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3월 4일. 3월의 영업일 첫 날이다. 이날 현대차 직원들은 작은 변화를 몸소 실천했다. 정장차림을 벗고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1967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반백년만에 복장 문화를 깨는 일이다. 현대차는 복장에 이어 사무 및 거주 공간 활용도 모색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변해야 한다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발언은 ‘현재’가 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사옥 내부 카페 모습.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작지만 커다란 변화의 시작

현대차는 매주 금요일에만 진행하던 ‘자율복 근무제’를 4일 오전부터 전면 도입했다. 이날 현대차 양재동 본사의 남자 직원들은 넥타이를 풀고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었다, 여성 직원들은 귀걸이를 착용하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다. 과감히 강렬한 색체의 옷이나 후드를 입는 직원들도 있는가 하면, 형이상학적인 프린팅의 티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새로운 복장을 착용한 직원들 표정은 다소 어색했지만 웃음이 만면에 흥건했다. 서로의 복장을 이야기하며 대화 주제도 제법 가벼워졌다. 현대차의 한 직원은 “매주 금요일마다 자율 복장 제도를 시행했지만 대부분 직원이 정장을 고수했다”면서 “이제는 자율복 근무가 전면 도입되면서 다들 편안한 복장을 입고 다닌다. 복장이 바뀌면서 직원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도 자율복장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현대차는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율복장 관련 미팅 행사인 ‘타운홀미팅’을 준비했다. 행사를 준비한 현대차 관계자는 “그간 회사의 변화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이러한 공간을 주기적으로 열어 변화에 대한 소통을 하고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4일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사옥에서 '타운홀 미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행사에서 현대차는 공간 개선도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경영지원본부 부사장은 “모든 공간을 오픈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지속적인 소통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공간 활용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입장에서 공간의 불편함은 두 가지다. 바로 사무실 공간과 주차공간 개선이다. 주차공간 개선에 대한 질문은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나왔다. 현대자동차 주차타워가 비좁아 주변 공터에 주차 공간을 조성해 달라는 것. 그간 보수적이었던 회사 분위기에서 나오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해 장 부사장은 “주변 공터 주차공간 여건을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합의를 통해서 개선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사무실 공간 문제는 이날 질문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대화 주제거리다. 꽤나 오래된 문제다. 현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옥은 기존에 농협이 사용하려던 곳이다. 회사 규모에 비해 건물 자체가 좁다보니, 그룹 전체 계열사가 입주하지 못하여 흩어져 있다. 양재사옥에 위치한 본부도 한두개 파티션으로만 나뉘어있다. 대부분 본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이 문제는 GBC 건설이 완료되면서 일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장 부사장은 “현재 흡연실을 휴게실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공간 활용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사옥 내부 휴게공간 모습.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현대차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별도의 카카오톡 익명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채팅방에서는 ‘팀장급 이상에게 자율복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좋을 것 같다’, ‘쓸데없이 윗분들 눈치 보지 말자’, ‘미팅 때문에 점심을 일찍 먹는 직원들이 점심시간동안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달라’, ‘본부가 적극 나서서 변화를 주도해라. 눈칫밥 먹기 지겹다’, ‘그간 소통에 게흘리한 회사 태도를 보면 임직원들에게 이런 공간(오픈채팅방)은 오히려 불만이 오가서 자연스럽다’라는 등 여러 대화가 쏟아졌다.

타운홀미팅에 참석한 코넬리아 슈나이더 현대차 스페이스마케팅본부 상무는 “모든 공간을 오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단지 거주의 공간이 아닌 대화의 공간도 포함된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작지만 커다란 변화의 출발점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자동차 익명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라온 대화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내용 토대로 가공

변화의 시작은 어디부터인가?

현대자동차그룹의 변화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부터 회사 전반에 걸쳐 변화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10월 임원인사, 신년사, 공채폐지, 회사보고 시스템 등이다.

먼저 2018년 10월 임원 인사다. 당시 임원인사가 파격적이라고 불린 이유는 실적 중심의 인사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에 현대차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이른바 ‘부사장 라인을 잘 타면 살아남는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개개인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부사장의 실적이 좋다면 라인 전체가 살아남았다. 반대쪽은 전부 좌천되는 식이었다. 그런데 10월 인사에서 어느 라인 할 것 없이 인사가 교체됐다. 실적을 중심으로 인사를 내놓고, 외부 피 수혈에 나선것.

앞서 현대차는 이례적으로 외국인인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오는 주총에서는 외국인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도 추진하고 있다. 과장급 이하에서도 활발하게 외부인사 영입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엔 주로 기계과 출신 정통 자동차 맨이 많았다. 현재는 배터리와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와 기업에서 경력직을 끌어모으고 있다.

현대차가 공채제도를 폐지한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기민하게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의도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공채를 하면 인원 공백이 생겨도 곧장 충원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시기적절하게 인재를 충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해당 부서에 알맞은 인재를 들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인사제도 변화와 함게 올해 초부터 본부별 조직개편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사람 위주가 아닌 업무위주로 부서가 개편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총괄 수석부회장이 2019년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정 부회장의 신년사만큼 중요한 ‘대상’

올해 현대자동차 신년행사에서는 ‘변화와 혁신 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2007년부터 임직원에게 수여하던 상이지만 시무식에서 시상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핵심은 상의 이름이다. ‘변화와 혁신 대상’ 이름 그대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상은 조직부문과 개인부문으로 나뉜다. 조직부문은 현대위아 차량부품연구센터가 받았다. 차량부품연구센터는 기능통합 드라이브액슬인 ‘IDA’를 개발해 받았다. 이 기술은 해당 부서가 다른 부서와 서로 정보를 공유해 최종 결과물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부문은 정태훈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책임이 받았다. 정 연구원은 공조연비 동력제동성능 통합 개선로직을 개발했다. 정태훈 책임이 상을 받은 이유는 다른 부서를 제일 잘 도와줬다는 것이다. 당장 실적에 치이지 않고 다른 부서와 협업해 통합 개선로직을 개발하였기에 상을 받은 것. 조직부문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변화와 혁신 대상을 수상했다.

변화는 연구개발이 아닌 사무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메일 보고 역시 다른 점이다. 과거 현대자동차 임원들은 정 수석부회장이 출장 이후 돌아오면 보고서를 한움큼 들고 부회장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이용해 보고한다. 시의 적절하고 신속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고 타이밍을 개편한 것.

과거 현대차에서 오너에게 보고가 올라가는 과정은 길면 한달을 넘기기도 했다. 팀장부터 실장, 사업부장 등을 거쳐 마지막에 본부장이 오너에게 대면으로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정 수석부회장 지침에 따라 이메일로 보고가 이루어졌다. 사안에 따라 팀원급도 이메일로 보고한다. 다만 참조로 실장과 본부장을 넣는다. 보고 형태가 간소화되면 조직은 더욱 빠르게 굴러간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중간관리자 선에서 왜곡되는 일도 바로잡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윗선에서 소통을 강조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유연하게 하고 있다. 일부 가이드라인을 시범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면서 “정 수석부회장이 넥쏘를 타고 셀프카메라를 찍은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정 수석 부회장의 의사 역시 직원들에게 직접 전달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