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며 존속을 원하는 집단이다. 자본주의의 파도에서 욕망을 쫒고 냉정한 정글의 법칙을 당연하게 여기는 맹수들의 사냥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 중심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시혜의 수준에서 이해되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권력의 여유로 치부되곤 했다. 적어도, SK가 나서기 전까지는.

최태원 SK 회장이 처음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설파하기 시작할 무렵, 재계에서는 이를 정치적 포석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기업 중 하나인 SK가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영역'에 관심을 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조금씩 허물며 적극적인 외연 확장을 시도하더니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일종의 축제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28일 열린 SOVAC 2019(소셜밸류커넥트 2019) 이야기다.

▲ 최태원 SK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재성 기자

그들은 왜 모였는가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SOVAC 2019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SK가 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그 사회적 가치는 어떤 파급력을 가지며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답은 얼추 나왔다. 최태원 SK 회장은 왜 SK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는지를 두고 회장 최태원이 아닌 인간 최태원의 근본적 질문을 꺼냈다. 최 회장은 "회장으로 취임했던 21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웠다"면서 "나는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감능력은 제로였으며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모든 것을 일로만 봤다. 내 가슴은 텅텅 비어있었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냉정한 경영자의 모습이다.

회장 최태원에서 인간 최태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며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나와 정반대인 사람은 돈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람만을 향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때부터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냉정한 기업의 정글에서 성공과 생존을 위해 칼을 휘두르던 최 회장이 자연인이 되는 순간, 사람에 대한 이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 가치라는 거대 담론이 나왔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는 '정반대인 사람'을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T&C)재단 이사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 패널 토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재성 기자

정반대인 사람과의 만남으로 가치관이 변한 최 회장을 통해 SK의 사회적 가치가 시동을 걸었다면, 그 파급력은 어떻게 될까. SK의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텔레콤의 경우 경제간접 기여성과 1조6000억원, 비즈니스 사회성과 181억원, 사회공헌 사회성과 339억원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계열사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SK의 사회적 가치 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SOVAC 2019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례도 공유됐다. 정성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글로벌 IT기업 입장에서 볼 때 기업이 사회적 가치에 관심두지 않으면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면서 “사회적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사회에 인공지능(AI)이나 데이터를 맡기기에는 고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종욱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장도 “사회적 가치의 기본 개념은 다양성, 공공의 이익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면서 “이는 국가의 발생 이유기도 하기에 상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참여, 공동체 등이 대표적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친환경 패러다임, 기업의 근본적인 가치 철학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눈길을 끈다.

▲ 버닝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에스펀과 버닝맨의 사이에서
SOVAC 2019는 에스펀의 자유분방한 철학적 사유와, 버닝맨의 뜨거운 괴짜적 열정이 섞여있는 이색적인 축제로 거듭났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매년 열리는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연사만 4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축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괴테 기념 행사로 열리던 것이 월터 패프케라는 선각자를 통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음악과 철학, 정신과 사유에 대한 폭넓은 토론의 장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SOVAC 2019의 교집합이 많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화두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사들이 등장해 스스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SK의 사회적 가치는 최태원 회장이라는 범위를 넘어 전체의 화두가 될 수 있다.

SOVAC 2019는 뜨거운 사막에서 8월 마지막 주를 보내는 버닝맨 페스티벌과도 비슷하다.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공적 영역에서만 논한다면 그 파급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최 회장과 SK는 이를 축제의 수준으로 확산시켜 더욱 다양한 논쟁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SOVAC 2019가 성공적으로 열렸으나, SK 전체로 볼 때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먼저 SK 스스로의 부족함이다. 네이버 창업주 중 한 명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의 일침을 중요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베어베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SK의 사회적 가치 의지가 부족하다고 질타하는 한편,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인간 최태원으로 돌아와 의욕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SOVAC 2019 현장에서 그 미흡함을 질타하는 장면이 나온 것은 부담이다. 최 회장과 SK 모두에게 숙제다.

행사는 성황리에 열렸으나 진심을 보이기 위한 충분한 액션플랜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라오스댐 붕괴 등으로 SK건설 책임론이 벌어지는 한편 가습기 논란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주장하는 SK의 불길한 그림자로 여겨진다. 이러한 측면의 적극적인 대응과 화합도 역시 SK와 최 회장의 숙제로 남는 분위기다.

사회적 가치의 정량평가 성공 여부도 중요하다. SK는 무형의 사회적 가치를 정량적 평가를 통해 판단하고, 이를 육성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했으나 아직 실효성에는 증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는 SK의 훌륭한 패러다임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를 가능하도록 만든 '정반대의 사람'과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 인연으로 인해 상처입을 수 있는 '그 반대편의 사람'을 보다듬는 의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