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수학자 에이브러험 왈드(Abraham Wald)는 1938년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2차 대전때는 콜롬비아 대학 통계연구그룹(SRG)에서 일했다. 전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통계기술을 적용하는 업무였다.

1942년 그에게 연합군 전쟁지휘부는 물론 훗날 현대 경영학자들의 주목까지 받게 되는 연구과제가 맡겨졌다. 임무수행 후 귀환한 전투기·폭격기의 손상 분포에 대한 분석이었다. 미 해군 엔지니어들은 통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손상 부위만 강화하면 된다고 상식적인 판단을 했다.

왈드는 정반대였다. “구멍 없는 부위에 더 많은 장갑판을 붙이세요. 구멍 없는 부위야말로 돌아오지 못한(격추된) 전투기들의 구멍들이기 때문이죠.”

왈드는 기체에 구멍이 뚫렸어도 귀환했으니 '구멍 있는 부위'들은 생존엔 영향이 없다는 것이며, 귀환한 기체에 '구멍 없는 부위'가 있다는 것은 그곳(조종석·꼬리)을 공격받으면 모두 격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해군은 왈드의 통찰력에 무릎을 쳤다. 비(非)생존자를 제외한 채 생존자들만을 고려하여 대책을 세우거나 교훈을 배우려고 하는 논리적 오류를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 혹은 '표본 편향(Sample Bias)'이라고 부른다. 

요즘 중국 웹사이트들에 뜬금없이 ‘호프만 전투기’ 사진이 돈다. 1944년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서도 귀환하는 소련 전투기 IL-2의 모습이다. 조종사는 2차 대전 소련 영웅 겐리흐 호프만이다. 화웨이가 공개했다는 이 흑백 사진에는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붉은색 문구가 추가돼 있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싹부터 자르려고 한다. 특히 전 세계 통신 네트워크에서 화웨이 장비의 도입을 봉쇄하여 사이버 보안을 지키겠다며 동맹국에까지 화웨이 장비 도입을 막아서고 있다. 트럼프는 2년 째 화웨이에 총탄을 퍼붓고 있다.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호프만 전투기’처럼 간신히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 상무부가 지난 15일(현지 시간) 미국 기술을 활용하는 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사전에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초강력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내용은 두루뭉수리하다. 이런 애매모호한 규제가 제일 무섭다. 이현령 비현령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화웨이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내몰 수 있는 극한의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에도 런정페이의 전투기는 무사 귀환할 것인가. 트럼프의 이번 공격은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깨닫고서 나온 치명타일 것인가. 반도체 강국이자 미중 양강 사이에 끼인 우리로서는 전전긍긍하며 지켜 볼 따름이다.