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코로나19가 무서운 것은 단순히 질병의 확산 이상으로 공포감을 몰고 왔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식재료나 생필품들의 사재기 현상들이 나타났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유럽 그리고 일본 조차 이 공포의 확산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급량 자체가 부족한 마스크 말고는 사재기나 품귀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안정감에는 그간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상대하며 경쟁해 온 국내 유통업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

압도적 인프라 구축의 배경  

우리나라도 수요 폭증으로 인한 특정 물품의 품귀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신종인플루엔자, 사스 그리고 메르스 등 전염병이 확산될 때 우리나라에서도 식재료나 위생용품 등의 사재기(위기상황을 대비해 상품들을 사서 쟁여놓는) 현상이 일어났고 이는 그 때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곤 했다.
 
우리나라의 압도적인 유통 인프라는 사실 각 기업들의 철저한 사익(私益) 추구에서 시작됐다. 일련의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유통업체들이 깨달은 것은 ‘경쟁업체보다 충분하게 상품의 재고를 확보하거나 혹은 더 많은 점포를 운영하면 더 많은 고객들이 찾아오고, 브랜드를 더 알리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이에 따라 경쟁업체보다 더 많은 상품 그리고 더 많은 매장은 국내 유통업계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경쟁력으로 여겨졌다. 

이후 한동안 유통업계에서는 고객 접점을 늘리는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고, 상품의 재고를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으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들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SSM, 슈퍼마켓, 편의점 등 광범위한 오프라인 유통 인프라를 전국에 구축했다.  

이러한 오프라인 인프라 확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우리나라의 편의점 숫자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편의점 업계 5대 브랜드 편의점 점포 개수는 약 4만4700개에 이른다. 인구 약 1억2000만 명인 일본의 전국 편의점 개수는 약 5만5600개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51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편의점 점포 수는 ‘편의점 왕국’인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많다. 

여기에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은 이전과 다른 국면으로 더 치열해진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온라인·모바일 활용이 대중화되면서 이는 유통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에 온라인 판매자들을 한 곳으로 모은 플랫폼인 ‘오픈마켓’들이 생겼고,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활용해 특정 제품에 대한 많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모은 후 제품을 할인가로 공급하는 ‘소셜커머스’가 생겨났고 어떤 업체들은 대량의 상품을 직접 매입해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나라는 이베이코리아 계열(G마켓·옥션·G9), 11번가, 인터파크,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온라인 유통 전문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는 온라인 유통 비즈니스의 영향력이 오프라인과 거의 동등해졌다. 급기야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과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제품의 가격이 내려갔다. 이러면서 우리나라의 유통업계는 백화점, 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슈퍼마켓, 편의점 등 오프라인과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 수없이 다양한 경로로 채널들이 분산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물건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유통 인프라 속에서 살게 됐다.

이러한 압도적 유통 인프라는 코로나19 확산 공포 속에서 생필품 사재기로 전 세계의 생필품 물가가 폭등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 460개 물가 측정 품목 중 131개 품목의 가격은 오히려 2월보다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확산이 절정에 이르던 지난 2월 108개 물품의 가격이 1월보다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가격 하락 품목이 23개 늘어났다.

유통에 최적화된 물류

우리나라에 코로나19 패닉이 없었던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에는 유통을 지원하는 촘촘한 물류 체계가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오프라인 방문을 꺼리게 된 국내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 수요가 폭증하면서 배송의 수요도 함께 폭증했다. 

물류기업 CJ대한통운의 2020년 1분기 택배 물동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1% 증가한 3억6800만개로 추정된다. 한진택배의 2월 택배 물동량 역시 지난해 대비 10% 늘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도 2월 19일에서 29일까지 열흘 기준 택배 물동량이 지난해 대비 37% 늘었다. 통상 하루 평균 180만건 수준인 쿠팡 ‘로켓배송’ 배송량은 지난 2월 28일 역대 최고치인 330만건을 기록했다. 

이처럼 일순간에 폭증하는 배송수요로 인해 일부 지역에 한해 다소 배송이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맞춰 배송 역량을 빠르게 확충한 국내 물류기업들의 대응으로 더 이상의 물품 부족이나 배송지연 등 혼란은 없었다. 이처럼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최근 수 년 동안 꾸준하게 증가해 온 택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각 기업들이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약 14만 상자 수준이었던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8년 약 25만 상자까지 늘어났다. 소비자들의 변화된 소비패턴과 그에 맞춰 변화하는 수요를 반영한 각 물류기업들의 조치는 코로나19 확산과 같은 비상 상황에도 안정된 물품의 공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최근의 상황으로 소비자들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택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접 확인했고, 택배를 생활밀착형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라면서 “국내 물류 기업들은 일정 기간을 주기로 변하는 유통의 체계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가능하면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것으로 각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