80㎝, 2014

 

위로는 달이 휘영청 밝고 아래는 거대한 물체를 그리면서 달빛의 앞면은 밝겠지만 뒷면을 화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부드럽고 온화한 배려의 심상으로 인도한다. 부연하자면 온 천지를 달이 비치지만 어둠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곳에조차도 교교하게 스며드는 형상성을 내포하고 있다. 항상 앞에 보이는 것보다 뒤의 배후까지도 이른바 세상 구석구석까지 비칠 수 있기를 바라는 진솔한 마음의 징표가 담겨있는 것이다.

황인혜(ARTIST HWANG IN HYE, 黃仁惠)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감히 빛을 그릴 수는 없다. 너무나 존엄한 대상이니까. 다만 그 빛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도 다른 사람에게 받은 그 빛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좋은 기운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달빛 어린 작업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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