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주(sprinter), 130×200㎝, 캔버스 위 혼합재료, 2017

 

“나는 마음이 깃든 길을 나아가는데 전념할 뿐일세. 어떤 길이든 간에, 마음이 깃든 길을. 나는 그런 길을 나아가고, 그런 내게 유일하게 가치 있는 도전이란, 그 여정을 끝까지 완수하는 일이라네. 그래서 보고, 또 보면서, 숨가쁘게 나아가는 거지.”<돈 후앙의 가르침,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지음, 김상훈 옮김, 정신세계사 刊>

 

찬바람에 옷깃을 부비며 추적추적 가을 비 내리는 숲길을 걸어가니 빗방울 바람을 피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네. 가지에 매달린 작은 잎 하나도 이별이 싫기는 매한가지, 물방울을 힘겹게 껴안고 안간힘을 쓰누나.

외진 곳 네모난 듬직한 바위를 등지고 흐늘흐늘 피어난 만추에 향이진한 국화는 저렇게 스스로 고독을 즐기는구나. 아 누가 알아줄 것이냐. 드높은 하늘 구름은 흘러가는데 서늘한 일기에 속살을 드러내며 눈을 감은 듯 꽃잎을 펼친 저 군자(君子)의 고상함을!

 

▲ 심상풍경, 72.7×72.7㎝

 

◇비의 변주 회상의 노래

꽃향기 호수 잔물결에 어울리네. 적막한 물살 위 한줄기 바람에 가는 빗줄기만 오락가락 서성거려요. 스러질 듯 휘어지는 비의 변주 미련의 노래인가. 빗방울 떨어지는 짜릿한 전율의 파동에 철없는 새끼 물고기들 신바람이 났구나. 바람이 부는 곳으로 쪼르르 우르르, 한 덩어리 되어 쏟아지는 빗줄기를 따라 떼를 지어 몰려가 입을 뻐금….

비 그치고 바람은 찬데 초록 싹들은 더욱 강렬한 생기로 솟아올랐다. 이름 없는 풀일지라도 생령이 뜨거운 것은 제 모습을 달리 숨기지 않기 때문이리. 꽃은 꽃으로 억새는 억새 숲으로 허공을 빙빙 돌다 바람 따라 날다가 어느 양지바른 곳 검게 타버린 고목을 섶 삼아 몸을 누인 씨앗은 언젠간 매혹의 자태를 뽐내며 제 생을 기꺼이 즐길 것이다.

언뜻언뜻 햇살이 숲길을 스며들면 새는 젖은 날개를 퍼덕이며 기지개를 폈다. 조금씩 저녁이 몰려오고 멀게만 보이던 산봉우리가 한걸음 성큼 다가오면 오렌지색으로 물들어가는 황혼의 재미난 풍설(風說)에 숲속은 새들의 수다로 시끄러워져 갔다.

 

▲ 91×91㎝

 

◇뜨거운 가슴으로 더 힘차게

저 아득한 지평선이 억겁세월 굳건한 신념으로 떠오르는 빛의 아우라, 여명(黎明)을 맞이한다.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안개는 광활한 들녘에 드러누워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희뿌연 정적에 까막딱따구리들의 집짓는 소리가 광원에 울려 퍼졌다.

아 놀라워라. 이 안개 자욱한 들녘에 먹이를 찾아 나선 어미 새의 갸륵한 행보가 눈물겨워 두리번거린다. 미련 없이 돌아 선, 한 번에 들이킨 이별의 술잔처럼 어느덧 안개는 걷히고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말(馬)들의 행렬 뒤로 먼동이 밝아온다.

 

▲ 회상, 91×91㎝

 

가벼운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세월의 미덕인가. 덧없음도, 청춘의 뜨겁던 열정도 아련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산과 개울과 호수와 언덕 그리고 태양과 달….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림, 진정 뜨겁게 사랑하였노라!

장동문(ARTIST ZHANG DONG MOON, 張東文)작가는 이렇게 메모했다. “흐르는 물은 폭포에 낙하한 후에야 고요를 맞았다. 맑고 차가운 투명한 생명수, 목을 축이는 말들이 하루를 시작한다. 저 언덕에 서서 바람에 실려 불어오는 풋풋하고도 비릿한 바다의 내음을 맡으며 지금으로부터 먼먼 시간의 역사를 기록해 온 대지를 바라본다.”

 

▲ 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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